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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기록 Jan 18. 2019

나무가 많은 곳으로 이사를 왔다

Storrs, CT

이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아침이다. 이 곳은 예전 내가 살던 남부 텍사스와는 다른 공기와 풍경을 지니고 있다. 온 가족이 이사를 했다. 이사라는 게 어떤 감정으로 찾아오고 감당해야하는 건지 상대적으로 준비가 부족했다. 아이가 텍사스에서의 친구들을 그리워 하는 거 같고, 남편도 새로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는 거 같아서 내가 힘을 보태고 싶었다. 하지만, 어제 문득 깨달았다. 내가 제일 힘들 수 있겠구나. 항상 버티기에 익숙한 나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살피느라 정작 나 자신에게는 너무 소홀했던 건 아닌지. 


그리고, 이사를 온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조금은 외로운 감정일 수도 있다. 이 곳엔 아는 사람도 없이 우리끼리 다시 새로 시작해야하니깐.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 곳에선 나의 자리가 따로 있지 않다. 아직 학위과정에 있지만 나는 학위를 마치지 못한 채 이 곳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 이사를 간다고 할 땐 학위 마칠 때 까지 텍사스에서 머무는 게 어떠겠냐는 조언도 많았다. 어쩌면 그랬으면 1년 안에 기필코 마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마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남는 것에 대해서 현실적으로도 고려해보았다.


가족. 가족은 같이 있어야 한다는 뻔한 말을 시작하려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딸아이가 아빠를 무척 따른다. 아빠도 딸아이와 함께 시간을 같이 보낸다. 어쩌면 내가 예전에 그렸던 모습일 수도 있다. 이게 최근에서야 그릴 수 있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을 유지하기 위해선 우린 같이 있어야 했고, 나는 큰 고민 없이 이사를 결정하였다. 


시간. 시간이 제법 나에겐 많이 주어지는 편일 수 있다. 이제 집 정리도 얼추 끝났고, 아이가 데이케어가 가 있는 동안 오전과 오후 시간을 합치면 나에겐 꽤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편이다. 예전엔 나도 학교에 나가고 주어진 일들을 해야 했으니 나 혼자에게 주어지는 온전한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나에겐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주어지고 있다. 비록 논문을 준비하고 학위과정을 마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의무감과 부담은 여전히 있지만 말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보낼지에 대해서는 이제 좀 더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지금 나무가 많은 곳으로 이사를 왔다. 창밖을 보면 참 푸르르다. 이 광경은 참 좋은데, 내 마음이 푸르른지는 아직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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