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벙에 빠진 날
춤추고 노래하는 일은 잘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게 중요한지도 모른다. 서로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고, 서로의 입모양을 따라 노래 부르는 선물 같은 밤이 둠벙을 찾아왔다. 8월 25일, 사회복지법인 영생원이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환한 불을 밝혔다. 옆에는 영생원 작품 전시가, 앞으로는 명랑한 멜로디가 울려 퍼지는 공연이 시작된다. 공연을 펼친 10명의 생활인과 6명의 사회복지사, 함께 노래하고 춤춘 영생원 생활인과 후원회 관객들로 공간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다. 새하얀 원피스를 차려입고 멜로디언을 들거나 마이크를 잡은 생활인, 처음 기타를 잡은 사회복지사의 공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탁자 위에 가득 놓인 포도와 과자, 케이크는 공연과 함께 더욱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 영생원 아주 작은음악회 ‘8월의 크리스마스’가 열리기 이틀 전, 공연과 전시 준비를 함께 따라갔다.
1# 리허설
공연 이틀 전, 영생원 생활인과 사회복지사는 리허설을 하며 거의 처음으로 합을 맞췄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무대에 나왔다 들어가는 동선을 맞추고, 노래와 멜로디언, 키보드와 연주를 맞춘다. 공연자는 높은 단상이 아닌 관객과 가까이서 눈을 맞추며 공연할 수 있는 낮은 무대에 더 긴장한다. 분명 여러 번 연습했던 것인데, 막상 하려니 어쩐지 어렵기 짝이 없다.
“영생원 무대도 여러 번 섰으면서 왜 그러실까~ 왜 긴장이 돼~”
영생원 사무국장 최미숙씨의 응원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연주를 맞춘다. 영생원 밴드는 2014년 남자 생활인 두 명이 통기타를 배우며 시작됐다. 이 두 명을 위해 함께한 사회복지사가 더해져 7명이 함께하는 통기타 Y하모니 통기타 동아리가 만들어진 것. 이후 요양원, 경로잔치 등을 다니며 공연을 펼쳤다. 5월, 10월이면 지역 행사에서 공연을 뛰느라 바쁘다.
“영생원에 ‘영생원햇살나눔봉사단’이 있어요. 생활인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하는 건데 연탄 나눔 봉사도 하고, 이번 청주 수해복구에도 참여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역에 필요한 건 다 한다고 말해요.(웃음) 그러면서 요양원이나 경로당에 공연도 다니고 했죠. 예전에는 통기타만 하다가 지금은 일렉기타(전기기타) 공연도 함께 하고 있어요. 찾아주시는 분들이 즐거워 해 주시니까 서로 좋아요. 생활인 분들도 전에는 몸이 불편하니까 구경만 하는 입장이었다면 무대에 탬버린 하나들고 올라 참여하는 입장이 된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아하세요.”(차미연, 43)
밖에서 하는 공연 외에도 영생원에서는 월 1회 원내 음악회를 연다. 영생원 안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나와 반드시 한 가지 악기 연주한다. 멜로디언, 캐스터네츠, 탬버린 같은 단순한 악기를 들어도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음악회를 안에서만 하다가 밖에서 하니 기분 전환도 되고, 새로워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아마추어 같은 공연이지만 이것도 나름 선출 되는 으쓱한 일이거든요. 전부가 다 나올 수는 없으니까요. 특히 이렇게 관객과 가까운 공간은 오히려 큰 무대보다 더 떨리는 것 같아요.”(박혜원, 49)
2# 벽을 가득 메운 작품전시
공장에서 드르륵 드르륵 찍혀 나온 것보다, 기술에 능한 사람이 후루룩 후루룩 만든 것보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것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둠벙 벽을 가득 메운 영생원 작품 전시는 그래서 더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이번 여름에 찍은 사진, 여러 명이 힘을 모아 그린 그림, 지난 20여 년간 이어온 퀼트 작품 등 영생원 생활인의 땀과 정성이 그대로 녹아있다. 조각 천을 이어 붙여 봄·여름·가을·겨울을 표현한 작품부터 원숭이 얼굴을 한 파우치, 공중에서 헤엄치는 듯한 물고기·고래 작품이 인상적이다. 리허설을 하러 온 성명란(58)씨는 작품을 하나씩 둘러보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잘 만들어서 너무 감회가 깊어요. 퀼트는 바느질을 삐뚤지 않고 고르게 해야 해서 어려워요. 실수로 두 겹으로 뜬다거나 하면 다시 해야 하거든요. 대체로 한 번에 배워서 할 수 있는데 어려운 건 선생님이 도와주세요.”
8월 21일부터 9월 2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의 일부 작품은 구매도 할 수 있다. 벽에는 영생원에서 오랜 시간 쌓아 온 작품을 걸고, 무대에서는 연습한 공연을 펼치기 시작한다.
3# 8월의 크리스마스
영생원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는 생활인 분들을 ‘식구’라고 말한다. 친해지면 그냥 언니, 또는 이모라고 부른다. 어차피 같이 밥 먹고 사는 식구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생원 아주 작은 음악회는 생활인과 사회복지사, 영생원 후원회까지 식구가 한 자리에 모인 ‘영생원의 밤’ 이다. 무엇보다 평소 자주 드나들지 않았던 낯선 공간에서 맛있는 커피·케이크와 함께 음악을 함께 즐기니 이날 공연이 더 특별해진다.
그리움, 추억, 사랑, 동행, 나눔이라는 타이틀로 나뉜 공연 중 생활인은 ‘그리움’을 노래한다. 사회복지사 황명화씨의 키보드 반주와 멜로디언 팀 ‘Y멜로디 레인보우’가 무대를 꾸린다. 공연 직전 가사가 적힌 종이를 손에 들고 몇 번씩 연습했던 노래를 다시 한 번 불러 본다. 그리고 기다리던 순간.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그리움’공연이 끝나고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사회복지사들 역시 긴장하기는 매한가지다. ‘비와 당신’같은 서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기도 하고, ‘라라라’처럼 다 같이 부르기 좋은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기도 한다. 공연이 모두 끝난 후, 긴장이 풀린 사람들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둠벙에서 하니까 가족 같은 분위기가 나서 기분이 좋아요. 멜로디언 불다 까먹고 실수를 했어요. 실수 했으니까 되돌아보고 실력을 어떻게 닦아야 하나 생각했어요. 원장님, 국장님이 항상 돌봐주시고 이해하고 배려해주셔서 좋아요.”(한미라, Y멜로디 레인보우, 59)
영생원 식구들에게, 영생원 후원회에게, 또 다른 관객들에게 선물 같은 음악회다. 영생원 아주 작은 음악회의 이름이 ‘8월의 크리스마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회 날짜가 크리스마스와 같은 25일이라는 것도 있지만 선물을 가득 안겨줄 수 있는 음악회가 되었으면 했던 것. 음악회 행사 안내 책자에는 이런 말이 써있다. ‘즐거운 노래보다 행복한 웃음보다 함께하는 당신이 나에게는 반가운 선물입니다’ 더디게 춤추고 노래한 시간, 영생원 음악회는 둠벙의 밤을 환하게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