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밤

by 배진화

“우와!”
밤하늘에 무지개 별들이 팝콘처럼 쏟아져 내릴 때마다 사람들은 합창이라도 하듯 함성을 질렀다. 백만 인파가 몰렸다는 해변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지만, 그곳에도 일찍부터 돗자리를 깔고 기다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난감해하던 차에, 맥주를 마시고 있던 청년들이 서로 붙어 앉으며 우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화려한 불꽃 축제가 끝이 나고, 대이동을 하는 인파에 아이들의 손을 꼭 붙들었다. 이대로는 지하철도 버스도 만석일 것 같아서 저녁을 먹으며 잠시 머물다 가기로 했다. 행사장 근처 식당들은 이미 북새통이라 발을 딛기도 전에 쫓겨난 기분인데, 그 전쟁터에서 편의점 테이블을 차지한 사람들을 보니 광개토대왕이 따로 없었다. 극 E형 엄마 덕분에 걷는 것에는 이골이 나서, 웬만하면 다리 아프다 소리를 않는 아이들의 입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끝말잇기를 해보자 스무고개를 해보자 어르고 달래며 걷는데, 마침 한 테이블이 비어있는 수수한 김밥집을 발견했다. 걸레와 쟁반을 들고선 할아버지는 상기된 얼굴로 들어온 우리에게, 재료가 다 되어 해 줄 수 있는 음식이 많지 않다고 하였다. 지금은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지. 우리는 해발 1,915미터의 지리산 산행 중에 날이 어두워져 길을 헤매다, 불이 켜진 오두막을 발견하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평소라면 분명 테이블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텐데, 축제 날인만큼 좁은 통로에도 식탁을 놓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과 부딪혔다. 바닥에는 가방 같은 물건들이 내려져있어 서로가 머리를 조아리며 치워주거나 뛰어넘거나 하는 상황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이었지만 음식은 재빠르게 나왔다. 라면, 김밥, 떡국-
아들은 만두를 좋아하지 않아 떡만둣국이 아닌 그냥 떡국으로 시켰는데 떡보다 만두가 많이 들어있었다. 뭐 상관없지. 선반에 놓인 앞접시를 가져와 아들에게 덜어주고, 라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었는데 대각선 테이블에 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먼저 왔는데. 저거 우리 거 아니야?”
할아버지의 실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 할머니의 잔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따. 내가 항시 물어보고 주라 안하요! 어째그리 맨날 실수를 하고 있노.”
북적하던 식당이 잠시 숙연해졌다.
그제야 김밥을 뒤적여보니 우리가 주문한 종류의 김밥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양쪽을 번갈아 죄송하다며 난감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해프닝이 있었지만 서로 괜찮다고 말했다.
창밖에는, 이사를 하는 개미 떼들처럼 사람들이 계속해서 줄을 잇고 있었다. 식당에 자리가 없는지 발을 들였다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얼른 먹고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입을 오물거리는데 신랑이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는 셀프가 아닌데, 사람들이 다 알아서 먹고, 마시고, 치우고 있어”
정말 그랬다. 누구도 할아버지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알아서 물을 가져가고, 알아서 반찬을 챙기고, 알아서 먹은 자리를 치우고 있었다. 요즘 과학 유튜브에 빠져있는 신랑이 말을 이었다.
“이것도 일종의 생존을 위한 행위라 할 수 있지.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거야. 더 많이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선택하는 거지. 지금은 어떻게 보면 위기상황이잖아”
나는 그때, 얼마 전 버스를 타고 가다 무인 아이스크림 집에 걸려있던 현수막이 떠올랐다.
‘어려운 시기, 조금이나마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문구 밑에는 바는 얼마 콘을 얼마 하며 할인해 놓은 가격이 적혀있었다. 따뜻하기도 애틋하기도 한 문구를 한참이나 되새겼었다.
평소라면 바뀐 순서에 혹은 잘못 나온 음식에, 발에 걸리는 다른 사람의 물건에, 출렁대는 컵에서 떨어진 물방울에 짜증을 섞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수고를 자처하고 있었다. 정처 없이 걷다가 왔을 사람들을 위해, 쉼터가 되어준 공간을 위해, 곤란한 표정으로 음식을 나르는 할아버지를 위해, 주방에서 쉴 새 없이 도마를 또닥 여대는 할머니를 위해.
인간이 인간을 위해 하는 행위들이 결국 살아남기 위한 본능에 하나라면,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정말 그렇다면 좋은 노래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거나, 예쁜 풍경을 보며 어떤 이를 떠올릴 필요가 없다. 자신의 목숨을 던져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해내는 이유를 해석할 수도 없다. 우리는 함께해야 살 수 있는 존재임을 알기에, 어떤 순간에는 마음속에 깔려있던 다정함이 서로를 살리는 온기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살아야 한다. 그런데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살아서 좋으니까 너도 좋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행복하기 위해 살고 있는 거니까.
나는 먹은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 주방으로 갖다 놓았다. 신랑이 물티슈를 가져와 테이블을 닦고, 아이들은 의자를 밀어 자리를 정리했다. 입구로 달가운 표정을 한 손님들이 들어왔다. 가족들은 불룩해진 마음을 안고 개미행렬에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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