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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Aug 14. 2021

쉬어감의 미학, 그리고 다시


  열정으로 가득 찬 세월을 보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피로의 시간이 찾아온다. 잠시 멈춰 그동안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우리는 이것을 쉼, 휴식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쉼의 시간에서  사람들은 또다시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다.
 
  8월, 찌는 듯한 무더위와 피로를 풀기 위해 산으로 바다로 바캉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그렇듯, 쉼의 시간에서 보통의 사람들은 푸르른 녹음과 자연을 떠올리고는 한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의 휴식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인간에게 안식처가 되어준 듯하다. 그 때문일까, 푸른 자연에서의 휴식을 다시 재충전의 기회이자 산물로 승화한 화가 모네의 작품은 오늘날 조국 프랑스를 넘어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본디 프랑스의 대표 화가로 한국에 잘 알려진 모네는 당대, 도시 풍경화 장르로 파리 화단에 이름을 날렸다. 그의 초기 작업세계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자연, 수련 연작과 같은 작품과는 꽤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화려한 도시 파리에서 생활하며 본인이 살아가는 세계를 보다 정확히 통찰해 작품 세계를 펼쳐가기를 바랐다. 


유럽다리, 생 라자르 역, 1877, 캔버스에 유채, 65x81cm, 마르모탕미술관 소장




  이렇듯 모네의 초기 작품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연의 인상을 표현한 듯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그가 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마다 자신이 느낀 세상을 표현한 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모네가 초기 작품 활동을 펼치던 시기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때로, 프랑스는 파리를 중심으로 화려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모두가 바쁘고,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화가 모네는 작품의 영감을 받지 못한 채 지쳐 있었다. 이에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한 모네는 파리 도심에서 점점 멀어져 아르장퇴유, 베테유를 비롯한 도시에서 몇 번의 교외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아예 산업화의 영향이 닿지 않을 프랑스의 아주 조그만 시골 마을, 지베르니에 정착해 40여 년의 세월을 완전한 자연 속에서 보냈다. 그동안 그는 우리가 잘 아는 수련 연작을 비롯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여러 작품을 발표한다. 그 자체로 세계인의 가슴에 울림을 전하는 아름다운 수련은 화려한 기교나 색조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임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는 곧 모네의 눈에 비친 자연이 그만큼 아름다웠을 것을 예측케 한다.



(왼) 아이리스가 있는 모네의 정원, 1900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 (오) 지베르니 정원의 큰 길, 1902년, 빈,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




  모네는 본인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백 마디의 설명보다 자신이 가꾼 정원을 보는 게 낫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실제로 작품 생활을 이어가며 작품의 주제가 되는 자연을 직접 자신의 정원에 들여오기에 이르렀다. 직접 자신의 아이들과 정원을 가꾸고 전문 서적을 통해 공부하며 모네는 자신의 모든 정성을 정원 가꾸기에 바쳤다. 정원이 다채롭게 무르익어갈수록, 그의 작품은 보다 깊은 색감과 모양을 담을 수 있었다. 복잡한 도시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이들과 자연 속에 파묻힌 휴식의 시간은 그가 만든 또 다른 작품이었던 것이다.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아침, 대장식화, 1920년 ~ 1926년,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정원에서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작업은 이어졌고 전쟁과 노쇠로 인한 고통을 겪으며 그의 삶은 흘러갔다. 힘겨운 삶 속에서 그는 정원 속 자연을 통해 안정을 얻을 수 있었고, 다시 붓을 들고 인생을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쉼과 이어짐의 반복 끝에 그는 완전히 인생의 쉼표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쉼표는 작품으로 남아 현재 세계 많은 이들의 영혼에 또 다른 쉼표가 되어주고 있다. 










  무더운 8월, 지금 인생이 찌는 듯이 버겁게 느껴지는 당신에게 모네의 수련을 전하고 싶다.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쉬어감의 미덕을 음미하기란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을 알지만 충분한 휴식이 있어야만 새로운 영감이 피어날 수 있음이다. 모네의 정원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진 것만 같은 쉬어감은 사실 현실로부터 가장 단단하게 엮여 있는 삶의 부분이 아닐까. 당신만의 정원에도 늘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싱그럽게 피어있길 바란다. 







글 | 주소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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