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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Dec 30. 2020

고통과 부활의 초상 | 화가 '프리다 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
한 인물의 처절하고도 굳센 삶의 기록.

그리고
그로부터 얻는 인생의 의미.











소아마비.
18살에 당한 심각한 교통사고.
갈비뼈와 척추 골절, 
골반이 3조각으로 분리,
버스 철봉이 자궁을 파고들어
사실상 불임 상태.
30번의 대수술.
3번의 유산.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신체 절단.
배우자의 외도.
이혼.
자살 시도.


이 모든 사건이
단 한 사람의 생에서 벌어졌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프리다 칼로 ©매일경제




이 인물은 프리다 칼로.
"라틴 아메리카 미술의 대명사"다.

사후에 얻은 불후의 명성과 비교하면
그의 삶은 그야말로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47세의 길지 않은 생동안
위 모든 사건을 겪었다.

한 마디로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그럼에도 칼로는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병상에서 그림을 그리는 프리다 칼로




칼로는 소아마비가 있어
가뜩이나 몸이 불편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통학버스 교통사고를 당해
신체가 완전히 으스러졌다.

그녀는 스스로가
"망가졌다"고 표현했다.

평생 거동이 어려웠지만
칼로는 그림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았다.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사랑이 그녀를 배신한다.

21살 연상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결혼했으나
여성 편력이 엄청나던 리베라는
칼로의 여동생과 바람이 난다.

실연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칼로는 동성 여성과 연애하지만
결국 리베라에게 돌아간다.

그만큼 그녀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다.




프리다 칼로, 떠 있는 침대 ©Museo Dolores Olmedo



게다가 칼로는 아이를 원했지만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임신과 유산, 낙태를 반복했다.



언급된 사건 중
한 가지만 겪고도
무너져 내린 사람들이 많다.

칼로가 겪은 모든 사건들은
삶을 통째로 바꿀 만큼 실로 충격적이다.

그러나 칼로는
이 모두를 겪은 후에도 살아남았다.











프리다 칼로, 물이 내게 준 것 ©파리 다니엘 필라파치 컬렉션



병상에서 사고 후유증에 시달릴 때면
칼로는 붓과 캔버스를 집어들었다.
그림은 칼로에게 유일한 안식처이며 위로였다.

칼로는 한 번도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녀가 고통을 가로지르며 느낀
강렬한 감정들은
그녀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그렇게 칼로는
*
'나이브 아트(naive art)'의 대표 주자가 된다.

*나이브 미술 :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 미술사의 어떤 사조도 따르지 않는 작가의 경향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사슴 ©휴스턴 캐롤린 파브 컬렉션 / 두 명의 프리다 ©멕시코 현대 미술관




독특하고 강렬하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느낌이다.

상처입고 피 흘리는 모습이지만
표정은 의연하고 당당하다.

칼로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칼로는 기성 미술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솔직함은 마음을 울리기 마련이다.

1938년 미국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이후
미국인들은 칼로 특유의 화풍에 매료되었으며
세계적인 이목이 칼로에게 집중되었고,

중남미 여성 화가 최초로
루브르 박물관에 영구 소장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여기,
칼로의 삶을 한 마디로 압축하는
그림 한 점이 있다.




Árbol de la esperanza, mantante firme(희망의 나무, 굳세어라) ©Collection of Daniel Filipacchi




이 그림을 들여다보자.

한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그림이 밤낮을 기준으로
양분되어 있다는 점이다.










해가 떠 있는 그림 왼쪽 부분에는
칼로 자신이 하얀 천으로 상반신을 가리고 있다.
벌거벗은 등에는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반면 달이 떠 있는 그림 오른쪽 부분에는
의료용 코르셋을 든 채
고향 멕시코의 전통 의상을 입은 칼로가
반듯한 자세로 앉아있다.

둘은 등을 맞대고 있지만
경도, 각 인물의 모습도 상이하다.








왼쪽 칼로의 등 수술 자국에는 피가 흐르고 있다.
수술받은 직후로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관객에게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상심을 숨기려는 듯 보인다.
뒷모습만 봐도 고통스러운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오른쪽의 칼로는 다르다.
관객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깃발에는
"희망의 나무, 굳세어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왼쪽 칼로와 달리 삶의 의지가 느껴진다.




Árbol de la esperanza, mantante firme(희망의 나무, 굳세어라) ©Collection of Daniel Filipacchi



이 그림 한 점에는
칼로의 고통과 부활이 함축되어 있다.

그녀는 죽고 싶은 고통을 겪고도
마음을 다잡고 살아갔다.

비참한 현실에서 헤쳐 나와
자신의 굳건한 자아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칼로는 몇 번이고
그림을 통해 부활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지금의 우리에게 유의미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2020년 한 해를 이렇게 보내자니
아깝고 침울하며
내년을 향한 기대를 살포시 접는 우리에게
칼로는 말한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인생은 마냥 아름답거나 예쁘지 않다.

터널 끝에 있는 빛의 존재를
확인조차 못한 채
굴곡진 길을 무작정 달리는 과정.
그것이 인생이다.

험난한 일에 부닥치기도 하고
잊을 수 없는 행복함을 맞이하기도 한다.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림이 칼로의 삶을 구원했듯
우리의 삶에도 구원자가 있다.

그것은 칼로와 같이
그림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연극일 수도,
혹은
기록하는 습관일 수도 있다.

비록 2020년을 아쉽게 보내지만
칼로의 그림을 보며
내년을 향한 기대를 품어본다.




난 결코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현실을 그린다.

- 프리다 칼로






글,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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