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후크(HOOK. 1991)를 통해 읽는 부모 자녀의 인생살이
놀랍게도 난 화제의 드라마 SKY캐슬을 보지 못했다.
아쉽게도, 안타깝게도가 아닌 '놀랍게도' 라는 표현을 썼다.
시청률 22. 8%를 기록한 이 드라마가 적어도 자녀를 둔 부모 세대에게 끼친 영향은 시청률 그 이상인 듯 하다.
놀랍게도, 내 집에는 케이블 방송이 안 나와서가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되겠지만(TV를 없앨 각오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케이블을 끊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2개의 EBS 채널을 포함한 공중파 6개 채널은 정말 놀랍게도 볼 게 없다) 어쨌든 난 이 놀랍도록 현실적인 드라마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난 여기저기서 이 드라마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듣고 들춰본 몇 줄 짜리 시놉시스를 본 후에 오히려 관심이 생겼다.
드라마의 전개나 결말 따위가 아니라 난 이 드라마가 가져 올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급격한 자기 반성과 판타지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은 드라마에 야유를 던졌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결말임을 알기 때문이다.
언론에는 경쟁적으로 다루는 이 드라마와 관련한 직종 종사자와의 인터뷰가 쏟아진다.
드라마가 표방하는 주제의식과는 무관한 또 하나의 '고급 정보'를 양산하는 셈이다.
맹모삼천지교 따윈 세발의 피처럼 여겨주는 게 가능한 대한민국의 열혈 학부모들은 애가 탄다.
이미 그런 드라마같은 현실 속에 살고 있던 부모들은 새삼 더 얻어갈 것, 새로운 것이 없나 정보의 안테나를 곧추 세우고, 드라마 속 세계가 현실에서 이미 활황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챈 부모들은 자신들의 무능과 뒤처진 정보력을 자책하며 대열에 뛰어들 각오를 다진다.
실제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며 강남 대치동 인근의 입시 컨설턴트에 대한 문의와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손을 들어 달의 아름다움을 가리키니, 손톱 끝의 페디큐어에 시선이 꽂히는 판국이다.
누군가는 그저 드라마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그 결말의 당위성이 있느냐 없느냐 같은 완성도에 방송국 책임 PD못지 않은 관심을 기울일 게 분명하다. 그들은 대체로 등장인물의 흥망성쇠가 주는 개연성에 집중할 테지만, 또 한 편에선 드라마의 엔딩 따윈 안중에 없는 부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우리는 열성적인 '학부모' 라 부른다.
적어도 그들에게 이 드라마는 그저 새로운 정보에 대한 열광이자, 뒤처진 자신들에 대한 반성만을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뿐이지 드라마의 주제의식 따윈 전혀 관심 밖일 뿐이다.
장담한다. 그들은 더 활활 타는 열망으로 SKY캐슬을 우러를 것이다.
나 또한 올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부모다.
각기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널널해진 시간을 빈둥대며 집 안을 뒹구는 속옷 차림의 아이를 보며 나는 이번 겨울 아이들에게 태어나서 가장 많은 '공부해라'라는 말을 했다.
듣는 둥 마는 둥 자기 시간을 가지며 즐기는 아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공부해라'라는 말을 한 것과 같은 횟수의 "니들 인생 니가 사는거지, 알아서 해라."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반 백살을 살았어도 여전히 내 앞가림이 힘이 들고 남은 여생 노후 걱정도 한 바닥인 나인데, 누가 누구의 인생을 결정하고 인도해 간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작년 어느 일요일 아침, 아이들과 함께 패스트푸드점에 간 일이 있었다.
주문을 마치고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는데, 우리 자리 뒤 쪽에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너댓 명의 엄마들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애들을 그렇게 풀어주면 안된다고.."
"맞아, 우리 애 반장 엄마 얘기 들으니까 아차 방심하고 있음 성적이 뚝 떨어진대.. 애들 힘들다고 해도 맘 약해져서 풀어주면 성적 바닥치는거 한 순간이라고..."
"학원에만 맡겨 두면 안된다더라고.. 정보에서 밀리면 뒤처지는거야. 수학도 어디가 잘 가르친다더라..
사냥개 훈련을 시켜도 저리 독하게는 못시키겠다 싶은 생각이 들만큼 듣는 내가 불쾌하고 얼굴이 뜨거워지는 대화였다.
몸을 돌려 그녀들을 향해 "외람된 말씀이지만, 아주머니들 스스로를 위한 책들은 1년에 몇 권이나 읽으시는지요?" 라고 여쭙고 싶었다...만 모처럼 큰 결단을 내려 허락한 패스트푸드 브런치 타임을 학구열(본인들 말고 애들 시킬 공부 학구열)에 불타고 있는 아주머니들과의 싸움으로 망치고 싶진 않았다.
진동벨이 울려 큰 아이와 음식을 받으러 계단을 내려가며 물었다.
"엄마나 아빠가 모여 앉아서 너 저 아줌마들처럼 잡아 돌릴 열띤 회의 하고 있는 거 알면 너 기분 어떨거 같냐?"
피식 웃던 아들은 계단을 내려가면서까지 열띤 표정으로 아이들 잡아돌릴 '고급 정보'를 나누던 엄마들이 시선에서 사라지자 내 어깨에 달라 붙으며 이렇게 말했다.
"근데요, 저 아줌마들 정작 자기들 중학교 땐 공부 열심히 안 했을 거 같던데요. 아마 자기들 엄마가 자기한테 그렇게 공부시키고 몰아붙이고 했으면 죽는다고 했을 거에요. 하하"
아이들과 함께 햄버거에 감자 튀김을 씹으며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오래된 환타지 영화 <후크.HOOK.1991> 다.
왜 이 오래된 영화가 SKY캐슬을 꿈과 모험의 나라 디즈니 성처럼 동경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들춰 볼만한 작품인지 어디 한번 들여다 보자.
"애들은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과 놀고 싶어해요.
언제까지 그러겠어요?
애들이 우리를 원하는 건, 길어야 불과 몇 년이에요. 그 후론 오히려 그 반대라구요.얼마 안 남았어요.
불과 몇 년이면 끝이라구요. 지금 신경 안쓰면, 나중에 후회할 거에요."
피터 배닝(로빈 윌리엄스)은 아들의 야구시합에도 일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는 40대의 워커홀릭 가장.
아내 모이라의 할머니인 웬디가 세우는 자선병원 설립기념식에 참여하기 위해
런던을 찾았다가 후크선장(더스틴 호프만)에게 자녀(아들 잭, 딸 매기)들을 납치당한다.
웬디할머니는 피터가 바로 과거를 잊은 '피터 팬'임을 알려준다.
늙지 않는 소년의 모습으로 웬디를 찾아오던 피터가
늙어 할머니가 된 웬디의 손녀 모이라에게 반해 현실세계에 정착해 어른으로 늙게 된 것.
팅커벨(쥴리아 로버츠)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네버랜드'로 간 피터는
후크 앞에서 '날지도 못하는 배 나오고 늙은 아저씨'의 모습으로 굴욕을 당하는데...
과연, 피터는 예전의 기억을 찾아 피터팬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감독이 자그만치 스티븐 스필버그다.
거장의 영화답게 캐스팅도 로빈 윌리엄스(피터팬), 더스틴 호프먼(후크), 쥴리아 로버츠(팅커벨)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화려하다. 거기에 전세계 어린이들의 올타임 환타지 피터팬이 원작이니 완벽한 오락영화의 기준을 갖췄다.
얼핏 생각하면, 아이들이 좋아할 환상의 세계를 그린 환타지 오락 영화라 여길 수도 있지만,
영화 <후크>는 사실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부모를 위한 영화다.
부모의 교육관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 또다른 영화로는 이준익 감독의 <사도>, 인도영화 <세 얼간이>, 그리고 보지 못했어도 딱 그런 내용일게 분명한 드라마 <SKY 캐슬>을 뽑을 수 있겠다.
영화 <후크> 의 주요한 장면과 대사들을 통해 과연 거장 스필버그는 이 단순한 오락 영화 안에 부모들을 향한 어떤 메시지들을 숨겨 놓았는지 찾아 보도록 하자.
(# 아래 글의 내용에는 영화 후크의 스포일러가 듬뿍 담겨 있습니다.
만약 영화를 보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내용을 읽고 보셔도 큰 도움이 되십니다. 음.. 응? )
피터 배닝은 M&A 회사의 사장이다. 24시간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일 중독자.
마치 카우보이가 권총을 차듯 (구시대의 벽돌만한) 휴대폰을 옆구리에 차고 먼저 뽑는 시합을 동료와 하기도 한다. 그에게 휴대폰은 상대 회사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다.
웬디 할머니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거니?" (웬디 할머니)
"한 회사가 문제가 생기면 아빠가 사들여요. 아빠 일을 방해하면.." (잭)
"괜히 하는 얘기에요. M&A일을 해요. 부동산 개발 회사죠." (피터)
"(아빠에게) 반항했다간 그 회사는 끝장이에요." (잭)
그러니까, (잭) 네가 해적이 됐구나. (웬디 할머니)
피터 배닝(로빈 윌리엄스)은 일에 정신이 팔려 아이들에게 소홀한 어른의 전형을 보여주는 어른이다.
그가 아이들에게 늘 요구하는 것들은 아이다움이 아닌 어른스러움.
이 어른스러움은 아이들의 성숙함이 가져다 주는 자연스러운 철 듦이 아니다.
그저 어른들의 편의를 위한 강요일 뿐이다.
"첫 인상이 중요해, 단정해야 해, 웃어, 여긴 예의의 나라 영국이야"
피터가 영국의 웬디 할머니 집 앞에서 아이들에게 복장 단속을 하며 하는 말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대화 아닌가? 우리는 어른에게 '어른스럽다'는 말을 칭찬으로 하지 않는다. 그건 칭찬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아이들의 '아이다움'은 칭찬해 주나? 대부분 그렇지 않다.
어쩌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른들에 의해 늘 아이다움을 포기할 것을 강요당하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 5살, 7살 짜리 아이가 어른들을 놀라게 할 말이나 행동을 했다면, 그건 그 아이의 그 나이 또래 순수함 때문이지 절대 어른스러워서가 아니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충분한 시간을 먹고 자라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 어른스러움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자신을 속일 때마다 칭찬받았던 아이는 정직하고 정의로운 어른으로 살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아이답게 놀다가 저지르는 아이들의 실수를 부끄러워 하곤 한다.
아이의 실수가 부끄러운 걸까, 아니면 그 실수 때문에 행여 부모인 내 체면이 깎이는 듯 싶어 부끄러운 걸까?
"이 집에선 규칙이 하나 있단다. 절대 어른이 되어선 안돼."
웬디 할머니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피터의 아이들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
네버랜드는 그저 절대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성장을 포기한 아이들이 사는 곳이 아니다.
웬디 할머니의 집에서도 오직 전화기만 붙들고 일에 매진하고 있던 피터는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에 전화통화가 방해 받자 모두 닥치라며 자신을 방해하지말라고 소리친다.
이 또한 우리의 일상에서 매우 익숙한 장면이다.
"아빠 방해하지 말아라. 아빠 지금 중요한 일 하잖아. 좀 조용해라.. 쫌.."
어른들은 가끔 잊는다. 집은 가족의 공간이란 걸.
아무리 아빠가 BBC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해도 아빠를 찾아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를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놀라 얼어 붙은 아이들을 달래며 방 밖으로 데리고 나가며 웬디 할머니가 하는 말은 너무 가슴 아프다.
"이리 오렴, 아빠랑 같이 별을 보던 창문으로 가자꾸나"
피터에게도 아이들과 함께 창문 밖의 별을 보던 시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신은 처음 부모가 되었던 때를 기억하는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해 주었던 아이다.
어서 크기만 해라, 너와 함께 다녀 볼 곳도, 너에게 보여 줄 것도 너무 많다. 어서 크기만 해라 너와 나누고 싶은 대화가 너무 많다 되뇌였던 아이다.
피터는 왜 그 때의 기억을 잃고 이렇게 변한 걸까?
피터팬의 네버랜드는 성장을 멈춘 아이들이 사는 곳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잃지 않고, 잊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네버랜드다.
피터 배닝은 그 소중한 기억을 잃은 피터팬이다.
피터 배닝은 피터팬이 아니라 후크가 되었다.
네버랜드에선 후크가 악당이다.
아이를 싫어하고 자신의 목적 달성에만 이용하는 어른이 후크다.
해적들에게 납치된 피터의 아이들, 잭과 매기는 위험에 처하거나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
후크는 아이들을 싫어한다. 엄청나게 싫어한다.
늘 피터팬을 죽이고 싶어 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자신의 복수에 이용하기 위해 그토록 싫어하는 아이들, 잭과 매기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척 거짓으로 다정하게 대한다.
후크는 잠 자기 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행동이 사실은 아이가 빨리 잠들어야 더 이상 부모를 귀찮게 하지 않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행동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랑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스카이 캐슬로 치면, 그런 명문대 진학의 꿈을 이루는 게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부모의 체면과 만족을 위한 거라고 이야기 하는 셈이다.
아마 후크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그게 후크니까
그런 마음이 당신의 안에는 없을까? 당신도 혹시 후크가 아닐까?
후크의 말에 흔들리는 오빠 잭에게 매기는 "집으로 도망쳐(Run Home)!!" 라고 외친다.
슬프지만, 우리의 가정은 과연 아이들이 온갖 세상의 각박함으로부터 도망쳐 와도 받아 줄만한 도피처와 안식처가 되어 주고 있는가?
잭은 되뇌인다.
"도망쳐? 집...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집으로 도망치는 걸 왜 망설이게 만드는가?
왜 우리의 아이들이 집으로부터 도망치게 만드는가?
오직 SKY캐슬을 향해 나아가 너희 자신의 꿈과 미래 따윈 모두 꽁꽁 가둬 두라고 외치는 부모들은 아닌가?
만일 당신이 아이들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 있다면, 당신도 후크다.
아이들의 인생을 도둑질하는 해적이다.
유모차에 태워져 있던 아기 피터는 엄마가 친구와 공원에서 나누는 대화를 듣고 네버랜드로 도망친다.
발을 굴러 바퀴를 굴렸는지, 염력으로 유모차를 밀었는지는 모르지만, 피터는 도망친다.
그런 어른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어른이 되면 그런 걸 바래? (팅커 벨)
"겁이 났어. 어른이 되기 싫었어. 어른들은 언젠간 다 죽을 테니까.." (피터)
피터가 두려워 했던 어른들의 죽음은 '기억'의 죽음이자, '꿈'의 죽음이자 '행복'의 죽음이다.
기억을 잃은 뚱보 아저씨 피터 배닝은 자신의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네버랜드의 아이들로부터 트레이닝을 받지만 날지 못한다.
"행복한 상상을 해 봐"
"행복한...?"
피터 배닝은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에겐 왜 행복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SKY캐슬 입성을 위한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면서, 우리 부모들은 어떤 행복을 느끼고 어떤 좌절을 느낄까?
공부의 양을 보고 속상해하고(혹은 기뻐하고), 시험의 결과를 보며 속상해하고(혹은 기뻐하고), 진학한 학교의 레벨을 보며 속상해하고(혹은 기뻐하고), 취업한 직장의 연봉을 보고 속상해하고(혹은 기뻐하고), 결혼할 자녀의 배우자와 상대집안의 클라스를 보며 속상해하고(혹은 기뻐하고)..
우리의 행복과 좌절은 온통 자녀에게 달린 것일까?
자녀가 좋은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우리는 왜 부모의 삶을 포기하고, 부모로서의 삶만을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걸까?
아니, 깃발을 높이 펄럭이며 앞서 달려 나가는 날선 학부모로서의 삶만을 선택해 살아가는 걸까?
자녀의 인생이 왜 부모가 결정해 주어야 할 몫의 책임이 되었단 말인가.
그저 태어나 품에 안겨 준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안겨 주었던 우리 자녀들의 벅찬 존재감은,
어느새 그들이 쟁취해 내 줘야 할 여러 목표들 앞에 모두 휘발되어 버린 것인가?
패스트 푸드점에서 들은 엄마들의 대화 중에 날 가장 섬뜩하게 했던 단어는 '투자'였다.
말에는 의도와 의미가 숨어 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 걱정하고 조언하는 부모의 모든 언행이 보답을 바라지 않는 헌신적인 것이라고 칠 때,
우리는 모든 아침드라마에서 명문대에 대기업을 상속할 재벌 2세가 가난한 여직원과 사랑에 빠졌을 때, 그의 어머니가 그 여인의 머리채를 휘잡으며 던지는 대사인,
"내가 이 꼴 보려고 내 아들 공부 시킨 줄 알아?" 는 세상에 없어야 할 말이 된다.
투자하는 부모는 조급하다.
투자가 성공하지 못할까 두렵고, 본전을 뽑지 못할까 두렵다.
그래서 완전한 궤도에 올라 수익이 눈덩이처럼 불려져 굴러가는 날이 계속 이어져야 두 발을 뻗고 잠이 온다.
그래야 비로소 여행도 다니고 골프도 치러 다닐 여유가 생긴다.
그 전까진 내가 그럴 상황이 아닌게 된다.
투자의 대상으로서의 자녀는 결단코 행복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잊지 말자,
피터는 행복하고 싶어서 엄마로부터 도망쳤다.
피터는 날 수 있게 된다.
행복한 기억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피터가 현실세계에서 어른이 되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아빠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의 행복한 기억은 아들 잭을 낳고 '아빠가 되었을 때의 기억' 이었다.
그 때의 감동스러웠던 기억을 되찾은 순간, 피터 배닝은 다시 피터팬이 된다.
하늘을 나는 피터팬으로 돌아온다.
단지, 명문대생도 아니고, 의사도 판사도 아닌, 대기업 직원이나 명문가 여인과 결혼한 자녀도 아닌 그저 자신의 품에 아들 잭을 처음 안던 순간의 기억이 피터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것.
아이들을 찾기 위한 피터의 모험은 영화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피터는 아이들을 구한다.
아이들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하고 이용만 하려는 후크로부터 ...
네버랜드의 아이들 중, 유난히 피터를 싫어하고 거부했던 리더 루피오는 후크의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 피터의 품에 안겨 이렇게 고백한다.
"내 소원이 뭔줄 알아?
당신같은 아빠를 갖고 싶어."
그렇다.
세상의 아이들은 후크가 아닌 피터팬이 자신들의 아빠이길 바란다.
참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던지를 결코 잊지 않는 사람.
넌 절대 피터팬이 아니라고 조롱하는 후크.
순간 자신의 지난 과오에 흔들리는 피터에게 네버랜드의 아이들과 아들 잭은 진심을 담은 응원을 보낸다.
난 널 믿어, 나도 믿어, 나도요
아빤 피터 팬이야
피터는 잭과 매기를 구해서 네버랜드를 떠난다.
떠나? 음... 떠나? 피터팬이.. 네버랜드를 또 떠나?
그렇다. 떠난다. 하지만 피터는 변했다.
이젠 후크가 아닌 피터팬인 아빠다.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때를 잊지 않는 피터팬이 사는 곳, 거기가 네버랜드다.
영화 후크는 더스틴 호프만과 로빈 윌리엄스 두 명의 배우가 각각 후크와 피터팬을 연기했지만,
사실 후크와 피터팬은 하나의 인격일지 모른다.
기억을 잃고 살아가는 피터팬은 피터 배닝같이 후크가 된다.
후크를 죽이려 칼을 겨눈 피터에게 딸 매기는 그러지 말라고 말리며,
"엄마가 없어서 그렇게 된거에요." 라고 말한다.
이 영화 속에서 잭과 매기의 엄마 모이라는 늘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존재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존재다.
악어 동상이 쓰러져 자신을 덮치는 순간, 후크는 "엄마 보고 싶어요."를 외치며 최후를 맞는다.
그가 외친 그의 엄마는,
그를 후크로 만든 엄마였을까, 아니면 그에게 사랑을 아끼지 않았던 모이라같은 엄마였을까?
SKY 캐슬은 분명 좋은 드라마였을 것이다.
시간이 되는 날, 다시보기로 드라마를 훑어보려 한다.
아직 보진 않았지만, 아마 그 드라마 속에도 수많은 후크와 피터팬들이 등장할 것이다.
아마 SKY 캐슬도 최종회에 가까이 가면서 후크같던 부모의 비참한 최후를 그리겠지.
하지만 장담하건데, 드라마를 보고도 후크같은 부모의 역할을 선택하는 부모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생겨날거다.
나는 악독한 부모라 욕을 먹어도,
자녀의 행복을 위해선 기꺼이 그런 선택을 하겠노라 당당히 말하는 부모도 있을 거다.
나 잘 살자고 하는 일 아니라고, 좋은 길 올라서면 그 후론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라 할 거라 말하는 부모도 있을 거다.
잊지 마시라.
그 길 올라서 걷는 자녀의 뒷 목엔
당신의 빛나는 갈고리 하나가 걸려 있을테니...
후크로 살 것인가, 피터팬으로 살 것인가.
선택은 부모인 당신의 몫이다.
끗.
p.s
이 영화는 빛의 속도로 나왔다가 사라지는 특별출연진들을 찾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팝스타 필 콜린스(디즈니 애니 타잔의 주제가를 만든 그 가수다), 배우 기네스 펠트로우(웬디 할머니의 손녀 모이나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15초 출연), 글렌 클로즈(해적 일당 첫 등장 씬에 나와서 상자에 넣어져 바다로 던지운다. 여배우지만 남장으로 나온다), 캐리 피셔(스타워즈 레아공주)와 조지 루카스 감독(마지막 장면에서 마법 가루 뿌리면 저 멀리 키스하던 커플이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장면의 그 커플이다) 까지 등장한다.
관람권장등급
자녀 학업에 대한 불안이 스물스물 올라와 또래 엄마들끼리 카페 모임 3번 이상 해 본 엄마,
난 밖에서 돈 벌잖아, 넌 집에서 뭐하냐? 애들 교육은 니가 알아서 해야지 라는 대담한 말 입 밖으로 꺼내 본 적 있는 무심한 아빠
그리고, 하늘을 나는 히어로 보면 까르르 해맑게 웃는 맑고 예쁜 아이들
(더빙판도 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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