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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Aug 07. 2021

잠자는 게 하나의 '예술'이라구요?



일상의 쉼표이자동물의 몸으로 취할 수 있는 가장 깊은 휴식.
모든 생명체들이 전부 경험하지만동시에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시간.
바로 수면이다.

 






수면, 익숙하고 친밀한 것



(왼) ⒸGallerie degli Uffizi / (가운데) ⒸMusée d'Orsay / (오) ⒸWikiart



  잠은 아마도 미술관에서 가장 찾기 쉬운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로마 시대의 <잠자는 아리아드네>나 반 고흐의 <정오의 휴식>처럼 단순히 자는 인간을 그리거나 조각한 작품은 물론이고초현실주의 그림처럼 꿈을 주제로 삼은 작품 또한 무궁무진하다이는 잠이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영감의 근원이며가장 익숙한 주제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작품들은 묘사된 수면에 불과하다영국의 현대미술가 코넬리아 파커는 진짜 잠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온다작품 <The Maybe>에서 말이다.


 







수면, 낯설고 새로운 것



(왼) ⒸNY Daily News / (오) ⒸThe New York Times



  작품의 퍼포머는 유리상자에 담겨 대중들 앞에 전시된다그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단 두 가지이다첫째수면제를 먹을 것둘째오랫동안 잠들 것. <The Maybe>에는 배우 틸다 스윈튼이 퍼포머로 참여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관객들은 마치 귀중한 공예 작품처럼 유리관 속에 들어간 인간을 만나게 된다그토록 익숙한 수면인데도관객들은 오랫동안 흥미롭게 퍼포머를 바라본다죽은 듯이 깊게 자는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는 경험은 아마도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은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이다남들의 수면은 그들의 집 안에서 일어나고자신의 수면은 카메라에 기록하지 않는 한 바라볼 수 없다전 세계의 인간 모두가 취하는 수면이지만이 작품 앞에서 우리는 수면을 새롭고 낯설게’ 보게 된다.









미술관에 ‘진짜’를 가져오다



(왼) ⒸThe Independent / (오) ⒸThe New York Times



  <The Maybe>와 아주 유사한 작품이 있다바로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이다허스트는 이 작품에서 실제 죽은 상어를 포르말린에 담가 전시했다시체의 썩는 냄새는 없을지라도, 입을 벌린 채 영원처럼 멈춰 있는 상어는 그 자체로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묘사된 죽음만이 가득한 미술관에 진짜 죽음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The Maybe>와 이 작품은 비슷한 표현 양식을 가지고 있다허스트의 작품이 죽었지만 살아있는 듯 보이는’ 상어인 반면, <The Maybe>는 살아있지만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 또한 존재한다.


  허스트의 작품 앞에서 관객의 반응은 다양하다어떤 사람은 공포에 사로잡힐 것이고어떤 사람은 죽음의 필연성을또 어떤 사람은 자연계의 순환을 떠올릴 것이다현대미술의 특징이자 핵심은 관객의 감상이 작품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The Maybe>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수면, 가치 있고 예술적인 것




  ‘자는 시간도 아깝다’는 말이 있다.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더 열심히, 더 능률적으로 일할 것을 강요당한다. 물론 외부의 압박도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조금 덜 자고 조금 더 공부해야지, 조금 덜 쉬고 조금 더 일해야지’라는 마음이 당연시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우리는 심지어 휴식과 여가의 순간조차도 ‘쓸 데 없이’ 소비하기를 꺼린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만들고, 소비해야 한다는 강박이 만연하고, 게으름은 실패한 인간의 표식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수면은 쉽게 간과되고, 다른 일들에 쉽게 밀려난다.

  하지만 작품 <The Maybe>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인간적인 순간은 바로 ‘수면의 순간’이라고. 고귀하든 비천하든, 아름답든 추하든, 결국 우리는 모두 ‘자는 존재’일 뿐이라고. 혹자는 이에 ‘삶의 덧없음을 표현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등한시되어 온 수면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평생 약 26년 정도를 자면서 보낸다고 한다. 단위를 바꿔보면 약 9500일, 약 23만 시간의 수면을 취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고통이 가득한 우리의 삶 속에서, 오랜 시간을 잠든 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은 행복일지도 모른다.


유리상자 속 퍼포머의 수면도지친 당신이 취할 오늘의 수면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글 | 강운지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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