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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Jul 28. 2021

반전 뒤에 남겨진 삶에 대하여 | 뮤지컬 '시라노'



본 글은 뮤지컬 <시라노>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을 말한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비밀을 만든다. 뮤지컬 <시라노>의 주인공 시라노 역시 그렇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록산을 위해 말할 수 없는 비밀 한 가지를 만든다. 하지만 그 비밀이, 과연 진정으로 록산을 위한 것이었을까.
 

ⒸCJ EnM


 

  록산. 여자의 몸으로 검술을 배우고 시를 배우며, 자신과 같은 여자들을 위해 문예지를 창간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언제나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록산이지만, 정작 사랑에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하다. 도시의 권력자 드기슈 백작은 매일같이 원치 않는 구애 공세를 퍼붓고, 록산은 그녀를 자유롭게 해 줄 진정한 사랑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운명과 같은 만남이 찾아온다. 록산은 공연장에서 만난 아름답고 잘생긴 청년 크리스티앙에게 한눈에 반하고, 오랜 친구 시라노의 도움을 받아 크리스티앙과의 사랑을 키워간다. 그리고 달이 아름다운 어느 날 밤, 크리스티앙은 어두운 그늘 아래에서 록산에게 보이지 진실한 사랑의 고백을 건네고, 록산은 그의 고백을 받아들인다.


 

ⒸThe New York Times



  하지만 록산의 사랑은 결코 순조롭지 못하다. 드기슈 백작과의 정략결혼은 그녀의 숨통을 조여오고, 백작은 록산과의 결혼을 강제로 진행하고자 한다. 록산은 시라노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크리스티앙과 결혼을 올려 정략결혼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이에 분노한 백작이 크리스티앙과 시라노의 부대를 전쟁터로 보내버리고, 록산은 사랑하는 연인과의 생이별을 겪는다. 록산은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을 지켜달라는 말만을 겨우 남긴 채 그들을 기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산과 크리스티앙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다. 크리스티앙은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서도 매일 같이 록산에게 편지를 보내고, 록산은 그런 그의 편지를 보며 사랑을 확신한다. 그리고 크리스티앙을 돕기 위해 전장의 최전선으로 향한다. 그녀는 기지를 발휘해 전쟁터 한가운데를 지나 부대 주둔지까지 도착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라노의 부대에게 식량을 전달한다. 그리고 크리스티앙에게 그의 편지가 그녀를 여기까지 이끌었노라 고백한다. 록산은 처음에는 그의 잘생긴 외모에 반했을지언정, 지금은 그의 진실한 마음만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록산이 진정한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한 그곳에서 크리스티앙은 목숨을 잃고 만다. 크리스티앙은 록산에게 마지막으로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남기고, 록산은 그렇게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영영 잃어버린다.



ⒸThe Korea Herald



  크리스티앙의 죽음 이후, 록산은 수녀원에 들어가 크리스티앙의 죽음을 기린다. 그녀의 오랜 친구 시라노는 매일같이 록산에게 찾아와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록산은 매번 같은 시간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찾아오는 시라노 덕에 이별의 아픔에서 서서히 회복한다. 하지만 크리스티앙이 죽은 지 15년째 되던 어느 날, 그녀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사실 지금까지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사랑을 말하는 편지를 쓰고, 그녀에게 진실한 고백을 전한 것이 크리스티앙이 아닌 시라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사실 그가 집을 나서는 길에 습격을 받아 큰 상처를 입었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까지 함께 고백한다. 시라노는 그렇게 지금까지 숨겨 왔던 진실을 고백하고 록산의 품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록산은 진정한 사랑을 알아보지 못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슬퍼하며 그의 마지막 곁을 지킨다.



ⒸMichigan Radio



  뮤지컬 시라노의 주인공, 시라노. 시라노의 사랑은 안타깝다. 우리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도 못하고 숨겨야만 했던 그를, 크리스티앙의 죽음 뒤에 사실 편지를 썼던 것은 자신이라고 밝히지도 못했던 시라노를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시라노의 죽음 뒤에 남겨진 록산은 어떠한가. 시라노의 죽음 뒤에 남은 록산의 삶에 대해서는 누가 이야기할 것인가. 죽음 직전의 고백을 통해 록산이 알고 있던 사실은 산산이 부서지고, 록산은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거대한 반전을 마주한 채로 홀로 남겨진다. 홀로 두 사람의 죽음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밝히지 않는 것. 사랑하기 때문에 말하지 못한 것. 우리는 가끔 사랑하기 때문에 거짓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를 위한 사랑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견디고 살아가야만 하는 삶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The Korea Herald

 


  우리가 사랑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사랑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짓말들. 그 진실 뒤에 남겨진 삶은 누구의 것일까. 상대를 위해서 만든 그 모든 비밀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닌 상대방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글 | 김채원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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