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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옥이네 Feb 17. 2020

‘지속가능한’ 지구별을 위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후연구소X고래실 공동주최 ‘기후행동학교’ 현장

녹아내리는 빙하, 높아진 해수면, 갈 곳을 몰라 헤매는 북극곰.


‘지구 온난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 아니 지구 가열로 인한 기후 위기는 북극곰만의 문제일까? 한여름 1m가 넘게 우박이 쏟아진 멕시코, 매 여름 산불에 시달리는 알래스카, 해수면 상승으로 수도 이전을 결정한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기후 위기 상황이 드러나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호주 산불도 그 원인이 기후 위기로 지목된다.


한국 역시 기후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2018년 폭염으로 4천500명 이상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48명이 사망했다. 여름 뿐 아니라 겨울에도 이상기온이 이어져 이번 겨울은 대청호 결빙이 관측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이대로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못한다면 2050년 한반도 평균 기온은 현재보다 3.2도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오래 전부터 기후학자들의 경고가 이어졌던 기후 위기 문제를 함께 살펴보고 대안을 고민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2020년 새해의 첫 금요일인 1월 3일,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기후행동학교’가 열렸다. 이후연구소(소장 하승우)와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이 공동 주최한 기후행동학교는 ‘기후 위기, 무엇을 할 것인가’란 제목으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한재각 소장을 초청해 진행됐다.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듯 이날 청중들은 옥천 뿐 아니라 서울, 대전, 청주, 음성 등 전국에서 모였다. 강연이 끝난 후에도 기후 위기에 대한 각자의 고민과 질문을 나누는 등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현장은 내내 열띤 분위기였다.


이번 강연을 기획한 이후연구소 하승우 소장은 “기후위기를 비롯해 탄소예산, 기후정의 등을 살펴보고 에너지 전환을 포함한 사회구조적 변화의 필요성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해보고 싶었다”며 “이외에도 지역에서 기후위기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실행할 ‘기후lab’을 계획 중이다”고 말했다.


월간 옥이네 2월호에서는 이날 강연을 정리해 담는다. 코앞에 닥친 기후위기 문제를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 시리아 난민 사태를 불러온 러시아 폭염

다음 중 최근 들어 기후 과학 컨퍼런스에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참가자를 고르시오.

① 환경운동가 ② 대기업 임원 ③ 행정 관료 ④ 언론사 기자 ⑤ 군인


정답은? ⑤번 군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한재각 소장은 기후 과학과 관련한 세계적인 컨퍼런스에 군인이 참여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고 소개한다. 군인과 기후 과학이라니, 언뜻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기후 변화가 환경에 국한된 것이 아닌 안보와도 밀접한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기후 변화가 어떻게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존 케리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발언을 살펴보자.


‘지금 유럽이 씨름하는 난민사태가 극단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 생각은 잠깐 보류하고 이것부터 생각해봅시다. 물도, 식량도 없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 한 부족이 다른 부족과 싸우면 그 지역에 어떤 상황이 빚어지겠습니까?’


이 질문에 우리는 쉽게 답을 그릴 수 있다. 이미 수많은 매체를 통해 익숙해진 시리아 난민 사태가 그것. 2010년 러시아 폭염이 밀 가격 폭등을 불러왔고 이것이 시리아 내전을 일으키면서 현재의 난민 문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소장은 “시리아에서는 현재까지 50만 명 가량이 사망하고 300~4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을 것이라 추정된다”며 “기후 위기는 북극곰뿐 아니라,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난과 생존‧멸종의 시작점이며 이미 진행되고 있는 비극이라고 얘기하는 게 적절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여름철 폭우나 가을 태풍 등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해진 기후 현상 역시 지구 시스템이 고장 난 것을 보여주는 징표. 이런 기후 변화가 반복된다면 해당 지역 인구는 어떻게 될까. 미국이나 호주 등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기후 문제를 예의주시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런 질문과 맞닿아 있다.


▮ 지구의 균형을 깬 인류, 화석으로만 남을지도

높아진 해수면 온도에 늦가을까지 이어지는 태풍,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겨울……. 모두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고 있는, 예전과 달라진 기후 현상들이다. 하지만 일상의 우리는 기후 위기를 쉽게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어쩌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지났을 지도 모른다는 기후학자들의 우려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보통은 온실가스 증가에 따라 온도 역시 선형적으로 오를 것이라 생각하죠. IPCC를 비롯해 보수적인 과학자들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급증하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보기도 해요. 그게 바로 티핑 포인트죠.”


지구 생명체를 기후 변화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을 한계점이 될 티핑 포인트를, 실제로 우리가 지나쳤는지 아직 지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이 녹아 오랜 세월 축적돼온 메탄이 배출되는 등 지구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얼어있던 탄소 덩어리가 녹아서 뿜어져 나오고 있어요. 여기 상당한 양의 메탄이 포함돼 있는데, 이건 이산화탄소 보다 온실효과가 더 강력하거든요. 이런 상황을 보며 이미 티핑 포인트가 왔고, 어쩌면 이미 지났을 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오는 거죠. 어떤 의미에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지구 온도는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갈까. 기후학자들은 인류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평균기온은 4도~6.4도까지 상승할 것이라 예측한다. 지구가 더워지는 만큼 해수면은 상승하고 주요 도시는 물에 잠기며 식량 위기가 올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더 우울한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부터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구 기온은 계속 올라간다는 사실이죠.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평균 잔류 수명을 100년 정도로 봐요. 현재 우리가 겪는 폭염은 100년 전부터 쌓인 온실가스 효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배출된 온실가스는 앞으로 100년 후까지 영향을 미칠 테고요.”


한 소장은 이 때문에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변화한 지구에 적응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더 심각해질 상황을 막기 위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 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온실가스가 차곡차곡 쌓이기만 한다면, 어쩌면 생명의 존재를 묻는 게 이상해지는 시기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태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죠.”


▮ ‘8년’과 ‘5.5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감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의무화한 교토의정서(1997년)는 주요 선진국의 비협조 속에 실행되지 못했다. 지구 온도 1.5도 상승을 목표로 잡은 파리협정(2015년) 역시 감축 목표치를 각국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면서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


그렇다면,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할까. 한 소장은 이를 ‘탄소예산’의 개념을 들어 설명했다. 탄소예산이란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의미한다. ‘IPCC 1.5도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 1.5도 상승을 목표로 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탄소예산은 420기가톤(2018년 1월 기준).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연간 42기가톤 가량임을 감안하면 2020년 1월 현재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약 8년 뿐이다.


“IPCC 보고서에서는 2030년까지 현재 배출량의 최소 45%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제로(0)배출을 달성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티핑 포인트를 감안한 일부 과학자들은 기존 탄소 예산에서 100기가톤 정도를 빼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보기도 하고요. 이 계산대로라면 대충 5.5년 정도 남은 상황입니다.”


8년이든 5.5년이든, 확실한 것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감축 목표 역시 낮고 이를 위한 실행 계획도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다. 이대로라면 탄소예산 소진은 그야말로 시간문제.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고 한 소장은 강조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힘 빠져하는데, 이럴수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하게 하고 바로잡을 방법을 찾아야 하죠.”


그런 점에서 탄소예산과 함께 중요한 것이 ‘기후정의’. 과거 산업화를 이끈 선진국의 온실가스가 현재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고, 특히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낙후한 저위도 국가에 대한 피해가 심각한 만큼 이 문제의 원인 제공자를 제대로 짚는 것은 ‘기후정의’를 세우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국제 협정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진 않지만 ‘기후부채’라는 게 있어요.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위기의 원인을 제공했으니 이들은 기후부채국이 되는 거고요. 반대로 그 피해를 받는 후진국들은 기후채권국이 되는 거죠. 기후정의에 입각해 누가, 어떻게, 얼마나 온실가스를 줄일 것인가 이야기해야 할 테고요. 한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기후위기에 있어 채무국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 과감하게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합니다.”



▮ 우리가 ‘기후악당’이 되지 않으려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한 해 5.94억 톤으로 세계 7위 수준(2019년). 1인당 배출량(11.6톤) 역시 OECD 평균(9.68톤) 보다 높다. 우리의 경우 철강이나 자동차,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 많은 것이 그 원인.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감축 목표치를 5억3천만 톤 정도로 설정해 ‘기후 악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 문제에 있어 사실 우리는 ‘포스코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어요. 포스코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이 한국 전체 배출량의 14%를 차지하거든요. 어디 포스코 뿐인가요. 에스오일이나 에스케이화학 등 많죠. 결국 ‘지속적인 성장’을 이야기하면서는 절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와 관련해 ‘기술발전’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책 역시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고 한 소장은 덧붙인다. 가깝게는 연비가 좋은 자동차 개발이나 태양열 이용, 멀게는 지구 대기권에 빛이 덜 들어오게 하는 장치를 설치하자는 주장 등이 그 예다. 현재의 기후위기는 인류가 지구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성장과 발전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탓인데, 기술발전을 통한 대책은 원인이 된 우리의 태도는 전혀 바꾸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한 소장은 말한다.


“‘기술이 발전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도 계시죠. 연비가 좋은 자동차나 친환경 자동차를 만들면 온실가스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만큼 차가 많아져서 감축 효과를 상쇄하고도 넘치게 돼요. 효율을 개선해서 접근하는 방식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거죠. 지금 필요한 건 구조적인 변화거든요. 그런데도 이런 기술 발전을 계속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주장의 정치사회적 의미를 봐야 해요. 결국 현재의 성장 중심 시스템을 옹호하고 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 소장은 먼저 목표를 정하고 우리의 인식을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기후위기 비상사태임을 선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전 세계 7~8개 국가와 1천개가 넘는 지방정부가 비상사태를 선언했어요. 한국에서는 충청남도가 여기 동참했죠. 일단 심각성을 확실히 인지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 다음 화석연료 채굴을 전면 중단할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할지, 석탄발전소를 폐쇄할지 등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탄소세와 기본소득을 연결해 온실가스 감축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동안 우리가 주저해서 하지 못했던 모든 대안을 꺼내놓아야 하는 거죠.


인류는 지금 ‘지속가능한 성장이냐, 탈성장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우리는 ‘탈성장’을 빼놓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인류 평등과 지구 안전, 경제 성장, 이 세 가지는 절대 동시에 이룰 수 없습니다. 경제 성장 속에서 온실가스 감축은 불가능하거든요. 이 중 무엇을 버릴까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대안을 현실적으로 고려하게 하는 사회적 힘을 만들어야죠.


올해는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1년이 될 겁니다.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새로 제출해야 하는 해거든요. 전 세계를 비롯해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정부의 확실한 대책을 요구하는 ‘제2차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올해 3월 14일 열립니다. 저는 이런 시민 행동이 대안을 현실적으로 고려하게 만드는 사회적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레타 툰베리의 말처럼 ‘희망은 회의장 안이 아닌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으니까요.”


월간 옥이네 VOL.32

2020년 2월호

글, 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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