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처음 만난 그가 내민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라이프 컨설팅’. 명함에 볼드체로 크게 쓰인 라이프, 컨설팅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다소 어색해 보였다. 그 옆으로는 책쓰기 코칭, 마케팅 강의, 보고서 / 기획서 작성법이라는 글자들이 결승선을 향해 아등바등 달리는 100미터 주자들처럼 보였다. 명함을 받아 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은 텍스트가 아니다.’
다시 그의 첫인상으로 돌아가볼까. 나와 내 벗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곳은 신논현역 8번 출구 밖으로 나가자마자 있는 카페였다. 우리는 강남이라는 북적이는 지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곳에서 만난 이유는 그가 분당에 사는 사람이라서 그를 배려하자는 취지였다. 약속 시간 20분 전에 도착한 그는 먼저 와 있던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멀찍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손에는 일부러 카페 직원에게 말해서 받은 얼음이 가득 찬 물컵이 들려 있었다. 보통의 경우 그냥 기다리거나, 자기가 즐겨 마시는 음료를 미리 시켜서 마시고 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 같은 사람에게는 자기 행동이 보통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세상의 상식을 평가하니까.
어쨌든 그가 우리 자리로 왔다. 내 친구는 적극적으로 그의 커피를 사겠다고 계산하러 갔고, 그는 소극적으로 자기가 사겠다고 말하며 자기 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는 내 친구가 자기 커피를 대신 사자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일종의 사회적 합의처럼 여겨지는 ‘기브 앤 테이크’의 문화를 생각할 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말이었다.
그는 마치 발표를 하듯 자기 이력을 차례로 읊었다. 순간, 내가 누군가의 사업설명회를 듣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명함 속 수식어들은 자기계발서의 목차처럼 느껴졌다. 그가 직접 말하는 자신의 삶도 명함 속 텍스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반쯤 딴생각을 하면서 기계적인 경청을 하다가 그의 말에 몇 가지 조언을 꾸역꾸역 덧붙였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처음부터 펼쳐둔 수첩에 말끝마다 펜을 움직였다. 그것이 메모인지 복기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는 수강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서 꽤 많은 돈을 받고 있었지만, 어제는 무료 커피를 얻어마시며 우리에게 그런 얘기를 무료로 강요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금 더 우스웠던 건, 그의 명함에는 ‘출판기획 대표’라고도 쓰여 있었는데, 그가 내놓은 출판기획들은 좋은 기획의 요소를 별로 갖추고 있지 못했다. 자기가 기획한 책을 (자비출판이 아닌) 출판사의 비용으로 2권이나 출간했다는 것이, 찬란한 자부심으로 그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2권짜리 경험이 과연 ‘출판기획 대표’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경험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에게는 의미 있고, 나에게는 무의미했던 대화가 멈추지 않고 빠르게 돌아가는 무소음 시계초침처럼 흘러갔다. 슬슬 저녁을 먹으러갈 시간이 되자, 그가 의견도 묻지 않고 말했다. “근처에 국밥 맛집이 있는데 가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분당 자가에 살면서, 억대 투자에 성공하고, 다른 사람의 퍼스널브랜딩을 해주고, 글쓰기 코칭을 해주는 이 사람과 저녁까지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몸의 컨디션을 핑계로 자리를 빠져 나왔다. 분당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은, 국밥집에 들어가자마자 또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여기, 보통으로 두 그릇 주세요!” 그 국밥집에는 선택지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보통 국밥 1만 2천 원짜리, 또 다른 하나는 특대 국밥 1만 4천 원짜리. 친구는 먹는 걸 좋아하고, 먹는 양이 보통 사람보다 많은 편이라 자신은 특대를 시키고 싶었단다. 하지만 친구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게다가 양까지 적은 국밥을 먹고 있을 때, 김 부장은 이 집 국밥은 양이 많아서 보통도 충분하다는 얘기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계산대로 향해야 할 김 부장이 자기 자리에서 또 멀뚱멀뚱 앉아 있기를 시전했다. 친구는 2분쯤 기다렸다가 어쩔 수 없이 자기 카드를 꺼내 계산을 마쳤다. 그랬더니 김 부장이 친구의 가방을 챙겨서 나오며 말했단다. “아니, 제가 사려고 했는데 왜 계산하셨어요?”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냥 조용히 하나의 결론만 떠올렸다. ‘이 사람, 내가 다시 만날 일은 없겠구나.’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가까이서 바라본 그가 희극처럼 보였던 건 내가 그를 ‘타자’로 분리해두었기 때문에 종국에는 멀리서 바라본 것과 더 비슷하게 인식되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내 인간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레이어 안에 그를 끼워 넣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만약 그와 더 가까운 사이였다면, 나는 불쾌함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세상엔 수많은 김 부장이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김 부장’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라이프’를 경영하고 있으니까. 그 전략이 남에게 강요될 때, 그것은 코미디가 되거나, 때로 비극이 된다. 게다가 라이프라는 게 그렇게 쉽게 타자가 우리의 전략을 짜주는 컨설팅이 가능한 분야일까, 하는 의구심도 따라왔다. 인생은 결국, 타인의 매뉴얼이 아닌 자기만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각자 몫의 인생을 누가 대신 정답을 줄 수 없지 않은가.
김 부장의 존재 자체가, 인생의 희극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