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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Feb 22. 2019

꼰대의 탄생

- 경험이 지혜의 전부는 아니다.

설명이 필요없는 진리, 과거으 경험과 지식이 오늘날에도 기준이 되어줄 것이라 여기는 순간, 꼰대가 탄생한다. 



"어우, 저 꼰대..."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꼰대는 왜 태어나는가?
'꼰대'라는 단어의 어원은 여러 가지의 설(說)이 있는데, 나는 다음의 내용을 몹시 신뢰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공적을 쌓은 이들에게 백작, 공작 등 작위를 수여했다.

또한, 조선을 훔쳐 삼킨 한일합병 이후에도 이에 공이 큰  매국 친일파들에게도 각종 작위를 줬다.
이 중 백작의 작위를 가리키는 프랑스어가 바로 콩테(Comte)이다.
콩테를 일본식으로 부른 게 '꼰대'라는 것인데, 일제강점기 시절 이완용 등 친일파들이 백작 등 작위를 수여받으면서 자신을 '꼰대'라 자랑스럽게 칭한데서 이 꼰대의 어원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제로부터 백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들이 하는 보여준 행태를 '꼰대 짓'이라 말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출처: 중앙일보] '이완용에서 출발…?' 신기한 '꼰대'의 어원
그들도 '내가 왕년에 말야..' 로 시작하는 자랑이나 '사람이 성공을 하려면 말이지...' 하며 주위 사람에게 자기 과거를 과시했으리란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랬으니 꼰대짓한다는 말이 생겨났겠지.




영영한사전에서 Study 라는 단어를  찾으면, 'Activity of learnimg'이란 해석이 나온다.

배우는 행동이 공부, 학습이란 의미다.

사람은 학습을 통해서도 배우고, 경험을 통해서도 배운다.

인생 자체가 배움의 연속이기 때문에, 오랜 인생을 살아 오신 어르신들이 주시는 교훈은 소홀히 해선 안 될 귀중한 배움의 대상이다.

그런데, 배움의 행위라는 그 배움이란 단어가 'learning'이다.

현재형 Learn 이 아니고, 과거형 learned가 아니라 learning이라는 진행형이 쓰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저 공부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대접받는 시대가 있었다.

공부 자체를 하는 사람이 적었던 시절 이야기다.

배운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지혜가 되던 시절이다.

많이 공부한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가 있었다.

까막눈이나 면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 여기던 시절엔 중학교, 고등학교만 나왔어도 지식인 대접을 받았고,

대학 가는 게 하늘의 별 따기 같았던 시절엔 대학 졸업장이 곧 성공을 보장하는 자격증이었다.

성공을 위해 너도나도 대학에 자녀 진학시키기에 목숨을 거는 시절엔 '좋은 대학'을 나온 것이 대접의 기준이 되었다.

여전히 그 기준의 달라졌다고 말하긴 어렸겠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앞으로의 시대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이 이끈다.






아이러니하게도 늘 혁신과 도전을 가로막는 건 많이 배운 사람들이거나 많이 배운 이들을 동경하는 이들이다.

그들을 늙게 만드는 건 그들이 배운 과거의 지식과 경험들이다.

진보하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과거 강의실 안에 갇힌 지식, 새마을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경험들 말이다.

그들이 자주 들먹이는 건, "내가 ~~ 할 때 말이야.. " 라던가, "니들은 경험을 안 해 봐서 모르지.. 그 때 내가.." 라는 식의 이야기다.
당시에 같은 강의실에 있어 보지 못한, 당시에 그 피란길에 동행해 보지 못한 젊은 세대는 대화에 낄 엄두도, 아 예 그때 그런 마음이셨겠어요 공감해드릴 갖지 못한다.

불통의 의지로 꾸짖으시며 자신의 배움과 자신의 경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내 말에 귀 기울이라 말씀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은 지금의 시대에 발 디디고 미래의 시대를 고민하는 세대들의 마음과 귀를 결코 열지 못한다.

그들의 배움과 경험은 이미 과거 속에 박제된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유물은 유물로서의 가치와 교훈만 가질 뿐이지, 미래를 그 시대로 채워야 넣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반면,

나이 지긋하면서도 여전히 시대와 나란한 생각으로 나라의 앞날에 천금같은 지혜를 보태는 청년같은 어르신들은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시대를 읽고 공부해가는 분들이다.

배우기를 그치지 않는 분들이다.
과거의 지식에 기대지 않는 분들이다.

새로운 즐거움이 어디에 있을지 눈을 뜨고 찾아 즐기는 분들이다.

몇 년 전 여름 한 낮에 한 대학가 골목을 지나다가 80세는 되어 보이는 백발의 어르신이 70은 넘어 보이는 고운 할머니를 20년은 타신 듯한 빨간색 소나타에 태우고 지나가시는 걸 본 적 있다.
흰색 라운드 반팔 목티에 한쪽 팔을 창가에 걸친 할아버지의 차 조수석에 LG트윈스 응원 스티커가 선명히 붙어 있었다.
최근 5년 안에 본 남녀 커플을 통틀어 가장 섹시한 사람이 누구였냐 묻는다면, 난 그분들을 꼽을 것이다.

1930~40년대부터 살아오셨을 그 분들은 과거의 시대에 늙어버리지 않고, 분명 21세기, 2010년대의 후반을 즐기며 살고 계셨다.

그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꼰대는 왕년에, 과거에, 예전 한참 잘 나갈 때 잉태된다.

그 왕년이 현재와 다른 과거가 되고, 과거 명문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한 점도 지금의 시대와 접목되지 못할 때 꼰대는 탄생한다.

흘러가는 시대를 통찰하지 못하고, 과거의 시대로 현재를 재단하고, 지금의 시대는 경험해 볼 의지가 없으면서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예단하는 오류를 범할 때 무시무시한 시대 불통의 화신인 꼰대는 탄생한다.



한 번 감염되면 도무지 극복하기 어려운 이 무서운 병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대와 더불어 배우기를 그치지 않는 것 뿐이다.

꼰대 없는 장수국가 대한민국의 미래는 단연코 밝다.
꼰대를 만드는 건 배움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다. 그 뿐이다. 



@monte_chris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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