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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Dec 05. 2020

납작한 캔버스 위의 이단아,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Sotheby’s



  잭슨 폴록은 미국의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이다. '추상표현주의'는 어떤 대상을 모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형태와 대상이 없는 추상적인 표현을 통해 그림을 완성하는 사조를 일컫는다. 추상표현주의를 표방한 화가 중 가장 유명한 인물 '잭슨 폴록'은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화폭을 두고 걸어 다니면서 물감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이러한 그의 신선한 시도 덕분에,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폴록을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소개받아 왔다. 그러나 여태 “우리 딸이 어린이집에서 그려온 것과 다를 게 없는 걸”이라며 푸념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그의 그림에는 어떠한 특별함이 있기에 그를 거장이라고 칭하는 것일까?










©Tate



  폴록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적 자동기술법을’ 활용한다. 다시 말해, 물감이 가지고 있는 흐르는 속성과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에 모든 것을 맡긴다. 그림이 ‘자동으로 그려지게’ 말이다. 그림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그 결과가 어떠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의 작품은 흩뿌리는 행위를 통해 물감이 떨어진 결과일 뿐이다. 작품보다 중요한 것은 폴록의 정열적인 ‘행위’ 자체이다.


  비평가 '로젠버그'는 이런 폴록의 작품을 놓고 ‘그의 화폭은 대상을 재현하는 공간이 아닌 행위를 위한 경기장’이라고 칭했다. 잭슨 폴록에게 화폭은 단순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을 무섭도록 똑같이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에게 화폭은 즉각적이며 현실을 초월한 전쟁터였다.



©매일경제



  폴록의 캔버스는 그가 가진 ‘남성적’, ‘미국적’, ‘이성적’인 에너지의 발산 장소가 되었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그에게는 완성된 작품보다도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즉 물감을 뿌리고 흐르도록 하는 순간들이 더욱 중요했다. 그래서 그는 사진사를 고용하여 그의 작업 과정들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찍힌 그의 작업 과정들은 작품과 함께 전시되어 폴록의 예술 중 일부로 여겨졌다.



잭슨 폴록 <파시파에>, 유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etmuseum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왜 그에게 열광했을까? 폴록이 본격적으로 작업을 할 당시, 유럽은 나치의 폭압 아래 있었다. 독재 정권의 통제 속에서 전통적 미술의 중심지인 유럽은 붕괴했고, 유럽의 미술가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뉴욕이 미술의 신중심지로 새롭게 떠올랐다. 더불어 미술가들은 나치의 등장으로 잃어버린 인간 이성을 되찾고자 미술에 철학적 사고를 더했다. 당대 미술이 추구해야 할 철학, 즉 미술의 본질은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Clement Greenberg ©Artspace



  이에 비평가 '그린버그' 미술, 좁게는 회화의 본질이 ‘캔버스 있다고 보았다. 여태까지 수많은 미술가들은 ‘평평한캔버스 속에 ‘평평하지 않은대상을 그려내려고 했다. 다시 말해, 2차원인 캔버스 위에 실제 세상과 같은 3차원을 그려내려고 했다. 그러나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입체를 구현하는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격변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미술의 본질재탐구하고자 했고, 이때부터 캔버스는 미술의 재료를 넘어서 미술의 본질로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납작한 캔버스 평면'을 미술의 본질로 규정한 뒤부터 2차원 평면에 부합하는 미술이 추앙 받는다. 대상을 완벽하게 그린 그림보다 캔버스가 가진 납작함을 극대화하는 그림들이 인기를 얻었다. 폴록의 그림은 이러한 새로운 미술관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그의 그림은 대상을 재현하려 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회화라는 ‘평면’을 받아들인 결과물이었다. 물감이 중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납작한 캔버스로 떨어지게 되고, 떨어진 물감들이 모여 새로운 평면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잭슨 폴록 , 유화, 테이트모던 ©Pollock-Krasner Foundation



  게다가 폴록은 조국에 '미국 고유의 미술'을 선사했다. 폴록의 ‘액션 페인팅’, 즉 물감을 바닥에 뿌리면서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는 자유와 정열, 진보를 상징했다. 미술의 신중심지가 된 미국은 보수적인 유럽에 대항해 자유로움을 표방했다. 유럽에서 중시한 사조나 화풍보다는 작가 각각의 자유로운 개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유럽과 대비되는 '미국만의' 미술이 필요했고, 동시에 새시대의 미술을 대표할 영웅이 필요했다. 자유롭고도 열정적인 폴록의 작품들은 섬세하고 고요한 유럽의 미술과 강하게 대조되어 미국 미술의 상징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자인 그는 마치 신과 같이 여겨졌다. 이로써 폴록은 미국 현대 미술의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폴록이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가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그가 시대를 탁월하게 읽어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미술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간파했기에, 폴록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잭슨 폴록 , 유화, 뉴욕현대미술관 ©Moma





글 | 이서연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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