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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말할 곳이 없어서 여기에...

by 몽뜨


얼마나 많이 선배들의 라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는데,

우리 세대(?)는 라떼는을 말할 곳이 없다. 정확히는 꼰대라는 이야기를 듣기 싫고, 더 정확히는 듣는 게 불편할 것이 뻔한 그들의 얼굴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싫다.


24년간 쉼 없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2번의 임신과 출산을 겪은 52살 여자의 라떼는 이야기를 짧게나마 풀어놓을 곳이 여기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니, 참 좋다. 보기 싫은 사람은 뒤로 가기를 누를 테고. 아~~ 브런치 너무 좋아!!!


아무튼. 각설하고. 가설라무네....

대학졸업식도 전에 취업해서 24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3개월 x 2명의 출산휴가와 이직기간 중 1달 쉰 게 전부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살았다.


나름 꽤 규모 있는 기업들에 다녔지만, 3개월의 출산휴가가 겨우 정착될 즈음이었고, 임신/출산 후 복직을 못하는 여성이 대부분이었으며,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공표되긴 했지만, 아무도 쓰지 못하는 그런 시대였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5개월 넘게 임신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았었다.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불편할 것 같았고 눈치를 봐야 할게 뻔한 상황이 싫었을 거다. 임신초기 극심한 입덧을 3~4개월쯤 겪는 동안, 임신사실을 숨기는 게 쉽지는 않았다. 화장실에서 목구멍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토하고도 다시 사무실 안에 들어가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일했다. 참 무식했다.


만삭 때는 23kg 몸무게가 불었다. 완벽한 D자형 몸. 걷기도 힘들었다. 매일 출퇴근길 대림역에서 역삼역 가는 지하철 안에서 몇 번을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임산부에 대한 배려 같은 건 없는 때였다.


출산일 직전까지 완벽히 일하고, 출산휴가에 들어간 뒤에도 복직이 될까를 얼마나 노심초사했던지.. 그나마 유명한 기업이니 뭐 몰래 자를 일은 없겠지 생각했었을 거다.


둘째 때는 용인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퇴근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광역버스에 임산부석은 없었다.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마 덩치 큰 아저씨가 차지하고 있었을 거다. 1시간 길을 입석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버스가 멈추면 D자 배를 주려 잡고 뛰었다. 그때, 버스를 먼저 타기 위해 만삭의 임산부를 밀쳤던 그 30대 얌생이 같이 생겼던 그놈의 밀침을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출근길마다 봤으니.


임산부라서 회식에서 빠진다고 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노래 부르는 단란한 그곳.. 에 만삭의 배를 부여잡고 따라다녔다. 몰상식한 동료직원 아저씨는 단란한 그 실내에서 담배를 폈다. 난 만삭이었다.


출산휴가를 들어가기로 한 며칠 전에 이슬이 비쳤다. 사무실에서. 부랴부랴 일 정리하고 애 낳으러 집으로 갔다.


임산부에 대한 배려 같은 건 삶아 먹을래도 없었던 그때였다.

라떼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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