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8월 그 어느날

by 월간옥이네


“오늘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었습니다. 내일도 폭염이 계속되겠습니다.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43도, 춘천과 대전이 42도, 광주와 대구가 41도 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열대성 기후에 높은 습도로 체감온도는 더 높겠는데요. 열사병 등 온열질환에 특히 유의하셔야겠습니다.”


2050년 8월 1일. 5월부터 30도에 육박한 더위와 함께 시작된 여름은 7월 중순을 지나며 절정을 맞았다. 과거 폭염의 기준이던 33도는 이제 ‘살만한’ 더위가 된지 오래. 35도를 넘는 건 예사고 4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벌써 3주째 이어진다. 그야말로 전국이 ‘폭염지옥’이다. 이어진 충북 지역 뉴스에선 도내 열사병 환자가 또 발생했다는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올 여름 들어 전국에 발생한 열사병 사망자만 200명을 넘는다. “이대로 라면 사망자가 최대 320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낮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수분 섭취에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는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멘트가 익숙하게 따라붙는다. 뎅기열, 치쿤구니야 열병이 도내 모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해 보건당국이 비상에 걸렸다는 보도도 이어 진다. 이제는 이런 아열대성 질병 이름도 낯설지 않다. 에어컨과 서큘레이터가 일으키는 시원한 바람 아래 앉아 뉴스를 보고 있자니 당장 내일 아침 출근이 또 걱정이다. 온몸을 덮치는 무겁고 뜨거운 공기는 그렇다 쳐도, 출퇴근길에 벌어지는 교통난이 문제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도 앞서 가던 버스 타이어가 폭발해 2시간을 꼼짝 없이 도로 위에 갇혀있어야 했다. 한창 가열된 도로 열기 때문이라는데, 그나마 이번엔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었다. 고온에 변형된 열차 선로로 인해 기차 운행이 중단되는 경우도 잦다. 이른 아침 서울로 출장을 간 언니가 저녁 10시가 다 되도록 아직 귀가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이 폭염 앞에 속수무책인 상황이 이어지면서 도로 위는 ‘자가용’으로 더욱 그득그득 채워진다. 매일 아침 명절을 방불케하는 교통정체도 결국은 폭염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잠자리에 들 시간.


오늘밤도 열대야다. 벌써 보름 넘게 지속되는 열대야는, 앞으로 최소 열흘은 더 있어야 수그러들 예정이란다. 어쩌면 여름이 끝나는 10월이 돼야 열대야 없는 밤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이원면에서 망고 농사를 짓는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 복숭아 농사를 짓던 할머니는 20년 전 폐원하고 망고로 주요 작물을 바꾸셨다. 그나마도 동네에선 복숭아 폐원이 가장 늦었던 터라, 지금도 할머니는 ‘일찍 나무를 바꾸어야 했는데’라며 한숨을 내쉰다. 망고 외에 체리, 구아바도 짓는데 축적된 노하우가 없어 여러 모로 어려움이 많단다. 한식 없인 못사는 분이라 배추, 콩, 고추 같은 농작물도 빠짐없이 키우시는데 수확량이 거의 없다고 한탄하신다. 같은 동네 옥이 할머니네는 콩 대신 커피콩을 키운다는데 이쯤 되면 우리 할머니도 입맛을 좀 바꾸셔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게다가 요즘, 스콜은 종종 왔지만 초봄부터 발생한 가뭄에 망고밭에 물 대느라 정신이 없으실 것 같다. 건강부터 챙기시라고 말씀 드려야겠다 다짐하며 눈을 감는다.


하지만, 2050년의 우리는 이 일기를 쓸 수 있을까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상청,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등이 내놓은 연구 보고서를 바탕으로 쓴 가상일기다. 지난해 여름 한반도를 덮친 폭염을 떠올려보면 이것이 ‘가상’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올 여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한반도는 비교적 덜 더운 여름을 보냈지만, 지구 반대편에선 기록적인 폭염과 이상기후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전지구적인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이다.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폭염이 나타났던 지난해 옥천의 최고 기온은 38.3도(2018년 8월 15일)였다. 기상청이 옥천에 자동기상관측장비(AWS)를 도입한 1997년 이래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첫 번째는 2004년 7월 23일 관측된 38.9도). 올해 최고 기온은 35.8도(8월 5일)로 지난해에 비해 낮지만 또 다른 이상기후가 감지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4월 초중순까지 영하로 떨어지거나 0도를 기록하는 날이 이어 지다가 한 달 여 뒤인 5월 중순엔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등(5월 16일 30.2도, 5월 24일 33.9도) 급격한 기온 변화가 나타난 것. 농작물 냉해를 걱정하던 지역에 불과 한 달 만에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온 것이다.


냉해가 발생하는 추운 봄에서 곧바로 무더워지는 여름으로의 계절 변화는 비단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옥천신문 보도에 따르면, 6월 초였던 모내기 시기가 현재는 5월 중순으로 당겨지는 등 들녘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후 변화가 감지되는 상황이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70년대 이후 온난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 30년(1912~1941)에 비해 최근 30년(1988~2017)의 기온을 보면 한반도의 여름 은 98일에서 117일로 19일 길어지고, 겨울은 109일에서 91일로 18일 짧아졌다. 최근 30년의 평균 기온 역시 과거 30년에 비해 1.4도 높다. 이 같은 온난화 전망에 따라 폭염일 수, 열대야일수와 같은 고온 관련 극한지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한다면 2050년 한국의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3.2도 상승할 것이라고 국립기상 과학원은 전망하고 있다. 폭염일수와 열대야일수가 30일 가량으로 크게 늘고 이에 따라 온열질환 사망자 수도 최대 320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는 지난해 폭염(2018년 8월 1일 기준 서울 39.6도, 강원 홍천 41도 기록)으로 4천500명이 넘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하고 48명이 사망한 것과 비교해본다 면, 앞으로 다가올 더위는 지금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스콜 등 국지성 호우가 빈번해져 하천 유역 등에서 홍수 피해가 커질 수도 있다. 무더위가 이어지면 뎅기열, 치쿤구니야 열병 같은 아열대성 질병도 늘어난다.


옥천은 어떨까. 기상청은 2040년 옥천군의 평균기온은 2.1도, 2090년 5.4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2080년대 에는 완전한 아열대 기후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폭염일수 등 고온 관련 극한지수도 크게 늘어난다. 2050년 경 폭염일수는 34일, 열대야일수는 24일까지 늘어나고, 21세기 후반(2071~2100)에는 각각 67.4일, 48.3일까지 증가한다. 무엇보다 이 같은 기후변화는 옥천과 같은 농촌 지역이 더욱 취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산다. 국립재난 안전연구원에 따르면 폭염피해는 △40~50대 남성 및 60대 이상 노인 △농림어업 종사자 및 단순노무 종사자에서 자주 발생하고,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발생 역시 도시보다 농촌이 10배가량 더 높다. 농촌의 경우 폭염 경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논이나 밭, 비닐하우스 등 고온의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노인층이 주요 취약계층이기 때문이다.


기후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수준의 탄소 배출이 계속 될 경우, 인류에게 2050년은 오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금세기 기온 상승폭을 2도 이내로 맞춘다’고 잡았던 목표가 재앙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지난해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제48차 IPCC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채택된 배경이기도 하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선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2050년에는 ‘0’으로 줄여야 한다.


현재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탄소 배출양은 약 4천200억 톤. 그러나 1년에 420억 톤 이상이 배출되는 상황에서 지구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은 10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우리가 2050년의 가상 일기를 상상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역의 힘으로 전환을

위기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탄소 배출량 ‘0’을 실현하기 위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건강 약자, 사회적 약자가 고스란히 지게 된다. 고령화되고 야외 노동이 많은, 옥천과 같은 농촌 지역 일수록 피해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의 탄소 배출 저감 계획이 시급한 동시에 지역 특성에 맞는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로컬푸드에 이은 ‘로컬 에너지’, 지역 안에서 에너지를 생산해 지역 에너지 수요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에너지를 활용하면 화석연료로 인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고, 장거리 전력망으로 인한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지역 에너지는 화석연료가 발생 시키는 여러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감소시키는 데도 도움 이 된다. 더불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한국은 전체 에너지 소모량의 95% 가량을 수입한다)가 에너지 자립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물론 이를 위해선 지역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과 배출원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와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옥천군 환경과에 따르면 옥천의 경우 지역 내 탄소배출 총량 및 배출원 등에 대해 별도로 조사가 진행된 상황은 아니다.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연구원은 “농업 부문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 양이 얼마나 되는지, 지역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는 어느 정도인지, 주거지와 관공서 등 건물의 냉난방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양은 얼마나 되는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명확한 절감 계획과 재생에너지 전환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기초지자체 단위에서는 당진이나 순천, 전주 등이 지역 탄소 배출량에 대한 조사 등을 진행하며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방향으로 알고 있고, 완주 등 로컬에너지를 육성하려는 곳도 있다”며 “옥천과 같은 농촌 지역에서는 완주 모델을 참고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옥천군의 경우 기후 변화와 관련해 △노후경유차 폐차 지원 △전기자동차 및 전기이륜차 구입 지원 △어린이 통학차량 LPG차 전환사업 △탄소포인트제를 비롯해 △경로당 냉방기 및 냉방비 지원 등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한 달 간의 폭염지옥 |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충북 옥천군 기후변화 상세 분석 보고서 | 기상청

폭염정보 수집연계를 통한 폭염위험지도 작성 및 활용방안 | 국립재난안전연구원

한반도 100년의 기후 변화 | 국립기상과학원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 | 이유진


참고사이트

기상자료개방포털

https://data.kma.go.kr/


참고영상

2050 일기예보(세계기상기구, 2014)

https://youtu.be/G_JmdMINI_Q



월간 옥이네 VOL.28

2019년 10월 호

글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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