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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Dec 30. 2022

이방인의 걷기

언젠가부터 잠을 못 잤다.

자려고 눕기만 하면 온갖 잡념이 나를 괴롭혔다. 음악, 명상 유튜브, 오디오북  갖은 수단을  보아도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잠든 후에는 작은 소리에도 깨었고, 한번  후엔 두세 시간씩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이 그러니 낮도 고통스러웠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다.


몸을 혹사시키면 좀 나을까 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글을 만지다 보면, 온몸의 관절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다. 몸은 피곤하지 않은데 소리며 냄새며 온갖 감각에는 지나치게 날을 세운다. 두통과 이명은 기본값이다. 내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지만 남의 글을 옮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자유는 제한되고 책임은 가중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며 '은' 다르고 '는' 다르고 '이' 다르고 '가' 다르다. 말 그대로 조사 하나, 어미 하나까지 신경 쓰다 보니 일할 땐 하루 종일 예민한 상태다. 그러니 자려고 누워도 뇌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것 같다.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이라고 해 봐야 동네를 설렁설렁 걷는 정도다. 첫날엔 한 바퀴를 겨우 돌았다. 그나마도 중간에 골반이며 무릎 통증으로 포기하는 날이 많았다. 중학교 때 무릎 관절염, 고등학교 때 척추측만증을 진단받았고 그 중간 어디메쯤에서 골반이 틀어졌을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조금 속도를 올려 걸어 볼까 하다가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두통이 몰려왔다. 평소 편두통이 망치로 못을 박아 넣는 고통이라면, 이 두통은 양쪽 귀 뒤로 철가면이 죄어 오는 듯한 고통이었다. 피가 전혀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겁이 덜컥 났다. 뇌졸중인가 뇌출혈인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해도 지고 인적도 드물었는데, 집으로 빨리 가고 싶어 주차장이 이어지는 지름길로 들어섰다.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쓰러지면 누가 발견해 줄까 싶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픈 것 자체도 싫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주변 문제들이 더욱 걱정스럽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기댈 곳이 없다. 새삼 뿌리내리지 못한 이방인의 삶이 후회된다. 요새는 이걸 '누칼협'이라고 한다지. 말 그대로, 이민을 가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 싶다. 모두 내 선택이다. 내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방인에겐 건강이 취우선이다. 한 바퀴 겨우 돌던 것이 네 바퀴로 늘었다. 30초도 달리지 못했는데 이젠 3분 정도는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달린다기보다는, 달리듯 걷는 정도다.


걷기를 잘했다.

워낙에 바닥이었던지라 체력이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잠도 잘 자는 편이다.

그보다도 예상하지 못했던 소중한 경험을 한다. 걷는 동안 마주치는 풍경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잠시나마 갖은 근심을 잊는다.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하늘도, 곧게 자란 나무도, 우거진 수풀도, 신기하게 수관 꼭대기에서만 피는 낯선 꽃들도, 이젠 제법 친근해져 알은척하는 길고양이도, 모든 것이 언제나 같은 자리에 무심한 듯 존재한다. 디외도네의 “여름의 겨울”을 견뎌 내던 그 소녀처럼, “자연의 무심함”이 위안이 된다. 뿌리를 내리지는 못해도 함께 가지를 뻗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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