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프로그램 약 2분 50초, 프리 프로그램 약 4분 10초. 도합 7분 가량의 짧은 순간만에 순위가 가려지는 스포츠 피겨 스케이팅.
그 고독한 세계에서 '피겨 여왕', '얼음 위의 승부사', '대인배', '강심장'으로 칭해졌던 선수, 김연아.
불모지였던 한국의 피겨 스케이팅계를 개척하고 불세출의 선수가 된 그는 특히 떨리고 긴장될 대회의 순간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정신력을 보여 왔다.
그랬던 김연아 선수가 유일하게 자신의 입으로 “반드시” 메달을 따고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던 유일한 대회. 바로 약 2년간의 공백 끝에 참가한 2013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세계 선수권 대회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데뷔부터 온 국민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세계 챔피언 등극, 일생일대의 꿈이자 한국 최초의 피겨 금메달이었던 올림픽 챔피언 등극까지.
수많은 영광의 순간들을 지나 김연아 선수는 만 20살, 2011년 세계 선수권 대회를 끝으로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고도의 유연성과 체력을 요하는 피겨 스케이팅은 10대에 전성기를 맞을 정도로 선수 생활이 짧은 종목으로 알려져 있다.
전성기를 지나는 나이에 이루지 못한 목표도, 꿈도 없었던 그에게 더 이상의 선수 생활은 어떠한 동기 부여도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2013년, 무려 1년 8개월이라는 긴 공백을 깨고 김연아 선수는 다시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그리고 밝힌 목표는 201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2위 이상으로 입상하는 것. 이루고자 한 목표 그대로 그는 이전과 바뀐 규정, 신체 상태, 오랜만에 느낄 경기 감각과 같은 모든 불리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2위와 무려 20점이 넘는 점수 차를 내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전 세계가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연기를 두고 여왕이 돌아왔다며 극찬을 쏟아냈다. 그리고 모두가 주목한 그녀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자신의 우승보다 대회의 부상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2위 내로 입상한 선수의 국가에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권 3장. 그는 자신의 개인적 성취나 목표보다는 한국 피겨계 후배들에게 더 큰 무대를 경험시키고자 공백을 깨고 복귀한 것이었다.
긴 공백의 시간 동안 그녀는 후배들과 훈련하며 자신이 할 일이 남아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이루어 두었던 세계로 다시 돌아가 새로운 경쟁에 뛰어드는 것. 그 부담을 이겨내기 위한 공백의 시간 동안 결국 그를 움직인 것은 자신이 아닌 자신을 위해 응원과 영감을 보내준 이들이었다.
그리고 논란의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그녀의 선수 생활은 끝끝내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논란에 대해 질문받을 때, 그는 금메달 획득보다 올림픽에 후배들과 출전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그를 이루었고 어떠한 메달리스트보다 자신이라는 선수 자체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을 남겼다.
잠시 멈춰 서면 앞을 보고 달려갈 때 보이지 않던 것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숨 고르기의 시간 동안 우리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고 때때로 이러한 시간이 인생 자체의 의미를 던지기도 한다. 그에 감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여백을 새롭게 채우고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여전히 피겨 스케이팅 후배들에게 레슨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본인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다는 김연아. 그는 최근의 캠페인 영상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자신감이 드러난다는 말을 전한 바 있다. 지금은 어느덧 선수 생활을 마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이지만 그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공백 없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글 | 주소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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