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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옥이네 Sep 24. 2019

주어온 간판을 뒤집어
옥천 키 센타에 걸었지


 오래된 간판의 이야기를 찾아 나섭니다.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오래된 서체로 쓰인 빛바랜 간판 아래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 간판을 걸었고, 간판과 함께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월간 옥이네 새 코너 ‘오래된 간판’ 연재를 시작합니다.

 

35년 된 간판, 시내버스 종점 옆 ‘옥천 키 센타’     



 오전 8시 반, 옥천 시내버스 종점 옆 ‘옥천 키 센타’ 문이 열린다. 옥천읍 삼양리가 고향인 강구섭 씨가 운영하는 열쇠 가게이자 만물상이다. 약 35년 전, 시내버스 종점 옆에 ‘키 센타’를 차리며 강구섭 씨는 누군가 버린 간판을 주웠다. 옥천 키 센터에 딱 맞는 크기의 간판이었다. 간판 가게에 ‘만물사’, 그리고 ‘옥천 키 센타’ 스티커를 주문해 주어온 간판 뒤에 붙였다. 걸어놓고 보니 다시 여기에 걸릴 간판이었던 것처럼 제격이었다. 그렇게 간판은 35년간 강구섭 씨 가게의 얼굴이 되어주었다.     



 “가게 차리기 전에는 이것저것 다 해봤어. 여기저기 떠돌다 빌어먹고 살려고 열쇠 일을 시작했지. 가게가 작으니까 간판이 너무 커도 안 되잖아. 버려진 간판이 크기가 적당하길래 주워 달았지.”     

 열쇠를 복사하거나, 개 목걸이를 사거나, 가스점화기가 필요하거나, 한 마디로 무언가 필요할 때 손님들 은 수시로 이곳을 찾는다. 열쇠 복사는 한 개에 1천500원.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선 자리에서 쓱싹 하면 금세 열쇠가 하나 더 생긴다. 예전에는 열쇠 구멍을 보고 일명 ‘야스리(날을 가는 금속 도구)’로 깎아 열쇠를 복사했는데, 기계가 나오면서 더 정교해졌다고. 변한 건 열쇠만이 아니다. 시내버스에 오르내리던 안내양이 없어졌고, 옛 농관원(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건물이 있던 곳에는 공원이 생겼다. 35년간 한 자리에서 지켜본 세상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옛날에는 없이 살아도 정이 있었는데, 요새는 너 벌어서 너 먹고, 나 벌어서 나 먹고가 된 것 같아.”     

 강구섭 씨는 온갖 모양의 열쇠와 가위, 계산기 등 생활용품이 주렁주렁 걸린 2평 남짓 가게 입구에 앉아 지나는 사람을 지켜본다. 늘 누군가 떠나고, 돌아오는 곳이다. 매 여름을 천장에 달린 오래된 선풍기로 이겨내야 하는 좁은 가게지만, 강구섭 씨는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더워도 35년을 했어. 다른 데로 가고 싶어도 못 갔지. 목이 좋잖아.”     

“(가게) 닫는 건 대중 없어. 내 맘이니께.” 8월 23일 금요일 저녁, 강구섭 씨가 서둘러 물건을 들이고 셔터를 내린다. 아들에게 좋은 일이 생긴 날이기 때문이다. 강구섭 씨가 떠난 자리에서 간판이 말을 건다. ‘잠긴 문 열어드림’, ‘디지탈 키’, ‘APT 보조키 설치’, ‘현관 대문 키 수리’, ‘732-5978’.    

      


월간 옥이네 VOL.27 

2019년 9월 호 

글 사진 김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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