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임산부는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 1월 말이 출산 예정이라 연말까지 회사를 다니고, 육아휴직에 들어갈 참이었다. 손등이 아릴 정도로 찬바람이 날을 세우던 12월 어디쯤, 퇴근을 하고 엄마가 운영하는 횟집에 들렀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붙들고 밥솥을 열었더니 뚜껑을 덮어놓은 그릇 두 개가 보였다.
- 엄마, 나 밥 한 공기 먹어도 돼?
엄마는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예약 손님 거라고 말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맞은편에 있는 포장마차로 가 떡볶이 한 접시와 어묵을 먹었다. 분식 마니아로써 나쁘지 않은 저녁이었다. ‘나 뜨겁소’하고 달라붙는 연기를 후후 걷어내며 어묵국물을 한 모금 들이킬 때마다 몸이 스근하게 녹았다.
그렇게 배를 달래고 돌아오는 나의 팔을, 엄마가 붙들었다.
- 가게 안에 단골손님들이 와있는데, 거기서 엄마라고 부르지 마. 내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너처럼 큰딸이 있다고 하면 곤란해.
괜찮았다. 스무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던 젊은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에도, 아빠와 헤어진 엄마와 제대로 연락을 주고받게 된 스물다섯에도 나를 조카로 소개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여자로서 공감했다.
그런데 엄마의 다음 말은, 이해한다는 말로 가려두었던 나의 흉터를 들추어냈다.
- 지금 김서방 오고 있지? 전화해서 김서방한테도 미리 일러둬. 장모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엄마는 내 등을 한번 쓸고는 가게로 들어갔다.
아. 이놈의 찬바람. 기어이 할퀴고 가는구나. 가슴 언저리가 시리다 못해 쓰라렸다.
나는 가방을 꾸역꾸역 챙겨 다음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왔다. “더 있다 가지” 하는 엄마의 말이 어찌나 가벼운지 돌아보니 흔적조차 없었다. 저 앞에 주차를 마친 남편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나도 염치라는 게 있다.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그를, 부끄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아서 자꾸만 마음이 쭈그러들었다.
별일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집안일을 찾았다. 찾다가 찾다가 장식돼있던 소품들을 끌고 나와 먼지를 털고 물로 씻겼다.
뜬금없이 노랫말이 입술을 비죽거리며 튀어나왔다. 무슨 노래였더라... 아무렇게나 흥얼거리는 노래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도 이렇게 노래를 부를 때가 많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 할머니 오늘 기분이 좋네’ 했었더랬다.
만삭까지 함께 회사를 오가는 동안 더 없을 축하를 받게 했던 첫째가 올해 열한 살이 되었다. 3월의 어느 날에는 운동장에 핀 꽃들이 예쁘다고 전경을 찍어 내게 보내왔다. 이제는 나의 속말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자랐지만, 여전히 엄마의 냄새가 좋다며 밤이면 늘 나의 베개에 볼을 붙이는 꼬마다. 아직까지는 내가 그 아이의 전부고 세상이라 벅차다. 마냥 흐뭇하지만은 않았을 날들, 초라하기도 서글프기도 했던 날 동안 여기저기 해어졌을 나의 모퉁이를 아이들은 두 팔을 벌려 보듬고 어루만진다. 나의 엄마는 이런 행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대가를 치른 셈이다. 그래서 구태여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노래를 흥얼대던 겨울밤, 뱃속을 천진하게 구르던 아기에게 눈물밥을 먹이며 했던 다짐만은 남았다. 너에게는 이런 슬픔을 알게 하지 않을 거라고-
요즘 들어 한 녀석은 등에 업고 한 녀석은 유모차에 태워 주렁주렁 이고 진 채 시장에 다녀오는 모습을 보고, “참 좋은 시절이다” 했던 어떤 할머니의 말이 생각이 난다. 가마득했던 길에 서고 보니 그날의 풍경들이 어느덧 그립다.
초봄을 지난 5월의 잎이 연둣빛이라 가장 이쁘다. 엄마 나이를 계절로 비유한다면 지금쯤 되려나. 다시 오지 않을 나의 봄날. 풀꽃은 흐드러지게 웃고, 바람은 곰살맞게 부딪히고, 구름은 눈이 부시게 흘러간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끌어안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음을 지을 엄마의 계절, 느릿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지나가고야 마는 이 계절을, 나는 알알이 품고 다정하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