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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화X역사

안내면 장계리

수몰마을 기록 11

by 월간옥이네
금강 줄기 상류에 위치하고 산과 들과 하늘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 장계리. 반짝이는 은모래 여울과 함께 깊고 길게 굽이쳐 흐르고 거울같이 맑은 물속에는 많은 물고기 떼가 한가로이 놀던 이곳은 1979년 대청댐으로 인해 대청호가 되었다.


2002년 5월 8일 장계리 주민이 함께 세운 마을 입구의 ‘장계마을비’에서는 장계리의 옛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옥천향지에 따르면 장계리(長溪里)는 1890년 약 60호가 살던 마을 장사리로 기록된다. 1914년 행정구역을 조정하며 ‘장사리(長沙里)’와 자연마을 ‘욱계’를 합하여 오늘날의 ‘장계리’가 된다. 이후 1973년 7월 군북면에서 안내면으로 관할구역이 조정되었고, 현재는 진모래(장사리) 21세대, 욱계 12세대, 가경주(개경주) 13세대, 주막말 7세대, 그리고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논골까지 다섯 개의 자연 마을이 합쳐져 장계리를 이루며 총 53세대가 살아가고 있다.


정갑영, 박오순 선생님2.JPG 오십년지기 정갑영 씨, 박오순 씨


수몰 이후, 새로운 장계리가 시작되다

“원래 진모래는 ‘비치랜드’(현 장계 관광지) 아래쪽에 있었어. 지금은 여기(마을 입구)는 그냥 장계리라고 부르지 뭐. 댐 건설하느라 물이 차니까 거기 살던 사람들 다 여기(마을 입구 부근)로 올라온 거지.”


마을 입구에서 ‘전망좋은 카페’를 운영하는 정갑영(67) 씨는 장계리 관광단지 입구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식당을 운영했다. ‘신인포가든’. 오래전 활기찼던 장계리의 기억을 간직한 간판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더이상 영업은 하지 않는다. 정갑영 씨는 카페 창문으로 웅장하게 펼쳐진 대청호를 바라보며 수몰 이전 장계리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은 저렇게 큰 배가 다니지만, 수몰 전에는 작은 여울이나 하나 있었지. 여기(옛 장계교 아래)는 원래 논이고 밭이고 그랬어. 옛날에 나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울 아버지가 나를 지게에다 짊어지구 그 여울을 건너 댕겼어.”


그렇게나 물이 많이 찼냐고 묻자 “물이 많이 찬 정도가 아니고 여기가 다 논밭이었다니까”라는 답이 돌아온다. 지금은 옛 장계교 아래 대청호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수몰 이전에는 작은 여울이 하나 있었을 뿐 전부 논과 밭이었다는 것이다. “대청댐 만드는 바람에 여기가 거대한 강이 된 거지”. 옆에 있던 정갑영 씨의 오십 년 지기 박오순(67) 씨도 수몰 이전 장계리로 막 시집왔던 때를 떠올렸다.


“그 아래 우리 밭이 있었어. 미루나무가 말도 못하게 많았지. 그 풍경 진짜 장관이었어. 사람 사는 마을은 저 우에 산 밑으로 기다랗게 쭉 붙어 있었어. 진모래만 저 아래 떨어져 있었구. 원래 이 자리(장계리 입구 부근)는 사람 사는 마을이 아니었어.”


옆동네 소정리가 고향이라는 박오순 씨는 40여 년 전 옛 진모래(장사리)로 시집을 왔다. 현재는 장계리 입구 일대를 장사리라 부르기도 하지만 원래 옛 장사리, 진모래 마을은 현 장계 관광지 아래쪽에 있었다. 수몰로 인해 진모래 마을은 전부 물속에 잠기고 당시 진모래 사람들은 화성으로, 평택 남양만으로 그리고 장계리 마을 입구 부근으로 단체 이주를 해야만 했다.


“나는 옛날 진모래 물 차기 직전에 거서 첫째를 낳았어. 면사무소에서 찾아와서 얼른 나가라구 독촉을 했어. 그래도 애를 막 낳았으니 내 방은 건들지 못하더라구. 다른 방은 죄다 소시락(괭이)으루 문첩을 찍어가매 나가라구 성화를 했지. 물 들어오면 당신들 책임 못진다구. 급하게 이사를 하는데 비가 억수루 퍼붓는 거야. 집만 간신히 지어서 대배(도배)두 다 못했을 땐데. 장판만 깔구 임시루 살다가 한 칸 대배하구 옆방으로 옮겨서 또 한 칸 대배하구 그랬어.”


폐점 식당1.JPG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문을 닫은 식당 터


지금은 오래 전 폐업한 식당 터만 남아 썰렁해진 마을 입구지만, 몇십 년 전 ‘대청비치랜드’가 활발하게 운영되던 당시 이곳은 호황을 이루던 식당가였다. 대청비치랜드는 수몰 이후 대청호반의 절경을 이용해 조성된 가족 놀이시설로 향토전시관, 모험 놀이시설, 야외취사장 등으로 구성돼 한때 충북 남부지역 유일한 모험놀이 시설단지라 불리며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기도 했다. 원래는 옥천군에서 운영했으나, 1992년 ㈜대청이 그 운영권을 넘겨받았고 내부에 20여 종의 놀이기구와 시설을 설치해 ‘대청비치랜드’라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계관광지가 ‘대청호 수질 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개발이 어려워졌고 1992년 인접지역 대전에도 대규모 놀이동산이 들어섰다. 설상가상으로 IMF가 터지면서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오랜 시간 임시 휴업을 하는 등 경영난을 겪었고 결국 2010년 12월 영업을 중지, 폐업 절차를 밟았다.


수몰로 인해 이곳으로 이주한 장계리 주민 대부분이 생선가게, 매운탕 가게 등 식당을 운영했다. 농토가 사라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계수단으로 식당을 운영하게 된 이들도 있었다. 박오순 씨 역시 이곳에서 ‘공원식당’이라 이름 붙인 식당을 운영했다. 하지만 대청비치랜드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운영이 어려워진 식당을 정리했고, 현재는 당시 식당 자리에 거주하며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땐 잘 됐어. 근데 지금은 관광지가 완전히 사장됐지. 이제 옛날 생각이 나서 잠깐 온다던가, 우연히 지나가던가 그렇지 않고선 사람이 없어. 지금은 장계리에 그 당시 식당 하나도 없어. 다 폐업했지.” ……


<월간옥이네 40호에서 기사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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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서효원

월간옥이네 2020년 10월호(VOL.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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