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
당신은 그림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평생의 부를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의 그림자를 팔 것인가? 어쩌면 그림자가 무엇이 중요하냐며 당장 팔지도 모른다. 적어도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그랬다. 그는 끝없이 금화가 나오는 마법 주머니를 대가로 악마에게 그림자를 판다. 하지만 그는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온갖 시련을 겪게 된다. 이 극에서 그림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악마는 왜 하필 그림자를 산 것일까?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줄거리를 살펴보겠다.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궁핍한 삶을 살고 있었다. 돈을 빌리기 위해 마을 최고의 부호에게 찾아가지만 그는 페터의 행색을 보고 무시하며 집에서 쫓아낸다. 그 때 어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페터에게 금화가 끝없이 나오는 마법 주머니를 줄 테니 그림자를 팔라는 거래를 제안한다.
페터는 남자의 말에 기뻐하며 즉시 그림자를 판다. 막대한 부를 얻어 행복해하던 것도 잠시,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밝은 낮에도 그림자가 없는 페터를 무섭고 이상하게 여긴다. 괴이하다는 낙인이 찍힌 페터는 결국 살던 곳을 떠나 변두리 마을로 거처를 옮긴다. 페터는 밤마다 크고 화려한 파티를 열어 마을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 데 성공하는 듯 하지만, 사람들은 점차 어둠 속에서만 활동하는 페터를 수상하게 여긴다. 결국 페터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페터는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을에서 추방당한다. 주변의 격한 반대로 연인 리나와의 사랑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페터는 자신에게 그림자를 샀던 회색 옷을 입은 남자를 만나 황금 주머니를 다시 줄 테니 그림자를 돌려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자는 그림자를 주는 대가로, 황금 주머니 대신 페터의 영혼을 달라고 한다. 그제서야 페터는 남자의 정체가 악마임을 깨닫고 제안에 응하지 않는다. 페터는 체념하여 밤중에 몰래 마을로 돌아가 연인 리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이때 리나를 짝사랑하던 마을 주민 파스칼이 페터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리나는 페터를 감싸고 죽는다. 모든 것을 잃은 페터를 악마는 영혼을 달라며 계속 유혹하지만 페터는 악마를 강하게 뿌리친다. 페터는 금화 주머니를 버리고 사람이 없는 숲에서 여생을 산다.
이 뮤지컬은 그림자를 판다는 다소 엉뚱하고 흥미로운 소재로 시작하여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그림자를 팔기 전, 돈이 없던 페터는 가난을 이유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다. 하지만 부를 얻었음에도 그림자가 없어지자 페터는 자신의 모습을 숨겨야 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림자가 없는 그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남들이 일상을 보내는 태양 아래 그는 감히 발을 들일 수 없었고, 페터는 누구와도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그림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당연한 것, 우리가 사회에서 정상적인 존재로 수용되는 조건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 사회에서 인정하는 ‘보편성’이다. 페터는 누구나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남들에게 배척당한다. 당연한 것은 하찮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없어지면 큰 차이를 낳는다. 보편성을 갖추지 못하면 사람은 사회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없고 인간적인 소속감도 느낄 수 없다. 사회관계가 모두 단절된 페터는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페터가 평범함을 버리고 산 금화 주머니는 꼭 금전적인 상징이 아니라, 특출한 힘이나 재능이라고도 풀어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남들과 다른 '특이한' 사람이 된 이상, 사회가 자신을 수용하도록 설득하지 못하면 자신의 특출함은 빛을 발하기 어렵다. 자신의 다른 면을 설득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대단하고 혁신적인 것도 꺼림직하고 기이한 것이 된다.
소속감을 잃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괴로운 일이다. 악마는 그림자를 산 후 다시 돌려주겠다며 많은 사람의 영혼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페터도 그림자를 판 후 현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믿었던 황금 주머니보다, 별 것 아니라고 여겼던 자신의 그림자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막대한 재산, 특출한 재능을 펼치기에 앞서 사람은 세상에 수용되어야 한다. 자신을 사회에 설득하지 못하고 그림자 없이 사회의 햇빛 아래 서는 것은 괴로운 일이니 말이다.
글 | 차주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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