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와 각종 온라인 매체, 기록기기의 다양화, 온갖 종류의 글쓰기 교육……. 누구나 쓰고 말하는 시대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편중이 존재한다. 펜과 마이크를 든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는, 당연히 다르게 기억된다.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시대에 굳이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이런 편중은 지역과 지역 사이에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매체가 서울에 몰려있고, 때문에 서울의 눈으로 서울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지금. 지역의 이야기는 쉽게 매몰되고 사라진다.
그래서 강원아카이브협동조합 같은, 지역의 풍경과 사람과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들의 존재가 소중하다.
이들은 왜 지역의 기록에 초점을 맞추게 됐을까. 이들의 기록은 지역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강원아카이브협동조합 김시동 대표를 지난 7월 17일 원주에 있는 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강원아카이브협동조합의 시작은 2009년 김시동 대표를 비롯해 지역 사진 동호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원주24 도시기록프로젝트’부터였다. 원주의 24시간을 사진으로 남겨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기록 활동은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을 만나며 2013년 ‘강원아카이브협동조합(이하 협동조합)’ 창립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강원아카이브협동조합은 강원의 유무형 문화재를 비롯해 지역 학교와 마을, 시장, 축제, 선거, 산불(재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지역 기록을 총망라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 기록단, 기록문화학교, 기록문화축제 등을 개최하며 지역 기록가를 양성하고 기록문화 확산을 위한 활동도 진행 중이다.
Q. ‘아카아빙’이 낯설던 때에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만 해도 전국적으로 이런 작업을 하는 조직이 없었다. 사실 아카이빙, 지역 기록이라는 게 단순한 기록의 차원을 넘어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관심과 맞물리는 부분이 있다. 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점차 마을 기록, 지역 기록에 대한 관심이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지역 내에서도 이 개념이 확산됐고 ‘기록문화학교’ 같은 시민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Q. 일반 시민의 참여가 협동조합의 시작이었다. 자발적인 참여였다는 게 놀랍다.
쉽지 않았다. 원주24 도시기록프로젝트는 지역 동호인 30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그때만 해도 ‘아카이빙’ 같은 것보다 그냥 우리가 사진하는 사람들이니까, 사진으로 지역 이야기를 남겨보자는 정도였다. 이후에는 강원도전문예술단체로 지정받아 책 인쇄비 정도를 지원받긴 했지만, 사실 나머지는 모두 회원들의 사비로 충당했다. 참여하는 시민들이 이 활동에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Q. 사진 중심에서 ‘기록’ 자체에 집중하는 활동으로 바뀐 것은 언제부터인가.
2013년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기획자로서도 아카이빙의 방법론을 고민하던 때였고. 사진으로만 기록하는 것보다 이 사진을 해석하고 사진에 담긴 정보를 풀어낼 수 있는 작업을 함께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역의 옛날 자료도 수집하고 주민 인터뷰를 통해 글을 함께 다루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동안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다(웃음). 아무래도 사진을 하던 사람들에게 이건 더 이상 사진 작업이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이 아닌 하나의 기억을 수집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야 하다 보니 부담도 컸다. 그래도 10명 정도의 회원들이 남아 꾸준히 작업을 함께했다. 기록문화축제를 열기도 하면서.
김시동 대표가 하나의 기억, 하나의 기록으로 사진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주로 작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그의 특이한 이력 하나를 짚고 가야 한다. 사진 작업을 업으로 삼기 전, 그는 횡성군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의 인상 깊은 작업 중 하나인 횡성댐 수몰지역 기록이나 한국의 소 작업 역시 이때 이루어진 것. 횡성군이 진행한 횡성댐 수몰지역 기록화 작업을 담당하며 행정기록물로는 남지 않을 지역 이야기를 사진으로 남긴 것이다. ‘한국의 소’는 축산업이 지금처럼 대규모 산업화되기 이전, 집집마다 한두 마리의 소를 기르던 때의 풍경이다. 단순한 가축이 아닌 가족이던 소의 의미와 당시 농촌 풍경을 엿볼 수 있다.
Q. 원래 다큐 사진을 했기 때문에 사진을 기록으로서 접근하기 쉬웠을 것 같다.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사진에 기본적으로 기록적 측면이 있다 보니. 다만 다큐멘터리는 작가의 주관적인 철학이 반영되는 반면 지역 기록은 좀 더 수평적이고 객관성을 가진 작업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다. 저는 이걸 ‘로컬 아키비스트’, ‘사회적 사진가’ 이런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2014년부터는 면 지역을 중심으로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역을 기록하는 데 있어 면 단위도 넓다. 지금 한다면 마을 단위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면에 사는 사람들이 지역을 지키며 살아온 이야기를 또 다른 시민들이 기록했다는 의미가 있다. 아무래도 거칠고 서툰 부분도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참여했다는 데 가치가 있지 않나. 시에서 만드는 면지 같은 것은 사실 보관용, 문헌 자료 정리용 정도인데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진을 담고 거기에 이야기를 함께 기록했으니까. 우리가 하는 공동체나 지역 기록은, 현장에 가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라 그 자체로 마을의 역사이고 지역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쉬운 건 이걸 지역에서 제대로 활용하지를 못한다는 점이다. 마을 자산으로서 가치가 있다. 마을 기획자나 활동가들이 관심만 있다면 이걸로 전시도 하고 엽서도 만들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마을을 소개할 수도 있을 텐데. 아직 기록의 활용에 대해서는 인식의 변화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월간옥이네 38호에서 기사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글 사진 박누리
월간옥이네 2020년 8월호(VOL.38)
월간 옥이네는 자치와 자급, 생태를 기본 가치로 삼아 지역의 공동체와 문화, 역사, 사람을 담습니다. '정기 구독'으로 월간 옥이네를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