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둠벙 공연 예정 뮤지션 김목인
김목인(41) 씨는 지난 지용제 뮤직페스티벌 때 참여한 뮤지션 중 한 명이다. “푸른 논밭 가로질러 공연장 도착했던 게 기억나요. 그날 비가 왔는데도, 관객 분들이 경청해주셨던 것도 기억에 남고요.” 지용제를 통해 옥천에 처음 방문했던 그가, 곧 옥천에 다시 방문한다. 8월 24일 금요일 저녁 7시 ‘월간옥이네 창간 1주년 기념파티’에 축하공연을 해주기로 한 것. 누군가에겐 친숙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터. 8월 공연에 앞서, 그의 음악 몇 개와 함께 그를 소개하고자 한다.
‘흙 묻은 장화를 하나씩 신고 / 숲의 너머에 있는 밭으로 가네 / 여기저기 풀섶에 흩어져 있는 / 달팽이를 밟을까 조심하면서.’ 김목인-「스반홀름」
그가 지용제 때 불렀던 노래 중 하나다. 노래에는 서른 살이었던 그가 다녀왔던 덴마크의 작은 공동체 마을 ‘스반홀름’에 대한 회상이 담겨있다.
“그때 그곳의 농사일을 돕는 대신 무료 숙식을 제공받는 방식으로 그곳에 잠시 지냈어요. 체리밭에서 체리도 따고, 밭에서 돌 고르고 잡초 뽑는 일을 하면서 지냈었죠. 예전에는 ‘그런 공동체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라는 상상도 했었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는 스반홀롬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곳을 보여주고 싶단 생각을 해요. 세상 어딘가에 그런 곳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위안이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모두의 마음을 누른 슬픔이여 / 이제 그 무게로 떠오르기를 / 바람에 나부끼던 먹먹한 마음 앞에 어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를.’ 김목인-「부력」
그가 지용제에 왔던 계기는 뮤직페스티벌 총 연출 감독 유수훈 씨의 제안이었다. 유수훈 씨와는 세월호 음반 ‘다시, 봄 프로젝트’ 제작 당시 만났다. 김목인 씨는 그 음반에 ‘부력’이란 노래를 수록했다. “당시에는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세월호 음반에 참여했어요.” 세월호 음반 ‘다시, 봄 프로젝트’ 소개글에는 그의 앨범 참여 수기가 이렇게 담겨 있다. ‘(…)이번 작업을 함께 함으로써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른 동료 예술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덜 냉소적일 수 있었으며, 격려 속에서 한 발짝 더 내디딘 표현들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뮤즈를 부를 수는 없지만 / 이렇게 각자의 할 일을 하다 보면 / 어느 날 음악이 / 우릴 행복하게 하는 밤 / 뮤즈가 다녀갔다는 걸 알 수 있을 뿐’ 김목인-「뮤즈가 다녀가다」
뮤즈, 흔히 영감을 주는 존재를 말한다. 뮤지션 김목인은 노래를 만들 때 어디로부터 영감을 얻을까. “평소에 보는 사람들의 습관이나 뉴스나 책에서 어떤 이야길 접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평소에 메모해두었다가, 나중에 노래로 만들어보려고 해요.”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져도 / 완전히 가격이 매겨지진 않을 것이다 /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 오랜 어려움에도 살아온 / 살아있는 화석이다 /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 현대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 야생지대다.’ 김목인-「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
그는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다. 그가 음악을 직업으로 시작했던 때는 20대 중반의 나이였다. 그의 대학 전공은 신문방송학이다.(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영화에 관심을 뒀는데,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문화연대에서 다큐제작 자원봉사활동도 했었고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건, 학교 밖에서 만난 친구들과 밴드 팀을 결성하면서부터였어요.”
팀 이름은 ‘캐비넷 싱얼롱즈’.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는데 ‘카바레 사운드’라는 음반사에서 모집하던 데모(음원) 공모전에 참여한 이후, 점차 직업으로서의 음악인의 삶에 가까워졌다. “그쯤 제가 음반사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문화판에 가까이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2006년 밴드 ‘캐비넷싱얼롱즈’ 첫 앨범을 내게 된다. 하지만 음반사 직원과 밴드 활동을 병행하던 시간 속, 팀원들 간에는 여러 상황의 차이들이 생겨났다. 누구는 군대에 가야 했으며, 다음 앨범을 내기까지 지지부진하던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사람들 간에 흩어졌다 만났다 하는 과정을 거쳤던 것 같아요. 저는 당시 음반사를 그만두고, 팀은 해체되고, 2010년 쯔음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음반사에서 함께 일하던 김민규 씨(현재 김목인 씨가 속해있는 소속사 ‘일렉트릭뮤즈’ 대표)가 음반 제작 제안을 해주셔서 첫 솔로 앨범을 무사히 발매했죠.” 2011년 김목인 씨는 [음악가 자신의 노래]라는 제목의 솔로 1집 앨범을 낸다.
‘그는 오래 전 헤어진 한 사람 얘길 꺼냈지 / 그녀의 고향이 나의 고향과 같다면서’ 김목인-「꿈의 가로수길」
그에게 가장 애정이 가는 노래를 묻자, 이 노래를 꼽는다. “첫 앨범을 냈을 때 고심하던 기억이 있거든요. 미묘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노래 안에 어떻게 담을까 고민하면서요.”
이 노래 속에는 ‘충주’를 ‘청주’로 잘 못 알아듣고, 청주에서의 기억을 회상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그에게 고향 충주란 어떤 회상을 가져다줄까. “충주는 19살 때까지 살았던 곳이에요. 충주하면 드는 느낌은 강원도, 경상도, 충청북도의 문화가 섞여있는 느낌? 살 땐 몰랐는데, 서울 살다가 터미널 내리면 충청도, 강원도 사투리 억양들이 들려오더라고요.”
그는 충주가 고향이지만, 이제는 서울에서 살아온 시간이 20년이다. “저에게 살 곳을 정하는 기준은 ‘창작이 잘 되는지 안 되는지’인 것 같아요. 고향을 생각하면, 한적하고 평온하긴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생겨나요.”
‘그냥 그대로 새로운 것을 / 말할 수는 없을까 / 그 어떤 과장도 수사도 없이 / 어떤 공격도 변명도 없이 / 지나친 겸손도 두려움도 없이 / 마음의 활짝 핀 새로움으로.’ 김목인-「새로운 언어」
그에게 음악이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먼저 있고, 그것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요.” 이야기에 관심있다 보니, 자연스레 책에도 관심을 두며 지낸다는 그. 구체적으로는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한다. 그가 번역한 책에는 『다르마 행려』, 『고양이 책』, 『강아지 책』이 있다. 처음 번역을 시작한 건, 잭 케루악이란 작가에 대한 ‘팬심’으로부터다. 1950년대 ‘비트 세대’를 주도했던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도 있지만, 그의 음악적인 문체에 반한 까닭도 있었다고.
“음악가가 저의 직업이라면, 번역은 직업이라 말할 수는 없어요. 제가 관심 가는 것들 안에서 조금씩 여유가 되거나 제안을 받는다면 하고 싶은 정도인 것 같아요.”
지금 그는 3집 앨범을 낸지 얼마 채 지나지 않아, 다음 앨범 계획을 구체적으로 잡고 있진 않다.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우며 사는 스타일도 아니”고 말이다. 일단 그의 가장 가까운 계획은 ‘직업으로서의 음악가’를 주제로 올해 안에 출판하는 일이다. “출판사 계약까지 마친 상태에요. 아마 초기 기획보다는 좀더 사적인 이야기로 흐를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가 평소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그럼 제목도 조금 바뀌게 되겠지요.”
단순히 음악가라는 직업으로 그를 표현하는 건 어쩌면 조금 섣부른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를 소개하는 마지막 음악은 ‘개인의 순간’이다.
‘좋은 대화는 문득 모든 걸 잊게 하지.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뭘 했었는지 이야기는 한없이 흐르고 풍경도 귀 기울일 때. 우리가 잠시 스쳐가는 그런 모습.’
글 사진 임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