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몬스테라 Jul 28. 2021

코로나19 속에서의 삶

2020.5.30. 작성

  매일 아침 출근시 열화상카메라로 열을 재고 37.5도 이상이면 무조건 귀가조치 뿐만 아니라 바로 선별진료소까지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열 뿐만 아니라 설사, 기침, 인후통 등 어느 증상 하나만 나와도 무조건 귀가다. 점심 먹을 때에 열화상카메라가 다시 한번 사람들을 감지하고 어떤 장소에 들어갈 때는 비치되어 있는 비접촉식 체온계로 열을 잰다. 모든 공간 앞에는 손소독제와 뿌리는 소독약이 준비되어 있으며 1m이상의 거리두기를 실천하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방송이 나오고, 교사들은 시시각각 매의 눈으로 아이들을 지켜본다.


  이렇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학구열은 쉴 틈이 없는 듯 아이들의 안전(생명)과 대입의 무게를 저울질한다. 아프더라도 설령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대입은 포기할 수 없다는 듯이, 또는 우리아이는 절대 걸릴 리가 없다는 듯이 행여 학교에서 격주제 혹은 격일제를 하라고 할까봐 설문조사에서도 막강한 퍼센트로 전학년 등교에 체크를 했다.


  경기도 교육감은 코로나가 발생된 학기 초에 집에서 일 안하고 돈버는 집단과, 돈 못버는 집단이 학교에 공존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교사들을 뻔뻔하게 나랏돈 챙겨먹는 사람들처럼 매도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 사람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 학기 초 한 달간은 집에 있었다. 언제 출근하나를 기다리면서 그동안 못했던 집안 일을 하고 살림을 정비하고, 머릿 속을 정리하면서 출근 대비태세를 하고 있었다. 쉴새 없이 변화하는 상황을 주목하고, 학사일정을 고민하고 1년 계획을 세웠다 엎었다를 반복하고 있던 그 때 그분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방송이후 머지않아 '집에서 놀고 먹으며 돈버는 집단'의 출근이 개시되었다. 밖에서 보면 그 이야기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야.. 라고 집에 같이 사는 사람도 이야기를 했으니까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아니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 출근하고 있으면서도 교육부의 방침을 언론을 통해서 뒤늦게 듣게 되고 그제서야 그간 치열하게 싸워가며 세웠던 계획을 수정하고, 또 하나 발표가 나면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주 단위로 학사일정을 변경하면서 실체없는 그 무언가와 지난한 싸움을 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없는 학교에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었고 교사들은 조용한 빈 교실에 가서, 혹은 야심한 시각 자신의 집에서 각자의 수업을 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영상을 본 학부모들은 수업의 질을 논하며 잘근잘근 씹어댔고, 애써 노력한 교사들은 자괴감에 빠졌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수업을 해보겠다며 영상활용 기기들을 사들이고 활용법을 배워 자신의 수업에 맞는 방식의 기기를 골라냈다. 실시간 수업을 하려는 교사들은 자신의 집이 영상 안에 비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렸고, 그런 민원을 피하려 기존에 있는 교육자료를 올려두고 강의를 듣게 하는 교사에게는 성의가 없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숙제가 많으면 많다, 적으면 적다 쉴새 없는 민원으로 학교는 콜센터를 방불케 했다. 


  모두 지쳤다. 진짜 어느 것에도 정성을 쏟을 힘이 바닥이 났다. 누구도 겪어본적 없는 새로운 환경에 변화하고 적응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3이 등교하기 시작하면서 방역지침과 학생지도지침, 그 와중에 학습과 평가에 대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다. 같은 교사라도 어느 측은 아이들의 배울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어느 측은 아이들의 피로도와 안전을 위해서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힘겨루기를 한다.


  어느 진화론자가 주장한 내용에 따르면 강하고 힘쎈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런 비상상황이 계속된다면 학교라는 생태계 안에서도 능력있고 잘나가는 교사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적응하는 교사가 살아남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뿐만이 아니겠지. 지금은 우리나라가, 전세계가 팬데믹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으니까 미지수의 확률 안에서 자신의 마음과 신념을 도박처럼 걸어두고 내가 걸어둔 판이 맞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조금 자조적으로 들리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서 내가 코로나블루에 빠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서 그런건지, 나의 직업의 특성이 그런건지, 가정 내의 상황이 녹록치 않아서인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것에도 에너지를 쏟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상황이 힘겹다.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워지고 물리적인 환경이 안정되고 정신적인 여유를 되찾을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적응하고 버티는 자가 웃게 되겠지.


  지금은 나의 힘듦을 다른 누구에겐가 화살을 돌리지 않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힘든 시기니까... 

지금을 제대로 잘 견뎌내고 나면 한층 성숙해져 있는 나를, 우리나라를, 세계를 보게 될 수 있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갑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