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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Mar 16. 2019

우린 광복 후 '신세계'를 만났는가?

- 영화 <암살> 속에  흐르던 드보르작 교향곡 <신세계>에 대한 단상






김구 : 궁상스럽게 왜 혼자 앉아있네? 해방인데...
김원봉 : 해방이죠, 그런데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최수봉, 나석주, 황덕삼, 주상옥...

김구 : 그만하자

김원봉 : 우리를 기억이나 할까요? 사람들에게 잊혀지겠죠... 미안합니다.

김구 : 아니, 내가 왜려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합니다.


(임시정부 독립투사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 영화 <암살(Assassination, 2015)> 중에서




너무 많이 죽었다.

조국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싸웠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자신의 안위와 부귀영화를 위해 양심과 나라를 판 사람들이 죽은 경우는 흔치 않았다.

후손들의 저주를 채 듣지 못해서였을까?

대표적인 매국노로 꼽히는 몇 몇의 사람들은 천수를 누리고 난 후 노환으로 죽었다.

너무 많이 죽은 쪽은 가진 것 없이 싸우던 이들이었다.

그저 독립된 나라의 집으로 돌아가 살고 싶던 사람들이었다. 

그게 뭐라고 목숨을 바쳐 살았을까...

부귀영화를 누리며 매국의 보람을 느끼던 친일파들은 그리 비웃었을 것이다.

광복이 되었고, 설마 그런 일이 생길 줄 몰랐던 친일파는 당황하고 당황했을 것이다.
그 때 그 비웃음을 통렬히 되갚아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우리 역사는 그러지 못했다. 뼈에 사무치게 아쉽게도 말이다.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영화 속에서 김구와 김원봉은 조국의 해방 소식을 들은 후, 먼저 떠난 독립투사들의 영령을 추모하며 촛불에 불을 당긴다.

그 때 흘러나오는 영화의 배경음악,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다.

아이러니다.

먼저 간 이들의 희생 뒤에 찾아온 조국의 광복.

그들이 꿈꾸던 그 신세계가 찾아 왔건만, 배경에 흐르는 음악은 구슬프기만 하다.


"우리를 기억이나 할까요? 사람들에게 잊혀지겠죠... 미안합니다"

"아니, 내가 왜려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합니다."


말 없이 술잔을 부딪치는 김구와 김원봉 뒤로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투사들의 환호하는 소리가 오버랩된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그들이 되찾고 싶어 하던 해방된 조국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그들이 돌아가고 싶어 했던 조국은  신세계가 되어주지 못했다.

해방된 조국은 헌신하고 희생한 그들의 피와 땀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잊혀졌다.

해방된 조국에서 신세계를 맞은 건, 독립투사들이 죽어 나가는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던 친일파였다.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죽어 사라진 건 그저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일과 알려야 할 것들이 있다.

영화 중반부에 어렵고도 외롭게 싸우고 있는 독립군 안옥윤(전지현 분)에게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이 묻는다.

몇 사람 죽인다고 독립이 되냐고...

"모르지... 그렇지만 알려줘야지. 우리가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그렇게 싸우고 있는 대한의 사람이 아직 있음을 알리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은 기꺼이 죽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갔던사람들은 해방된 신세계에서 잊혀졌다.

그들이 꿈꾸던 '신세계'는 어떤 나라였을까?

아마 다른 건 몰라도 자신들을 집요하게 쫓고 잡아들이고 고문하고 죽이던 일제와 그들의 주구(走狗)가 되어 동족을 죽음으로 내몰던 친일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신세계의 주인은 그들을 죽이고 고문하던 친일파였다.

반민특위의 해체로 면죄부를 받은 친일 인사들의 득세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슬픈 곡조의 신세계로 만들었다.

영화 <암살> 속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 과 실제 항일운동 당시 약산 김원봉 사진.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던 약산 김원봉.(영화 속 조승우)

그는 의열단장, 조선의용대장, 민족혁명당 총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직 을 역임하며 당시 일제가 내건 최고액의 현상금이 걸렸던 인물이다.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살았음을 엿볼 수 있는 이력이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그는 1947년 남로당 주도의 파업에 연루되었다는 이른바 '빨갱이 프레임'으로 체포되어 갖은 수모를 당한다.

당시 그를 심문했던 이는 일제 시절 종로경찰서 형사로 있으면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악랄하게 고문하고 죽게 했던 노덕술이었다.

죽을 고생을 견디며 마침내 돌아온 해방된 신세계, 조국에서 그는 친일형사출신의 경찰에게 뺨을 맞으며 모욕을 당한다.

김원봉은 노덕술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고 풀려 난 후, 사흘을 꼬박 울며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한탄했다.

해방된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들이 꿈꾸던 신세계가 아니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처구니 없고 기가 차는 세상일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친일청산의 실패와 대비되어 거론되는 것이 프랑스의 역사청산 사례다.

프랑스는 자비없는 역사청산을 통해 독일 지배하의 프랑스에서 적에게 부역한 사람들을 철저히 색출했다.

심지어는 민족을 배반한 경찰과 판검사가 나치 협력자를 심판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우고 우선 경찰과 사법부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벌였다.

사법부의 403명의 판사들이 나치 협력혐의를 받았는데, 이것은 전체 판사의 17퍼센트에 이르는 수치였다고 한다.

독일에게 부역했던 이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세계가,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온갖 희생과 고난을 감수하며 조국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던 '신세계'가 펼쳐지듯 느껴졌을 것이다.


정권 비호를 위해 친일파의 행적을 덮어주고 대신충성을 맹세시킨 이승만 정권은 대외적으로는 행정, 사법, 경찰권의 공백을 막기 위해 이들을 중용한다 말헀다.

프랑스는 나치 협력 외교관에 대한 숙청을 통해 대사 75퍼센트, 공사 40퍼센트, 참사관 25퍼센트가 처벌받았고, 교육성도 무려 6천여 건의 나치 협력자 혐의사건을 심사하여 교육성의 고위 공직자 357명이 직위박탈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승만은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 될 수 있는 명망있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들을 제거했다.

프랑스의 전후 독일 부역자 청산의 원칙을 들여다 보면, 이 행동이 얼마나 부끄럽고 파렴치한 짓인지를 알 수 있다.



 “나치 전체주의에 ’민족의 혼과 정신‘을 팔아먹은 민족반역자는 프랑스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나 마찬가지다.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이념을 달리한다고 해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역적’은 아니며, 단지 국가의 관리와 경영을 달리하는 이념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과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사상적 기반이 자신과 다르다 해서 그들의 헌신과 업적마저 업신여기는 것은 단지 '조국의 독립' 하나만을 위해 죽어간 이들의 희생 앞에 던지는 모욕이다.

그들은 분명 '독립운동가'이고, '친일'의 행적을 했던 부끄러운 주구들의 죄는 단죄받고 일벌백계하는 것 이외에는 역사 앞에 씻을 방법이 없어야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 

또 다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해달라"


"손혜원 의원 부친의 경우처럼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 세력에게 독립 유공자 서훈을 주려는 것에 대해 우려를 말한 것”


“좌익 활동, 즉 사회주의 활동했던 독립 유공자를 대거 포함하겠다는 것을 또 다른 국론 분열로 염려한 것"


최근 어느 상식없는 정치인의 발언이 연이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의 주장을 보면, 해방 이후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주고 이를 끈 삼아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던 이들의 모습과 사뭇 닮아 있음을 느낀다.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진 자위대 창설행사에 참가하고,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배상 재판과 관련해 일본과의 관계가 중요하니 그들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라 대통령에게 충고하는 그들이 부정하고 싶었던 건 어찌보면 독립운동가 들의 존재 그 자체, 또는 해방된 주권국가 대한민국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핑 돌만큼 슬프고 애닯다.

1945년, 해방 공간 안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잊혀졌던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은 2019년의 역사 속에서도 다시 그저 죽어가고 있다.

사라졌겠지, 사라졌어야지, 진즉에 사라졌어야지 설마 아직까지도 이렇게 끈질기게 살아서 우리를 지우려할까 통분해하고 통곡하는 그분들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대 송구한 마음이 절절할 뿐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최수봉, 나석주, 황덕삼, 주상옥, 그리고 김원봉과 김구... 반민특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잊혀졌다. 독립운동사 속에서, 역사 속에서...

우린 먼저 죽어간 그 분들의 조국을 다시 신세계로 돌려 놓아야 할 책임과 의무를 안은 후손이다.

그들의 죽음을 값 주고 되찾은 나라 안에서 친일의 과거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그 죄를 일벌백계로 징계하고, 댓가없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후손이 그 항일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대우하는 일이 우리가 다시 우리 사는 이 나라를 신세계답게 만드는 일이 아닐런가.

그래서 영화 암살 속에서  서로를 마주 앉아 먼저 간 이를 추모하며 술잔을 나누던 김구와 김원봉의 사이에 흘러 나오던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가 다만 신세계에 발 디디지 못하고 먼저 떠나간 이들을 추모하는 음악으로만 아쉽게 흘러나오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 아니런가 한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를 외치던 임시정부의 요인들이 꿈꾸던 그 집들도, 진정 그들이 꿈꾸던 대한의 사람이 대한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 것을 인정받고 자긍심 가질 만 하게 살아가는 그런 신세계 위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그리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영화 속에 울리던 음악의 구슬픔이 가슴을 긁는다.


마음에 먼저 간 이들을 위한 초 몇 개 다시 켜 두고, 음악의 볼륨을 높여 보자.

다시, 신세계를 향하여.



영화 <암살> 중에서 백범 김구와 약산 김원봉의 대화 배경으로 흐르는 드보르작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monte-chris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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