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통한 새로운 경험
<단편 소설을 대하는 마음>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순간의 모습만이 아닌 그의 과거에서부터 이어진 서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어떤 일을 겪고 경험했는지, 그런 순간들은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등에 대해 궁금하다. 소설도 마찬가지. 글 속의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 서사 등으로 마치 그들의 지인이 된 듯 빠져들어 이야기 속에 몰입한다. 그리고 잘, 자주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스토리 중독자이다.
장편소설을 읽을 때와 이야기 서술 방식은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유독 단편 소설을 읽을 때는 희한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나를 배제시키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기분이었고, 한 작품이 끝났다는 시그널이 나오면 나만 외딴 곳에 버려두고 등장인물들이 모두 빠져나가 버리는 듯한 허무하고 외로운 기분을 느껴왔다.
‘이 감정이 뭐지? 왜 이런 마음이 드는거지?’ 이유도 모른 채.
어느새 나는 단편소설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최근 독서모임을 함께 하는 박주희 선생님이 자신의 글에 다른 독서모임을 소개하시며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나누고 있다는 글을 올리셨다.
신간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고, 베스트셀러에도 올라온 것을 알고 있었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책 표지도 이미 검색해 봤었다. 그런데 단편이라는 점도 그렇고 ‘혼모노’라는 제목을 보니 괜히 삐쭉거려졌다.
‘뭐야, 제목을 일본어로 지었어? 그냥 글 깨나 쓰는 MZ라서 가볍게 끄적끄적 해놓은 거 아니야? 일본 덕후인가?’ (작가님 죄송해요.) 별별 생각이 들었고 제목이 괜시리 고깝게 느껴져서 읽고 싶은 책 목록에서 빼두었던 참이었다. 일본어 전공자 임에도 일본어로 쓰여 져 있는 건 곱게 보이지 않는 뼛속까지 국뽕에 찬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그런가.
그런데 박주희 선생님은 대화를 하고 나면 언제나 신선한 감정과 자극, 깨달음을 주시는 분이신데 그분의 목록에 있는 책이라고 하니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추천해주시는 책을 다 읽을 정도의 다독자는 아니지만 ^^;;
그래서 읽어보자 마음먹고 <혼모노>를 읽기 시작했는데 왠일.
작가는 나이를 타지 않는구나, 성해나 작가는 사유의 깊이가 남다르구나.
오히려 젊은 작가의 시선이 더 날카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내용은 묵직하고 어두웠는데, 오히려 나에게는 단편소설을 통해 간질거리는 들썩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전의 단편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작가가 도중에 멈춰버리는 짤막한 이야기인데 희한한 일이다. 전에는 외로움이 느껴졌다면 이 책을 읽고는 등장 인물들의 이후의 삶이 궁금해졌다.
성해나 작가의 책을 읽고 이런 느낌이 느껴진건지, 단편이라는 작품이 원래 이런 건데 내가 깨닫지 못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고 소중한 각성이었다.
이 작품만 유독 특별한 건가 싶어 다른 작가의 단편을 읽어보고 있는데, 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작중 인물들에 대해 호기심이 마구 생긴다.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읽기 전, 후로 단편에 대한 내 마음이 달라진걸까?
성해나 작가의 단편들을 다시 읽고 각 작품별 감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이제 작품뿐만이 아니라 성해나라는 작가도 궁금해진다.
그리고 자칫 지나칠 뻔했던 나에게 성해나라는 작가를, <혼모노>라는 작품을, 단편소설이라는 장르를 소개해주신 박주희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