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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고메리 Aug 11. 2023

엄마의 유산

  나에게는 몇 가지의 보험이 있다. 20대때부터 엄마가 들어놓은 우체국의 건강보험, 암보험, 그리고 결혼 후에 들어놓은 실비보험까지. 어느날 우체국에서 우편물이 왔다. 다음달에 보험만기금이 지급된다는 소식이었다. 통장모양으로 생긴 우체국 보험통장을 갖고 있었고 언젠가 2021년에 만기된 다는 숫자를 보기는 했지만, 뭔 일로만 여겼던 그 연도가 벌써 다가온 것이었다. 월 납입 보험료는 14,500원정도였던 것 같다. 20대때에는 엄마가 가입을 하시고 내주시고 했었겠지. 결혼을 하고도 얼마간은 엄마가 내 주시다가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10년정도는 내가 내고 있었다. 잊고 있었는데 나름 목돈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좋았다. 돈의 액수는 2,960,000원 정도. 300만원에서 조금 모자란 액수였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당장 생활비가 아쉬운 형편은 아니었기에 이 돈을 어떻게 할까 즐거운 상상을 시작하게 된다. 은행에 대출금이 조금 있는데, 그걸 갚기에는 너무 아깝다. 


  사실 나의 친정엄마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내가 큰아이를 낳고 돌잔치를 치루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안좋아지셨고, 크게 위급하게는 생각하지 못하고 응급실을 가셨는데 퇴원을 하지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평상시 큰 지병으로 마음의 준비를 해온 것이 아니었기에 당시에 50대 중반으로 많이 젊으셨기 때문에 인생을 마감할 만한 마음의 준비가 없으셨다. 짧은 입원기간동안 휠체어를 밀고 병원밖 창문을 바라보고 하신 말씀은 기억이 난다.

  " 퇴원을 하게 되면, 아파트 1층인 우리집에서 햇빛이 잘 드는 **동의 높은 층으로 이사를 할 거야"

"자동차도 평상시 갖고 싶었던 걸로 바꿀거야"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는 나에게 뚜렷이 무엇을 물려주시며 가시지는 않았지만 나는 엄마가 가입해 주시고 납입해 주신 보험 만기금을 보면서 엄마가 나에게 남기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엄마가 남겨주셨다는 느낌이 드는 물건을 몇 가지가 더 있었다. 평상시에 아끼시던 가구나 내가 결혼할 할 때 사주셨던 가구, 신혼집에 필요한 숟가락, 젓가락 등 많이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이사를 하고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지금은 많이 잊혀진 물건들이다. 갑자기 내 나이 40대 중반이 되어 20여년 전 엄마가 나를 위해 가입해 주신 보험이라는 계약을 만나면서 다시금 엄마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통장에 넣어두는 방법이 있다. 생활비통장이 아닌 곳에 넣어두고 요긴하게 쓸 수 있게 예비금으로 두는 방법이 있다. 또는 금은방에 가서 순금이나 18k로 목걸이나 팔찌를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제작하여 몸에 지니고 엄마를 추억하는 방법이 있다. 순금으로 하면 거의 현금화가 될 수 있으니 필요할 때 요긴하게 비상금으로 쓸 수도 있겠다. 다른 방법으로는 친정아빠를 위해서 쓰는 방법이 있다. 아빠가 이사를 하시거나 긴요하고 급할 때 도와드릴 수가 있겠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코로나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이 있는 친정동생을 위해서 쓰는 방법도 있겠다. 엄마가 시작한 돈이므로 엄마라면 어떻게 쓰셨을까 그 마음을 헤아려 볼 수가 있겠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300만원의 돈 지급을 앞두고 여러가지의 생각이 든다. 요즘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대학등록금으로도 쓸 수 있는 돈이고 당장 살 수 있는 월세방의 보증금이 될 수도 있는 돈이다. 일년치 월세가 되거나 한 차례 해외여행을 할 수도 있는 돈이다 순금 10돈의 목걸이를 만들 수도 있는 돈이다. 


 나는 오늘 300만원의 쓰임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다. 20년전 내가 25살때의 모습을 생각해보며 이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친정엄마,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인생 직업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젊은 날의 나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밤이 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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