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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옥이네 Nov 27. 2019

1천451개의 아름다움을 찾아

우보농장 토종 벼 이야기

10월의 마지막 날, 가을걷이가 한창인 우보농장(경기도 고양시)에서 토종 벼를 지키는 이근이씨를 만났다. ‘토종 벼’ 농사를 짓는다는 특이한 이력에,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 한미 정상회담 만찬에 올랐던 토종 쌀을 제공했던 것으로도 언론 보도를 여러 번 탔던 터라 ‘토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은 이름일지 모른다.


농사가 이토록 천대받는 세상에 왜 쌀을, 그것도 낯설기만 한 토종벼 농사를 시작했을까. 토종 벼를 통해 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조금은 반추해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를 만났다.



일찌감치 수확이 끝나 벼 밑동만 남아있는 논 한쪽에 만생종 벼가 옹기종기 모여 농부의 손길을 기다린다. 가만 보니 키도, 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양새도 제각각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어라, 어떤 벼는 꼭 밀처럼 기다란 수염이 달려있네. 같은 누런빛이라고 생각했는데 얘는 좀 더 샛노랗구나. 어떤 것은 낟알이 조금 작은가 싶고, 또 어떤 것은 낟알이 더 빽빽이 붙어있는 듯하다. 한참 들여다보다 논둑 옆에 세워둔 작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조, 반달벼, 다백조, 장삼도, 졸장벼, 불도 같은, 낯설다 못해 어색하기까지한 이름들. 그렇다. 벼에도 이름이 있었다. 그것도 이렇게 다양하고 독특한 이름들이.


“어떻게 벼마다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어떤 것은 노랗고, 또 어떤 것은 검고, 붉기도 하고. 키가 이만큼 큰 게 있나 하면 또 요만큼 작기도 하고. 각각의 이름처럼 맛도 다 다릅니다.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본격적으로 토종 벼를 심어야겠다 생각했죠.”


201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토종 벼를 심고 수확하고 쌀로 만들어 밥을 지어먹는 농부 이근이씨가 처음 그 매력에 매료된 순간을 설명한다.



올해 그가 4천 평(약 1만3천223㎡) 논에 심은 토종 벼는 모두 280종. 지난해까지 150여 종 을 심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농촌진흥청으로부터 120여종의 토종 벼 씨앗을 받아 더했다. 농진청에서 받은 씨앗은 종당 50개 정도라 종자 증식을 위한 수준이긴 하지만, 또 몇 년 후 이곳에 더 다양한 토종 벼가 각자 무리를 이루고 위풍을 뽐낼지 모를 일이다. 이건 사실 그의 꿈이기도 하다. 현재 농촌진흥청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 보존 중인 우리 토종 벼는 모두 450종. 그는 이 토종벼를 모두 복원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냉동고에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심어 키우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보존이고 복원이다.


농사를 짓기 전엔 잡지, 웹진 등 문화콘텐츠 제작 관련 일을 했던 그가 어쩌다 토종 벼에 이토록 몰입하게 됐을까.


“아내가 주말농장을 얻어 함께 텃밭을 가꿨는데, 우연찮게 토종씨앗을 알게 됐어요. 우리 것의 다양성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게 됐고, 그게 2003년부터네요. 그러다 토종 벼를 접했죠. 주변에 아는 농민들, 씨드림이나 흙살림 같은 곳을 통해 씨앗을 모았어요. 2011년에 토종 벼 30종으로 벼농사를 시작했고요.”


생태뒷간


그는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일절 쓰지 않는 전통적인 생태농법을 고수한다. 손으로 잡초를 뽑고 논밭을 돌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는 이것이 토종씨앗이 지닌 가치와 생태 순환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보농장 한편의 ‘생태뒷간’도 눈에 띄는데, 대소변을 퇴비로 쓰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토종 벼는 화학비료와 맞지 않아 이런 농법이 필연적이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그만큼 벼가 높이 자라고 이삭이 영글면서 무게를 이기지 못해 픽픽 쓰러지기 때문. 반대로, 이 화학비료에도 쓰러지지 않게 만든 것이 현재 우리 대부분이 먹는 개량종이다.


“토종 벼의 특성을 그대로 살리려면 전통농법으로 지을 수밖에 없는 거죠. 더불어 화학비료나 농약 같은 것을 쓰지 않고요. 죽이지 않고 살리는 것이 원래 우리의 농사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대량생산을 위해 다 죽이면서 농사를 짓는 상황인 거예요. 죽이는 농사 말고 살리는 농사가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순환의 삶에 대한 욕구가 있었어요.”



그렇게 심은 토종 벼는 반드시 쌀로 만들어 먹는다. 지난해 심은 100여 종의 벼 역시 밥을 지어먹었다. 이 중 70종 가량은 판매도 했다. 단 2~3kg이라도 그는 수확한 토종 벼를 꼭 판매하려고 한다. 논에 심어 기르는 것 뿐 아니라 도정 과정을 거쳐 쌀로 만들고 이것이 밥그릇에 담겨 상에 오르는 것까지, 그래서 토종벼 고유의 특성과 맛을 사람들이 느끼게 하는 것까지가 그가 생각하는 농사의 전 과정이다. 매년 수확한 쌀로 밥을 지어 품평회를 여는 것도 이 때문. 그는 이것이 소비자로 하여금 농촌과 농사의 가치를 일깨울 수 있다고 기대한다. 당장 농민이 쏟은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낮은 쌀값에도 소비자 입에서 ‘비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활동이 부족해서라고 그는 말한다.


“농민이 농산물을 어떻게 키웠는지 나누는 장이 열려야 해요. 제가 토종쌀 품평회를 열심히 여는 것도 이런 이유고요. 왜 토종 벼를 살려야 하는지,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같이 나누면서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거예요. 실제로 토종벼를 먹어보면서 현재 개량종과 비교도 해보고. 가능한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소비자의 태도가 달라져야 가격도 제대로 책정되는 거겠죠.”


토종 벼가 우리가 직면한 쌀 문제의 모든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대안이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농업에 있어 소농 육성이 중요하다고들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토종 벼와 소농은 맞닿아 있기도 하다. 토종벼 특성상 화학비료나 농약에 의존하는 대신 유기농법이 가능한 소농이 적합하기 때문. 지역마다 고유한 토종벼를 길러왔고 그것을 복원하는 것이 우리 농업, 우리 먹거리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키, 색깔, 모양 등 생김새가 다 다른 만큼 그 맛도 다 다른 게 토종 벼예요. 토종 벼는 생산량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토종 벼마다 이삭 당 낟알 수가 달라 어떤 것은 개량종보다 많이 달리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북흑조는 70~80개 정도가 달리는데 흰베 같은 것은 350~370개씩 달리기도 하거든요. 개량종이 보통 150개 정도 달리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많죠. 여기에 개량종은 가지벌이가 많아 생산량 차이가 생기는데, 흰베 같은 품종은 화학비료로 가지벌이를 하지 않더라도 개량종만큼의 생산량을 낼 수 있어요.”



그러면서 토종 벼 연구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1천451종의 토종 벼에 대한 기록은 일제강점기 쓰여진 ‘조선도품종일람’ 이후 제대로 조사된 것이 없는 형편. 현재 우리 쌀 개량종이라 얘기하는 신동진, 영호진미, 오대미 같은 쌀도 그 계보를 살펴보면 사실 원종(어미씨)이 일본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방 74주년을 맞고, 일본 불매 운동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시대 그대로의 밥상을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자조가 이어진다.


“사실 씨앗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웃음). 종에 대한 태도, 우리가 우리 것을 생각하는 인식 같은 것이 문제인 거죠. 원종으로 쓰는 일본 종이 우리 종보다 나은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는 토종 벼가 1천400종을 넘어가지만 일본은 300~400종 수준이었고요. 그나마도 우리가 전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죠. 이미 종 다양성에서 우리가 3배 이상 많았고 그만큼 유전적 가치가 큰 거예요. 다수확이니 뭐니 하면서 개량종 많이 연구하고 개발하면서 왜 토종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토종 벼 중에도 개량종으로 선호하는 특성(잘 쓰러지지 않는 작은 키, 많은 낟알이 달리는 이삭 등)을 가진 것들이 있거든요. 충분히 일본 원종을 쓰지 않고도 우리만의 쌀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토종벼를 연구해야 진짜 우리 쌀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진에 보이는 긴 수염이 토종 벼의 특징 중 하나인 '까락'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그는 토종 자체의 고유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씨앗 그 자체가 곧 농부의 권리가 되는 것인데, 개량은 결국 어딘가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자를 개량한다는 건 결국 그 통제권을 정부가 쥐겠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토종은 내가 키운 종자를 직접 받아 쓰는 것이고,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의미가 되는 거죠. 실제로 농민이 농사를 지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품종, 나에게 맞는 씨앗을 찾아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나라에서 뭐 심어라 해서 심고 따라갔으니 그러지 못했던 거고요. 자신만의 품종을 찾고 그것을 키워내는 것이 농민의 권리인 거예요. 그리고 그에 동의하는 소비자가 필요한 거고요. 그렇다면 쌀농사가, 우리 농업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바쁘게 인터뷰를 마친 이근이 씨가 다시 논으로 돌아간다. 5천년 한반도 역사 속 지역마다 황금들녘, 붉은들녘, 검은들녘이 물결치던 풍경을 꿈꾸며. 우리는 아직 보지 못한, 그러나 한때 이 땅이 품던 그 아름다운 순간을 되새기러.





이 글은 월간 옥이네 2019.11월호(통권 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 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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