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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엇을 왜 읽나요?

옥천 독서모임 함께한 첫 낭독회, ‘달밤 낭독회’

by 월간옥이네



책 한권을 오물오물 씹었다. 오래 곱씹은 책은 몸 안에서 돌고 돈다. 왜 이 단어를 썼을까, 이건 꼭 내 얘기 같구나, 이건 무슨 뜻일까. 오랫동안 머금은 생각은 수증기로 올라 시원한 비가 되어 내린다. 청량하게 내린 빗물은 둠벙에 고여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 옥천 곳곳에서 읽고 말하던 독서모임이 11월 22일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 모여 낭독회를 열었다. 이야기 머무르는 저녁, ‘달밤 낭독회’가 어두운 세상을 비춘다.


서로 만날 일이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과 글을 오래 곱씹는 습관을 가진 비슷한 이들이었지만 각자 모임에서 나누는 데 그칠 뿐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옥천동화읽는어른모임, 옥천작가회의, 청소년 책읽기 목요글방, 옥천교사독서모임에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저녁 7시, 낭독회는 옥천동화읽는어른모임 회원 이연희씨의 ‘금두껍의 첫 수업_상냥한 여우 씨와 친구들(김기정)’ 낭독으로 문을 연다.

옥천동화읽는어른모임 회원 이연희씨

“여우씨는 검은 지팡이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더니,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당신이 주인이신가요?”“

생선가게를 지키는 어린 수로가 영악한 여우씨를 만나고, 여우를 쫓아내고, 글을 배워 생선가게 앞에 알림문을 써 붙이는 과정을 그린 동화는 이연희씨 낭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특히 이연희씨는 목소리를 변조해 대화체를 읽어 낭독회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한편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이어 낭독한 옥천교사독서모임 이향자씨는 한유의 ‘한유 문집_스승에 대한 주장’를 읽었다. 이향자씨는 “스승이 왜 필요한지 고민하고 남을 따라 배우길 꺼리는 당시 분위기를 풍자한 한유의 글이 아직까지 읽히는 걸 보면 옛날 문화가 지금에 뒤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한다”며 “학교에 근무하지만 진정한 스승인가 하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의미를 추구해야 하는지 고민 했다”고 말한다. 이향자씨는 낭독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다시 읽고 낭독을 마쳤다.


“내 앞에 태어나서 그가 도를 들은 것이 진실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따라서 스승으로 삼을 것이고 내 뒤에 태어났더라도 그가 도를 들은 것이 또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따라서 스승으로 삼을 것이니 나는 도(道)를 스승으로 삼는다.”

낭독회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향피리·기타 공연이 정점을 찍는다. 힘 있고 아름다운 연주는 ‘나무가 있는 언덕’, ‘사설난봉가’를 들려주며 마음속에 생각의 씨앗을 심는다. 향피리에 옥천행복교육지구 박한결씨가, 기타에 대전에서 활동하는 기타리스트 나츠가 합을 맞췄다.

세 번째 낭독자인 청소년 책읽기 목요글방 박태종 학생은 라헬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이어 낭독한 옥천 작가회의 김명회씨는 마윤제의 ‘바람을 만드는 사람’을 읽었다. 김명회씨는 낭독과 더불어 책에 대한 소감을 읽는다. “이 책은 넓은 초원을 멈추지 않고 달리는 말발굽 같다. 앞쪽에 슬쩍 나온 보물이 어떤 연결고리로 작용하는지 궁금해진다. 무언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언어를 가졌다.” 낭독은 무언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소리를 낸다.


낭독회 막바지, 새하얀 머리를 질끈 묶은 이가을 동화작가가 책을 펼쳤다. 초대 낭독으로 톨스토이의‘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은 이가을 작가는 “톨스토이는 철인이자, 예언자, 탐구자다. 시련을 겪고 깨우쳐 쓴 이 책을 읽고 ‘신의 계시에 의해 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마이크 없이 읽은 이가을 작가의 목소리에 달은 더 밝게 빛나고, 밤은 깊어만 간다.


처음 낭독회를 제안한 건 옥천교사독서모임 오혜영씨다.

“낭독회를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제안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모여 주셔 이 자리가 충만해진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성장한다고 합니다. 이런 기회가 지역에서 확산되고 둠벙이 그 중심점으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단지 각자 읽던 책을 함께 나눴을 뿐인데 충만함은 배가 된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독서는, 책 읽는 이들의 낭독회는 계속된다.


글 김예림

사진 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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