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선거에는 만 18세 이상 남녀로 선거권을 행사하되 신앙‧교육‧거주 년수‧사회출신‧재산 상황과 과거 행동을 분별치 아니하며 선거권을 가진 만 23세 이상의 남녀는 피선거권이 있으되 모든 개인이 평등과 비밀과 직접으로 함.
-1941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마련한 대한민국 건국강령 中
지난해 12월 27일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19금의 영역’이던 선거권이 청소년에게 주어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에도 적시돼있던 만 18세 선거권이 80년 만에 실현된 셈이다. 이로써 오는 4월 15일 치러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2002년 4월 16일 이전에 태어난 만 18세 청소년 유권자 53만 명(충북 4천600여 명, 옥천군 470여 명)이 투표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만 18세 선거권’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청소년의 정치 활동을 제약하는 갖가지 규정이 학교 현장과 선거법 등에 남아있는 것. 최근 공직선거법을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서울시교육청의 모의선거 교육을 금지하는 등 청소년 정치 참여를 주춤하게 만드는 걸림돌은 곳곳에 있다. 교육 주체인 청소년이 교육감을 직접 선출할 수 있도록 선거권 연령을 더 하향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현재 만 25세인 피선거권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진짜’ 참정권 실현을 위하여
입시 위주 교육에서 정치 교육이나 관련 활동 경험은 빈약할 수밖에 없다. 시대착오적인 학교 생활규정과 선거법 등도 청소년의 정치 활동을 제약한다. 청소년운영위원회나 청소년참여위원회 등 지자체 별로 마련하고 있는 청소년 참여 기구 역시 실질적인 권한이 없고 자율성이 떨어진다는 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정의당 남부3군위원회 박호민 부위원장은 관련 규정 및 법 제‧개정을 통해 청소년의 정치적 힘을 기르고 청소년 참여와 권리에 대한 사회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 부위원장은 “청소년 자치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각 지자체와 학교의 관련 활동이 그동안은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실질적인 권한을 갖기 힘들뿐더러 대부분 중년 이상의 어른들 중심으로 꾸려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선거권 연령(현재 만 25세)을 낮추는 것 역시 논의돼야 한다”며 “이번 선거권 연령 하향이 다양한 청소년 정치 활동의 기반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 위해선 관련 제도와 규정을 손질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거권 연령과 관련해서는 지역 청소년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옥천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최서영 학생은 “청소년이 뭘 할 줄 아냐는 반응이 있는데, 그건 그동안 청소년에게 권한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역량을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라며 “투표권을 갖게 된다면 당연히 정치나 사회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교육 정책이나 청소년 정책에서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보다 더 낮아져야 한다고 지적한 최서영 학생은 “적어도 교육감 선거만이라도 모든 청소년이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현재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입시 교육에 치여 제대로 된 사회 참여 활동을 하기 어렵다”며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 학교에서 정치 교육이 실시될 수 있어야, 청소년에게 주어진 ‘참정권’이라는 열쇠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4월 총선을 앞두고 개정된 선거법으로 인해 학교 현장은 선거 교육 관련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실질적인 선거 교육 진행도 당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교육청 학교자치과 민주시민교육팀 관계자는 “교육부, 선관위와 함께 ‘찾아가는 선거법’ 등의 교육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현재 코로나19로 모두 취소된 상황”이라며 “우선 선관위가 제작한 동영상 자료와 각 학교로 배포한 책자 등으로 학교별 교육을 실시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교육청은 이밖에 사회과 교원을 중심으로 선거 교육 내용과 방법 등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3‧1운동부터 촛불집회까지, 우리 역사 변곡점마다 청소년이 있었다
만 18세 선거권 획득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 이어진 청소년 자치 운동의 흐름 속에서 가능했던 일. 거슬러 올라가면 3‧1만세운동부터 4‧19혁명 등 우리 역사 곳곳에 청소년의 자주적인 정치 참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선거권 연령 하향을 위한 청소년 목소리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도 터져 나왔다. 당시 선거 연령 20세를 18세로 ‘낮추자’는 운동이 있었고, 그 일환으로 토론회와 모의투표 등이 진행됐던 것. 이 운동은 2004년 지방선거 때도 이어졌다.* 2008년과 2010년 교육감 직선제 도입과 함께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도 진행됐다.** 이런 흐름에 앞서, 혹은 이런 움직임과 함께 두발자유화(노컷운동), 나이스(NEIS)*** 도입 반대, 내신등급제 반대, 일제고사 반대, 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의 등 관련 운동도 꾸준히 진행돼왔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효순이‧미선이 추모를 시작으로 2008년 광우병 반대,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이어진 촛불집회에서도 청소년의 목소리는 빠지지 않았다. 이 모두,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보여준 과정이었다.
이런 흐름은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청소년 활동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집중돼 소개되다 보니 자칫 간과하기 쉽지만, 지역에도 청소년의 목소리는 살아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충북 옥천과 경남 지역에서 청소년 자치활동을 꾸려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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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연령을 하향하라는 요구의 ‘낮추자’ 운동은 토론회와 모의투표 등을 통해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했다. 2002년과 2004년 서울 명동에서 20세 이하 시민이 참여하는 모의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낮추자’ 운동 이후 다른 여러 단체들의 18세 선거권 요구가 이어졌고, 2005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합의로 선거권 제한 연령은 20세에서 19세로 낮아졌다.
** 2008년 서울 교육감 선거 및 2010년 전국 교육감 선거 당시,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을 후보로 내세우며 청소년 참정권의 필요성을 알린 운동.(관선으로 임명되던 교육감은 2007년 부산시 교육감 선거부터 직선제로 바뀌었다. 2008년 서울 교육감 선거, 2009년 경기도‧충남‧경북 교육감 선거가 치러졌다.)
*** 2003년 4월부터 시행된 교육부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개인의 신상 정보를 국가가 수집하고 관리한다는 점에서 인권침해 및 정보 유출 우려가 있었고, 교사를 통제 또는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발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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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2020년 3월호(VOL.33)
글 박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