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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Jul 24. 2021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이상을 찾아 떠날 것인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당장의 만족 또는 미래의 행복, 이상 또는 현실 등 선택지는 대개 정답이 없고 선뜻 고르기 어렵다. 그렇기에 당신의 결정은 누군가에게 지지를 받기도, 질타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갈림길을 생각해 보자. 험한 길일지라도 바라던 꿈을 향해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서 있던 자리에 남아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것인가?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하늘에 빛나는 달에 닿으려 할 것인가, 눈앞에 떨어진 동전 한 닢을 주울 것인가?




ⒸEnvikaBook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 같다면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이다. <달과 6펜스>는 주인공 찰스스트릭랜드가 물질적 가치를 떠나 예술적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줄거리로 요약되곤 한다. ‘달’과 ‘6펜스’의 의미는 소설 내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달은 예술의 세계 또는 이상의 세계를 상징하고 6펜스는 세속의 현실 세계를 상징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폴 고갱, 1890-1891 Ⓒ위키피디아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영감을 받았다. 현재 고갱은 미술사에서 손꼽는 화가지만, 30대까지만 해도 고갱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누리던 증권거래소 직원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35세가 되어서야 증권거래소를 떠나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갱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예술의 길을 꿋꿋이 걸었다. 6펜스에 안주하기보다 달을 향해 떠난 것이다.


 


Ⓒ영화 '달과 6펜스'




  이러한 고갱의 선택은 매우 거침없고, 심지어는 미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실제로 ‘lunatic’은 달을 뜻하는 ‘lunar’에서 파생된 단어로, '미치광이'를 뜻한다. 서구 사회에서 달은 광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 역시 안정된 지위와 넉넉한 재산을 누리던 40대였으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느끼고 돌연 일상을 뛰쳐나갔다. 그러나 그의 고향 사람들은 평생 쌓아 올린 자리를 터무니없는 꿈 때문에 박차고 나간 스트릭랜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분명하게 통용되는 가치를 원했다. 고향 사람들에게 그는 미치광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스트릭랜드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무료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미친 짓처럼 느껴졌다. 소설 속 관찰자 ‘나’는 스트릭랜드를 떠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중략) 어쩌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그가 진정한 고향을 찾게 된 것은 예술가의 삶을 살며 방랑하던 중 원시 마을 타히티 섬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는 완전한 타지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내면의 예술성을 마음껏 표출했다. 고갱이 열대지방의 원시적인 삶을 동경하며 고향을 떠나 타히티 섬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그 생활을 기반으로 화풍과 색채를 구축했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영화 '달과 6펜스'



  <달과 6펜스>는 결국 마음이 요구하는 바에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스트릭랜드의 예술적 정열은 고향에서는 터무니없고 광기 어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원하던 삶은 타히티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현실에 굴하지 않고 예술을 추구했던 스트릭랜드, 또는 고갱의 정신은 그의 작품이 사후 인정받은 대목에서 고귀하고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현실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달과 6펜스>는 물질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나누어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다른 삶을 지향하는 두 부류가 서로에게 느끼는 이질감과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


 

Ⓒ영화 '달과 6펜스'

 


  그렇다면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당신은 하늘에 빛나는 달에 닿으려 할 것인가, 눈앞에 떨어진 동전 한 닢을 주울 것인가? 누군가는 이상을 향해 도전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어쩌면 모든 사람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지 모른다. 따라서 어떤 방향이든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변화가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의 결과가 인생을 반전시킬 만큼 큰 것이라면 특히나, 자신이 바라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 당신의 선택이 누군가에게 터무니없는 광기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쓸모없어 보이는 동전 한 닢일지라도.






글 | 차주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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