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간 도슨트 Dec 01. 2020

자유를 춤춘 이단아 '이사도라 던컨'

최선을 다한 수험생들에게

그 무용수가 입고 나온 옷은 발레리나의 튜튜가아닌 고대 그리스의 튜닉이었다



©wikipedia



  자연스럽게 살이 오른 몸, 자유분방하게 흔들리는 팔다리, 새하얀 맨발로 무대를 누빈 이 이단아는, 바로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7-1927)이다. 









“당신의 춤은 우리 극장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던컨이 오디션을 볼 때마다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당시의 극장들은 무용수에게 완벽하게 신체를 통제하기를 요구했다. 19세기 후반 발레 공연이라 함은 주로 고전 발레 작품을 일컬었고고전 발레의 정수는 단련된 몸으로 손가락 한 마디까지 제어하는 섬세한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그들이 보았을 때 던컨의 춤은 너무나도 ‘격식이 없고’, 따라서 ‘형편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던컨의 생각은 달랐다고전 발레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는 ‘개조된 육체’와 ‘빈틈없는 군무’는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과 거리가 멀었다관절을 꺾고 발을 혹사시키는 행위여러 사람이 한 사람인 양 정확히 동작을 맞추는 연습... 이 모든 것들은 어느 하나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던컨은 위태로운 토슈즈 대신 맨발로 춤을 추었고자로 잰 듯 뻣뻣한 안무 대신 무대 위를 뛰어다니기를 택했다팔과 다리는 특정 자세를 잡는 대신 자유롭게 나부끼게 하고얼굴에는 꾸미지 않은 미소를 비추었다던컨이 보여준 것은 ‘안무를 수행하는 육체’가 아닌 ‘살아있는, 감정이 담긴 육체’였다



©rome central magazine




그렇다면 그녀의 자유분방한 춤이 그저 이유 없는 고집에 불과했을까그렇지 않다


  

    던컨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해안가에서 태어났다던컨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린 시절부터 여러 음악과 시를 들려주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적 재능을 불어넣어 주었다던컨은 자서전에서 '유년기 때 공립학교 제도에 염증을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그녀에게 학교란 규율이라는 법칙 아래 천편일률적인 인간의 모습을 강요하는 수용소와 같았기 때문이다던컨은 어머니와 함께 음악을 듣고 연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저녁을 ‘진정한 수업 시간’으로 여기며 성장했다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토슈즈를 벗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인정을 받기 전유럽으로 건너간 던컨은 여러 철학자들을 만났다. 이 만남은 그녀가 춤에 대한 철학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던컨은 특히 니체의 철학에 몰입하는데니체는 획일적인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은 인간의 의지와 감정을 긍정한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던컨의 춤은 니체의 철학과 맥을 같이 했다본연의 의지와 감정이 몸을 통해 폭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예술그것이 던컨의 춤이었다


  더불어 던컨은 서양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 문화를 찬미했다. 던컨은 ‘자연적인 동작의 연속’을 추구했고이는 ‘자연의 끝 없는 생성과 소멸’을 말한 고대 그리스의 종교관과 많은 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또한 그녀가 항상 무대에서 입은 튜닉은 고대 그리스의 전통 의상인 동시에 신체를 억압하지 않는 옷의 형태이다. 즉, 그녀의 춤은 주체적인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이렇듯 마냥 즐겁고 단순해 보이는 그녀의 춤은 단순한 어린아이의 치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수의 철학자들과 나눈 대담과 스스로의 연구 끝에 만들어낸 예술 세계였으며동시에 던컨 자신의 내면적 표현이었다





무용수의 몸과 정신에 자유를



  튜튜와 토슈즈를 벗어던진 던컨의 모습을 보고 당시 관객들이 받았을 충격을 생각해보라. 초창기에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그녀는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무대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전 세계 무용계를 완전히 뒤흔든다. 프랑스 화가인 '외젠 카리에르'는 던컨의 춤을 보고 이러한 찬사를 보냈다. 

  “이사도라 던컨의 춤은 단지 오락거리가 아닙니다. 그녀의 춤은 살아있는 예술 작품입니다.” 

  던컨은 단단하게 조이는 무대 의상으로부터 무용수의 신체를, 테크닉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무용수의 정신을 해방시켰다. 이것이 바로 ‘현대무용’의 탄생이다. 던컨 이후 무용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통제된 육체’ 뿐만 아니라 ‘해방된 육체’ 또한 무용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반발은 곧 미래를 향해 펼쳐진 돛이었다. 전통에 대한 부정 그 자체였던 던컨의 춤은 결과적으로 무용의 지평을 크게 넓혔다. 무대 위의 이단아는 이렇게 전설이 되었다. 




 

Margaretta Mitchell, Dance for Life: Isadora Duncan and Her California Dance Legacy at the Temple of Wings (Berkeley, Calif.: Elysian Editions, 1985). Copy 23 of 50. Rare Books: Theatre Collection (ThX) Oversize GV1785.D8 M57f









던컨의 춤을 꺼려 했던 극장들의 반응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너는 우리 집단에 적합하지 않다."
"시스템에 맞추어라."
"관례이니 납득해라".
"점수가 부족하니 더 노력해라."



  서로에게 압박을 가하는 한국 사회가 떠오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틀에서 찍어낸 것 같은 단 한 가지 방향을 요구한다. 무용수들에게 더 현란한 테크닉을 요구하듯, 더 휘황찬란한 학력과 경력을 원한다. 가끔 멈춰 서서 쉬는 자연스러움 대신, 끝없이 달리는 치열함을 종용한다.


  한국 사회의 획일성을 만드는 가장 첫 단계는 다름 아닌 ‘수능’이다. 학생들은 더 좋은 점수와 등급을 받으려고 사활을 건다. 단 하루의 시험에 초등학교 6년에 중학교 3년, 또 고등학교 3년을 건다. 총 12년의 삶이 등급 매겨지고, 어떤 이들은 크게 절망하여 안타깝게 스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험 점수는 결코 그 사람의 인생을 대변하지 않는다. 원하는 학교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빛나는 개인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12월이다. 이번 수능을 준비한 모든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 또한 수없이 부딪히고 좌절했음을, 그러나 결코 절망하지 않았음을. 세기의 이단아 이사도라 던컨의 행보를 통해 영감과 용기를 얻길 바란다.



제아무리 견고한 시스템이라도 인간의 감정까지 억압할 수는 없으며,
스스로의 의지에 귀 기울인다면 불가능이란 없다
맞출 수 없다면 벗어던지고, 납득할 수 없다면 깨고 나오라.
그들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어라




https://youtu.be/Kq2GgIMM060

(실제 던컨의 춤이 아닌 재연 영상입니다.)





글 | 강운지

편집 | 김희은





아래 월간 도슨트 인스타 계정을 통해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https://instagram.com/monthly_docent?igshid=1c09qpgfuv  

작가의 이전글 그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사랑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