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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Aug 11. 2021

쉼표라는 호흡 | 화백 유영국(1916-2002)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에서 산지가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산이 많다. 건물과 하늘이 만나는 지점인 ‘스카이라인’을 살펴보면 각 나라마다 특색 있게 나타나는데, 한국의 스카이라인은 단연 개성 있다. 특히 백악·인왕·남산이 곡선을 이루는 서울 도심의 스카이라인은 한국 역사의 산증인이다. 세월이 흘러 한국 땅의 대지가 바뀔 때에도 산은 그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 1분을 1년처럼 쓰는 한국인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 산은 오래도록 고요히 그 자리를 지키는 굳건한 대상이었다.


  이러한 산의 면모를 이해하고 산을 비롯한 자연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인 사람이 있었다. 자연이 안식처이자 거대한 쉼표였던 사람. 바로 유영국 화백이다.


 






쉼표를 찍기까지



1940년 청년 유영국 | 사진=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은 한국이 일본의 통치를 받던 1916년, 울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5년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에 발을 들이게 된다. 당시 아시아 문화의 중심지이자 미술계 관심의 대상이었던 도쿄에서 그는 각종 유럽의 문화와 새로운 문물을 접한다. 예술가로서는 최고의 생활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일찍이 유럽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선배들이나 동료 미술가들과 교류를 하며 앞으로 더욱 활발한 미술 활동이 펼쳐져 있기를 꿈꾸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1940년대에 접어들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암흑기가 찾아온다. 예술은 시대를 따라가는 법. 화가들은 전쟁화 제작에 동원되는 등 예술의 자유는 철저히 박탈당하고 만다. 파죽지세로 꽃을 피워나가던 예술 활동의 길이 한순간에 가로막히자 유영국은 고향 울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고국 땅에도 광복기의 혼란과 6·25 한국전쟁이 연달아 찾아오면서 온전히 미술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암울한 상황에서 유영국이 선택한 길은 바로 ‘휴식’이었다. 앞으로의 꿈을 이어나갈 중간단계에서, 그는 결연한 자세로 ‘쉼표’를 찍는다.












  유영국은 오래 펼쳐온 그림 활동을 잠시 접고 어부로 생활한다. 고향 울진에서 양조장 사업을 경영하기도 한다. 그는 이제껏 자신이 몸을 던져왔던 그림과 거리를 두며 완전히 다른 생활을 영위한다.




유영국, <바다풀>, 캔버스에 유채, 130.2×96.1cm, 1959,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위 그림은 양조장 사업을 했을 당시 1950년대에 제작된 그의 초기작이다. 울진에서 어부와 양조장 사장으로서의 생활을 하며 그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바로 ‘자연’이었다. 당시 울진은 어촌과 산이 앞뒤로 둘러싸여 있는 오지였는데, 유영국에게는 최고의 쉼터였다. 그곳의 자연 풍광을 보며 유영국은 스스로에게 선사한 쉼표를 즐겼다. 그는 인생에서 마주한 거대한 휴식기 속에서 자연, 그리고 스스로와 호흡했다. 천천히, 깊게.


  울진에서 보았던 드높은 산들, 마음을 물들였던 산들 모두 그의 호흡과 섞여 새로운 유영국만의 그림으로 재탄생한다.


  그는 후에 다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쳐나간다. 널리 알려진 원색 위주의 작품들은 모두 고향의 풍경을 경험하고 난 말기에 그려진 것들이다.



유영국, <산>, 캔버스에 유채, 53.5×73cm, 1970년대, 대구미술관 제공



(상) 경북 울진군 매화리의 남수산 전경. (하) 유영국, 산, 캔버스에 유채, 97×131㎝, 1984, 개인소장









내면의 호흡으로 더 강한 울림을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역사적 혼란기의 대부분을 겪으며 유영국 또한 여타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미술 활동의 기로에서 주춤했을 것. 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적 조류에도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휴식을 선언했던 유영국. 그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선택했다. 산과 바다에서 휴식을 취하며 그는 자신과의 고요한 대화를 시작했다. 구도자적 자세로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했다.


  동료 화가들이 교수직을 택할 때 홀로 평생 전업화가의 길을 걸었고, 다른 추상화가들이 시대에 맞춰 화풍을 변모해나갈 때 유영국은 자신의 미적 세계관을 고집했다.


천천히 함께 호흡하였을 산과 그로부터 느껴지는 장대한 자연의 숭고미.


강렬한 원색의 배합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조형미.


그의 세계관은 마치 혼란의 시기를 홀로 고고하게 비켜선 채 천천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호흡했던 작가 자신과 닮아있다.




유영국, Work, 캔버스에 유채, 135×135cm, 1978 | 사진=국제갤러리




“내 그림은 주로 ‘산’이란 제목이 많은데, 그것은 산이 너무 많은 고장에서 자란 탓이다. ‘숲’이란 그림은 내가 어렸을 때 마을 앞에 놀러 다니던 숲이 생각나서 그린 것이다. 항상 나는 내가 잘 알고 또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곳에서 느낀 것을 소재로 하여 즐겨 그림을 그린다.”



  산속에 몸을 맡기며 내면과 묵묵히 호흡했던 유영국은 그 자신이 거대한 산이었다. 오늘날까지 말없이 우리 곁을 지키는 한국의 산들처럼 그 또한 말 없는 추상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 따라서 훗날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울림을 느끼게 한다. 그가 거대한 쉼표로 얻은 내면과의 대화. 이 대화는 고스란히 그림으로 남아 울림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색의 단순한 면 분할은 그 이상의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며 오늘날까지 우리 곁에 남아있다.




생전 작업실에서의 유영국 화백 | 사진=유영국미술문화재단





바라볼 때마다 변하는 것이 산이다.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쉼표가 마침표는 아니니까



삶을 살다 보면 사소하더라도 깊은 울림을 주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 번쯤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을 때가 있었을 것. 공기의 흐름만을 담은 빈 공백을 듣고 나서야 다시 음악을 재생한다. 그렇게 듣는 음악은 예상 밖의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멜로디 하나하나가 귀에 박히면서 마치 새로운 선율을 듣는 듯하다.


인생을 사는 것 또한 매한가지다. 거대한 쉼표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내면과 천천히 호흡한 후에야 비로소 더 강한 울림이 찾아온다. 유영국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쉼표를 찍었다고 모든 게 끝나버리지 않는다. 쉼표가 마침표는 아니기에.


쉼표를 찍음으로써 “지금 잠시 호흡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것일 뿐이다.




유영국, Work, 130.3×193.9cm(120호), 캔버스에 유채, 1989 | 사진=케이옥션



멈추는 법을 몰라 달리기만 했던 사람들에게.

또는 8월 여름 한낮의 따스한 햇살이 유독 답답한 습기로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과감히 ‘쉼표’를 찍을 때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세의 고고함에 실려 발걸음을 잠시 멈춰보자.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나면 비로소 익숙했던 것들이 새롭게, 안 보이던 것들이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더 강한 울림으로 당신이란 사람을 빛나게 할 것이다.


 



“그랬다. 유영국에게 추상의 길은 어쩌다 보니 들어선 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슨 운명처럼 맞닥뜨린 길도 아니었다. 그것은 유영국 스스로 처음부터 먼 훗날까지 내다보고 결정한 운명이 아닌 ‘선택’이었고, 그 길의 궁극은 ‘자유’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추상’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30p







글 | 김은강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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