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화이팅 입니다 24화
며칠 전, 몇 달 만에 소개팅을 했다.
서로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2주쯤 지났을 무렵, 드디어 직접 만나게 됐다.
오랜만의 소개팅이라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됐다.
대화를 나누며 1차 식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2차로 술도 한잔했다.
이야기하는 내내 어색하지는 않았고,
그럭저럭 무난하게, 예의 바르게, 늦지 않게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오늘 즐거웠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고
다음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안부를 전했다.
하지만 반나절이 지나서야 온 답장은 단 한 줄이었다.
“저랑은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좋은 만남 되시길 바랄게요.”
그리고 그녀는 바로 차단했다.
차여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2주 동안 연락하며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직접 만나서 알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만나고 보니 그녀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 뭔가 느낌이 오지 않았다.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상형’에 대해 들었다.
육각형의; 남자를 만나겠다고 한다. 육각형 남자는 이렇다.
키 177cm 이상
연봉 5천만 원 이상
자산 3억 이상
본인 명의 아파트 보유
살찌지 않은 몸매와 철저한 자기관리
안정적인 직장
부모님 노후 해결 완료
거기에 성격, 종교, 가치관까지…
이 조건이 맞아야 만남을 고민해볼 수 있는 최소 기준이다.
결혼을 전제로 한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건 ‘소개팅’이 아니라
어떤 심사에 가까웠다.
냉정하게 말해 대한민국에서 저 조건을 전부 갖춘 사람은
극소수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도 대부분은 이미 연애 중이거나, 결혼했거나, 혹은 눈높이가 더 높다.
물론 그녀도 육각형이 아니다.
그래도 그녀 나름의 기준이고, 삶을 설계하는 방식이겠지.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그에 부합하지 않으면
‘잘 안 맞는 것 같네요’라는 한마디와 함께 차단해버리는 태도는
인간적인 호감 이전에, 너무 빠른 선 긋기 같았다.
내가 육각형 남자가 아니어서,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녀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그래서 잘 된 일이다.
나는 조건은 부족할지 몰라도,
서로 맞춰가며 살아가는 걸 믿는 사람이다.
내 기준은 완벽한 여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일상을 나누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번 소개팅에서 차인 건,
그녀와 내가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이 너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차였다.
하지만 억울하지 않다.
오히려 나를 지켰기에, 다행이다.
조건이 전부가 되어버린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누군가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나
당신의 진심과 인간적인 모습을 알아봐 줄 누군가도
꼭,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자.
또 만나게 될 것이다. 진짜 인연은 그렇게 찾아온다.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