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연. <너는나다> 전시
추운 겨울이 찾아오면 저마다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첫눈 오는 날의 추억, 부드러운 극세사 이불 속 등등. 어떻게 하면 이 겨울을 따스하게 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보다 더 추운 이들을 걱정하고 헤아리는 이들도 있다. 김하연 작가도 그 중 하나다. 김하연 작가는 추운 겨울을 길거리에서 날 수밖에 없는 길고양이에게 눈길을 준다. 11월 10일부터 12월 14일까지 둠벙에서 진행되는 <너는 나다> 전시엔 그런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 눈을 보고 내게 말해요
“아이들을 가만히 보면, 표정에서 하는 말이 있어요. 보통 전시를 알릴 때,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투로 쓰곤 해요. 하지만 이 전시만큼은 ‘아이들 눈을 봐주세요.’라고 사람들에게 부탁을 드려요. 그만큼 지금의 현실을 사람들이 다 같이 알았으면 좋겠어서요.” 11월 18일, <너는 나다> 전시에 담긴 이야기를 보다 깊숙이 나누고자 둠벙을 찾은 김하연 작가는 말한다.
고양이는 눈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길에서 산다고 해도 그 본능적인 대화의 방식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길고양이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을까. 그건 아마도 골목 어귀에 인기척만 있어도 숨기 바쁜 그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마주봐야 대화를 할 텐데 볼 기회가 없다. 본다면 우리들의 눈치를 볼 뿐이다. 차마 우리들을 쳐다볼 수 있는 용기도 없고 엄두도 나지 않는 길고양이를 대신해서 그들과의 대화를 할 시간을 마련해 본다.
김하연, <너는 나다> 전시 소개 中
<너는 나다> 전시가 강렬한 이유는 고양이의 눈빛에 있다. 깊은 눈은 무언가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사람의 시선으로는 위에서 아래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대화를 할 때 눈을 맞추잖아요. 눈높이를 맞춘 채로 고양이의 눈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어 그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전봇대 아래에 있는 종이박스에는 왜 고양이가 들어가지 않을까요?” 듣던 이들에게서 답은 금방 나왔다. 그건 사람이 가져가는 종이박스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자기영역을 갖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나 종이박스를 굉장히 좋아해요. 하지만 그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감정이 훨씬 큰 거죠.” 흔히 고양이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단정 짓지만, 그는 정반대의 얘길 꺼낸다. “고양이는 사람하고 충분히 소통하고 싶어하는 동물이에요. 오히려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해요.”
“고양이에게 길거리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에요. 쌩쌩 달리는 차에 치여 하루에 몇 마리씩 계속 죽어나가는 현실이니까요. 가해자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직면할 필요가 있어요.” 그와 더불어 ‘고양이는 나쁘고 더럽다’는 해묵은 생각 역시도 편견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한다. “고양이가 뭘 자꾸 훔쳐먹는다고 싫어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고양이가 뭘 훔쳤죠? 그저 버려진 음식을 먹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더럽고 지저분한 길의 환경을 너무나 단순하고 쉽게 고양이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건 아닐까요?” 고양이가 처한 환경은 간과한 채 많은 걸 고양이의 고유 성향으로만 치부하다 보니, 그것이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 편견으로 견고하게 자리잡는다는 것.
# 너는 나다
“사회적으로 혐오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추세지만, 고양이에 대한 혐오만큼은 예외인 것 같아요.” 특히 고양이 혐오가 거세질수록,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 역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면서 길고양이 사료를 주곤 해요. 그럼 고양이 밥그릇에 담배꽁초를 놓거나, 물을 붓거나, 심지어는 분뇨를 놓는 등 방해하는 건 물론이고, 꼭 저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요.”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문제가 커진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 또한 ‘오해’에 불과하다고 그는 반박한다.
“오히려 캣맘이 고양이 관련한 민원을 일부 해결하기도 해요. 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해서 아이들이 음식물쓰레기를 덜 건들도록 하거나,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해줌으로써 번식을 덜 하게끔 만들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고양이 혐오가 사람 간의 분쟁으로 번지는 것보단, 고양이 혐오에 대해 확실하게 사회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부분 역시 짚는다. “고양이 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 해당하는 얘기에요. 지금도 살아있는 강아지를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25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게 사람이었다면 같은 결과였을까요?” 다시 말해, 동물도 우리와 같은 생명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것.
“고양이를 좋아해달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저 생명에 대한 예의나 인식을 바라는 거에요. 골목에 사람 뿐 아니라, 다른 생명도 산다는 것. 그들도 우리 이웃이라는 것을요.” 김하연 작가의 절박한 목소리가 둠벙에 메아리친다. 그 메아리는 또 다시 새로운 울림을 만든다. 아래는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한 관객의 짧은 소감이다.
“그동안 고양이의 이미지는 밝고 귀여운 개냥이 정도로 인식을 하고 있었어요. 오늘 강연 들으면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너무 미안해져요.” (오수민, 19)
“집 마당에 오가는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나눠주곤 했거든요. 그래서 더 가깝게 와닿았던 것도 같아요. 오늘 강연 들으면서는 동물보호법이 잘 시행되어서 길고양이들이 좀 더 존중받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서은서,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