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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Dec 26. 2020

세상에서 가장 비싼 풍선 강아지 | '제프 쿤스'



크리스티 경매장에 전시된 제프쿤스의 ‘Balloon Dog(벌룬독)’ ©Getty Images



  당신이라면 이 반짝거리는 풍선 강아지를 얼마 주고 사겠는가? 어릴 때 키가 큰 삐에로 아저씨가 눈 앞에서 풍선을 불어 만들어주던 강아지 모양을 닮은 작품이다. 풍선 강아지를 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어린 시절 추억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반짝이는 광택과 귀여운 형태, 익숙한 모양의 이 조각은 무려 670억을 호가하는 가격에 팔렸다. 그리고 그 가격은 계속해서 갱신되고 있다. 


  값비싼 예술품 하면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 앤틱 느낌의 고가구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먼 옛날 귀족이 장식품으로 사용했을 법한 우아한 조각이나 티아라 같은 것들 말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상하고 아우라가 넘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고가의 예술품이다. 그러나 이 벌룬독(balloon dog)은 전혀 그렇지 않다. 화려한 금박이나 고급스러운 곡선도 없고,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소재도 아니다. 광택은 우아함을 자아내기 보다는 지나치게 반짝거려 마치 어린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머리핀과 같다. 대중을 배제하는 고급문화가 아닌,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저렴한 대중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Jeff Koons ©Fortune



  이 벌룬독은 네오팝 작가 제프 쿤스의 ‘축하 (celebration) 연작’의 일부이다. '네오팝'이란 1980년대 뉴욕에서 등장한 팝아트적 미술의 양상을 일컫는 말이다. 네오팝은 우리가 잘 아는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미술과 대중문화의 융합을 꿈꾸었다. 네오팝은 팝아트와 달리 현재 자신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변화에 대해 사뭇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다.




제프 쿤스, , 축하 연작의 일부 ©Sotheby’s



  제프 쿤스의 반짝거리는 강아지 조각 연작 활동도,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대중문화를 예술의 범위로 포섭하고자 한 네오팝 관점의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주목한 동시대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대중이 사랑하는 쇼핑과 상품, 그리고 자본 시장에 주목했다. 대중은 점점 성장했고, '돈'은 어느새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이때 당시 월스트릿의 성공한 세일즈맨이었던 제프 쿤스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예술도 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은가? Why not? 




제프 쿤스, <뉴 후버컨버터블, 뉴 쉘튼건>, 테이트모던, ©Tate



  그는 ‘축하 연작’ 이전에도 마치 진열장에 놓인 공산품 같은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그가 1981년 제작한 <뉴 후버컨버터블, 뉴쉘튼건>은 실제로 판매되던 청소기를 활용했다. 더불어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작품들은 상품 진열과 유사하게 전시되었다. 이는 당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물질주의적 태도를 재치 있게 풍자했다고 평가받는다. 이외에도 쿤스는 대중적으로 쉽게 상품화되던 강아지 인형을 작품화하거나 대표 팝 가수인 마이클 잭슨 조각으로 만드는 등 일상적인 소재에 집중했다.




Jeffrey Deitch, ©The Nytimes




  그런데 재밌게도 그의 작품은 놀라울 만큼 비싸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대중적인 소재와 사뭇 괴리된다. 더 재밌는 것은 제프 쿤스 스스로 작품의 가격을 매겼다는 점이다. 제프 쿤스는 '자기 브랜딩의 귀재'라고 평가받는데, 오히려 높은 작품 가격이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주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그가 처음 벌룬독을 만들었을 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파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겐 능력 있는 딜러가 있었다. 예술품 딜러 '제프리 다이치'가 갤러리스트와 후원자를 불러모아 높은 가격에 작품 판매를 제안하자 그의 언변에 실물을 보지도 않고 작품을 구매할 정도였다고 한다.




2011년 서울 신세계 명동본점에 설치된 제프 쿤스의 <Heart Art>



  재치 있는 작가와 작가의 작품을 더 재미있게 설명해줄 비평가 또는 딜러의 조합은 당대 부유층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작가, 비평가, 자본가 이렇게 세 축을 중심으로 자본 중심의 미술시대는 시작되었고, 누가 더 비싼 값에 자신의 작품을 파는지가 예술 세계의 귀추가 되었다. 돈을 가진 자본가들은 너도나도 쿤스의 작품을 사고 싶어했다.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제작되었던 벌룬독 및 네오팝 작품들은 모순적이게도 어마어마한 재력가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파리에 설치된 제프 쿤스의 <튤립부케> ©The Guardian



  이렇게 미술계 화제의 중심이던 제프 쿤스가 2015년 또 한 번 전 세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바로 그가 자신의 ‘튤립 꽃다발’ 작품을 프랑스 파리 테러 추모의 의미로 기증한 사건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 프티팔레 미술관 앞에 설치된 제프 쿤스의 작품은 대형 조각으로, 색색의 튤립을 손에 쥔 모습을 표현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특유의 값싼 광택과 키치한 색상은 시민들로 하여금 테러를 추모하기에는 지나치게 장난스러운 작품이 아니냐는 평을 받았다. 또한 파리 테러 추모 공공 미술은 응당 파리, 혹은 최소한 프랑스 출신의 작가의 작품이어야 한다는 비난이 일었다. 일견에서는 튤립의 형태가 저급하다고 비난하며 선정성 논란에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자기 브랜딩에 능한 제프 쿤스가 이를 기증하면서 기회주의적으로 자신의 위신을 높이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면할 수 없었다.




자신의 <토끼(Rabbit)> 옆에 서있는 제프 쿤스 ©The Nytimes



  제프 쿤스는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상품화하고 자본의 논리에 예술을 맡기고자 한 작가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작품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면서, 예술에 담긴 철학과 고상함을 주장하던 작가들과 다른 노선을 택하겠다는 점을 암시하기도 했다. 제프 쿤스는 190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상업 작가로서 누군가 예술을 통해 큰 ‘돈’을 벌고자 한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글 | 이서연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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