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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Aug 04. 2021

풍요로운 시대, 허기는 어디에서 오나 | '월든'




(굵은 이탤릭체는 모두 <월든>의 본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기술과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21세기. 그러나 사람들은 물질적인 발달과는 별개로 휴식에 목말라 있는 듯 보인다. 정확히는 어떤 ‘허기’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쉬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휴식을 갈망하고, 필요 이상으로 넘치는 음식을 한끼로 소모해 버리는 먹방을 보며 만족감을 채운다. 물질적 풍족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큰 공백이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허기는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이는 2018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단한 현실에 치여온 현대인들이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큰 힐링을 얻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밤에 잠 못 드는 이들은 자연의 소리가 담긴 ASMR을 찾아 듣거나, 한때 TV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나온 연예인 손담비의 불멍(불을 보며 멍 때리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자연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 자연을 우리들은 정작 더럽혀 오지 않았던가? 어릴 적 깨끗했던 고드름이 더러워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식수로 받아쓰던 빗물도 더 이상 정제하지 않으면 마실 수 없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휴식’을 정작 두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에겐 단 한 번도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의 휴식을 위해 자신의 것을 두 눈 뜨고 빼앗길 수밖에 없던 존재가 바로 자연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휴식과 자연의 휴식은 진정 공존할 수 없는 문제일까? 이에 대해 19세기의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월든>이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제공해 준다. <월든>은 무려 19세기에 리틀 포레스트의 삶을 실천했던 소로우의 생활과 사상을 담은 글로, 세기의 고전이자 유명 대학들의 필독서로 지정되어 있다. 그가 말하는 자연에 대한 태도와 인간의 진정한 휴식에 한 번 귀 기울여 보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그는 누구인가?




네이버 지식백과




    학창 시절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서 ‘시민 불복종’이란 이름으로 스치듯 지나간 그를 기억하는가? 그는 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학자로 자연주의 철학을 주장했다. 또한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지만, 부와 명예를 택하는 대신 목수나 측량일 등 직접 땀 흘려 일구는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왜 그런 삶을 택했는지 조금 의아하겠지만 소로우는 세속적 성공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19세기는 산업혁명으로 이제 막 기계문명이 발달하던 때였는데, 그는 급격한 산업 발달에 회의적인 입장이었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삶을 선호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월든>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명이 우리의 주택을 개선해왔으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똑같은 정도로 개선하지는 못했다.”


  소로우는 자신의 인생에서 한 가지 실험을 하기로 결심했는데, 그것은 숲에 들어가 직접 집을 짓고, 농작물을 가꾸며 사는 자원을 최소한으로 이용하는 삶이었다. 실제로 그는 1845년에 마을을 등지고 월든 호숫가의 숲에서 약 2년 동안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으며, 그때 집필한 것이 바로 <월든>이었다.



  하지만 ‘몇 세기 전에 쓰인 책 한 권에서 과연 얻을 게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전으로부터 배움을 얻을 필요가 있다. 과거는 그저 낡은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보다 앞서 생을 경험한 이들이 남겨 둔 지혜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소로우 또한 고전이 인류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라고 언급했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전 연구를 그만두는 것은 자연이 낡았다고 해서 자연 연구를 그만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과연 <월든>으로부터,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소로우는 월든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나


 

1854년 월든 초판본 첫페이지




  먼저, 소로우는 왜 인간이 진정한 휴식을 가지지 못하는가에 대해 말한다. 19세기 사람들의 고민은 재밌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본주의 시대에 집값이 폭등하면서 월세를 내고 사는 청년들, 직업과 소명에 대한 고찰, 휴식에 대한 갈망은 그 시대에도 비슷하게 존재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소로우는 사람들이 너무 과할 만큼의 풍족을 원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데에는 거대한 집이나 넘치는 가구와 살림살이 등이 사실 필수적이지 않은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얻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들여 노동한다는 것이다. 정작 얻고 난 후 그들의 생은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인간은 이제 자기가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왼) 국제신문 / (오) 한겨레



  그러나 월든 호숫가의 생활에서 그가 직접 집을 완전히 짓는 데에는 1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거기에 든 돈은 불과 28달러 12.5센트밖에 들지 않았다. (*당시 하버드 대학의 기숙사 방세가 1년에 30달러였다.) 이 밖에도 그는 농작물을 직접 키우거나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며 식량을 마련했다. 그런 소박한 생활이었지만, 그는 절대 허기지는 법이 없었다.



(왼) 연합뉴스 / (오) 국제신문



  그에 비해 매일을 집값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진정한 휴식을 누리겠는가? 집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더, 더, 더 얻기 위해서 노동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휴식은 없다. 이에 소로우는 독자들에게 진심을 다해 부탁했다.



간소하게간소하게간소하게 살라!”


 








간소하게, 자연을 위해


 


  만약 소로우의 말처럼 우리가 조금만 더 간소하게 살고자 노력한다면, 우리의 휴식도 그리고 자연의 휴식도 늘어나지 않을까. 그는 사람들이 “땅 위에 정착하고 나서 하늘을 잊어버렸다."라고 말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매일 하루에 한 번 이상 자연을, 풍경을, 하늘을 들여다보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조금만 더 부유해지고자 스스로 동굴로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자연에게는 자연을 이해해 주는 인간의 주민이 없다.”


우리가 진정한 자연의 주민이 되려면, 우리의 먹는 것에서도 좀 더 간소해질 필요가 있다.



“사실 인간은 주로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으면서 살아갈 수도 있고, 또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참한 일이다. 덫을 놓아 토끼를 잡아본 사람이나 양을 도살해본 사람은 그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인간이 직접 살육을 저지르면서 자신의 밥상을 차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 끔찍함을 직접 느낄 일이 일평생 거의 없는 사람들의 사회는 육식주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이젠 먹다 못해 입는 것까지 동물들의 살가죽을 벗겨내 얻으려 하고, 그것에 높은 값어치를 매기니 수요 또한 많아진다.



  사실 우리 모두가 고기를 위해 만들어진 농장들의 열악함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수많은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 자연은 또 얼마나 훼손되고 있는지도 말이다.


 








21세기의 월든은 어디에 있나


  다행스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환경문제가 다시금 대두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점점 제로-웨이스트, 비건, 동물실험 제품 불매 등이 차츰 인식을 넓혀가고 있다. 자연이 위태롭다면 인간 또한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간의 진정한 휴식은 자연의 휴식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휴식하기 위해 자연을 필요로 한다.



만약 우리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인적 드문 숲과 강변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지극히 단조로울 것이다. 우리는 야성의 강장제를 필요로 한다. 때때로 우리는 뜸부기와 해오라기가 숨어 사는 늪 속을 무릎까지 빠지며 건너보거나 도요새의 날갯짓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야성의 외톨이 새만이 둥지를 틀며 족제비가 배를 땅 가까이에 대고 기어가는 곳에 가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골풀의 냄새를 맡을 필요가 있다.”


  소로우처럼 극단적인 삼림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진정한 휴식을 논하기 전에 그 밑바탕인 자연이 쉴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라도 조금씩 실천 가능한 일들을 해나간다면, 21세기에도 얼마든지 우리들의 월든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글 | 김민경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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