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 머리의 골방 번역가
신기한 노릇이다. 언젠가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별로 관심 없었던 다른 이들의 머리를 슬쩍 보았다. 또래 중에 새치가 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내 새치가 때 이른 것일까, 아니면 다들 염색이라도 하는 것일까?
내 머리는 유독 검고 풍성했다. 미용실에 가면 머리를 만져 주는 분들이 감탄인지 푸념인지 모를 한 마디를 잊지 않았다. 커트를 하는 것도, 펌을 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눈이 나빠 안경을 벗으면 코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대여섯 시간씩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앉아 있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어질 때까지 버티다가 3, 4년에 한 번씩 미용실에 들렀다. 미용실 가는 것은 싫어도 내 머리카락은 좋았다.
그런 머리가 감을 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새치까지 나는 것이다.
내가 아직 어릴 때 아버지는 집에서 새치를 염색하시곤 했었다. 나는 아버지의 흰머리가 더 좋았다. 머리가 하야면 부리부리한 인상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흰머리도 멋지다고, 염색 안 하시면 안 되느냐 여쭸더니 버럭 화를 내셨다. 하얗게 센 머리로 회사에 어떻게 가느냐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염색은 곧 회사에서의 생존이었음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안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염색을 했을 것이다. 아직 어린 아이가 있어 흰머리 성성한 엄마는 싫다며 울고불고하기라도 했다면 염색을 했을 것이다. 최소한의 사회적 자아가 필요했다면, 젊고 건강하며 총기 넘치는 "멋진 신세계"의 "알파"인양 누군가와 만나야 했다면 염색을 했을 것이다.
나는 집 안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한 해의 대부분을 보내는 번역가다. 그나마도 한국에 있었더라면 이따금 계약을 위한 ‘미팅’에 나갈 일이라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머나먼 남쪽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다. 전자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책이 나오면 국제우편으로 받아 본다. 멋진 말로 디지털 노마드지만, 나의 번역어로는 '새치 머리가 난 골방 번역가'다.
거울을 본다. 애써 까매질 필요가 없어서일까. 새치는 유독 굵고 빳빳해 보인다. 반짝반짝 윤기까지 나는 것 같다. 이마 위로 더듬이처럼 힘차게 솟은 새치 한 가닥을 뽑아 본다.
문득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이 어머니와 닮았다.
곁에 계셨더라면 하얗게 세어 가는 머리카락까지 닮아 간다며 함께 웃을 수 있었을 텐데.
새치 한 가닥에 짙어지는 그리움이 새삼 멋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