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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Jan 06. 2021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 | 영화 '신문기자'

-THE END-

“주인공은 마침내 악당을 물리쳤고 왕국은 평화를 되찾았다”

  얼마나 훈훈한 마무리인가. 일명 ‘권선징악’, 반드시 선이 악을 물리친다는 플롯은 비단 히어로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역경을 헤치고 사랑을 쟁취하는 로맨스, 슬럼프에서 벗어나 정상에 서는 스포츠, 사건의 단서를 추적해 범죄를 해결하는 추리물 등… 영화, 드라마를 넘어 문학, 음악, 미술 등 수많은 예술매체는 ‘권선징악’의 결말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이렇듯, 관객들은 영화의 결말 부분을 통해 일종의 쾌감, 감동,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영화의 기-승-전이 좋다 한들, 마지막 結(결) 부분이 미흡하다면, 감독은 영화를 통한 관객과의 ‘소통’에서 실패하고 만다. 일명 ‘용두사미’. 그런데 이렇게 끝을 중시하는 예술에서, 만약 ‘끝이 없다면 어떡할까?’




©영화 신문기자



[토우토 신문의 사회부 기자 ‘요시오카’는 양 그림이 그려진 팩스를 받게 된다. 팩스는 일본 현 정권의 사학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 곧이어 대학 비리의 주모자 ‘칸자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 ‘요시오카’를 내무성 내각정보실 소속 ‘스기하라’가 도우면서 마침내 대학 비리 스캔들을 폭로하는 기사가 세상에 나오는데…]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의 영화 <신문기자>(2019)는 플롯을 구성하는 結(결)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원하는 세상은 결국 무엇이었는지 끝내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에게 일종의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관객들은 예고편과 줄거리 소개를 통해 분명히 우리의 심은경이 비리를 밝혀내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리라 예상했을 거다.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그 반대를 제시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내각정보실의 회유와 협박으로 갈등하고 무너지는 ‘스기하라’를 보여주고, 이를 바라보는 ‘요시오카’의 불안한 눈빛을 보여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렇다고 결말이 해피엔딩인지 배드엔딩인지 판단하기도 애매하다. 감독은 이렇게 ‘결’을 제외하면서까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영화가 끝나기 직전 속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알아보자.













-스기하라의 시선-



  ‘스기하라 타쿠미’, 외교부에서 정권의 중심인 내각 정보부로 올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다. 하지만 그는 보장된 커리어의 성공을 뒤로한 채, 내각정보실에서의 끊임없는 불법사찰, 가짜 뉴스, 여론조작 등 정부가 자행하는 부조리에 맞서고자 결심한다. 아니 결심했었다. 국가 공무원인 ‘스기하라’는 자신이 몸담은 조직 ‘내각’을 배신하고 ‘요시오카’의 편에 서기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가족 앞에선 결국 눈물로 사죄한다.



©영화 신문기자




  어쩌면 ‘스기하라’의 눈물은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남편 그리고 아빠였다. 자신의 고발로 인한 피해는 홀로 감당하면 괜찮겠지만, ‘스기하라’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몸이었다. 결국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스기하라’의 정의를 위한 결의는 점점 무너져간다.

  영화의 마지막에 ‘스기하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조직을 배신하고 정의를 구현할 것인가, 가족을 위해 묵인할 것인가. 영화 종반에서 그에게 정부 비리의 고발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끊임없는 조직의 압력으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할, 외로운 소시민으로서의 시작이었다.






-요시오카의 시선-



  ‘요시오카 에리카’, ‘토우토 신문’의 사회부 기자다. 그는 어렸을 적 언론인인 아버지가 정부의 술수에 말려들어 오보의 책임을 떠맡고 자살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 끝에서 조직의 압력에 흔들리는 ‘스기하라’를 바라보는 ‘요시오카’. 그때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영화 종반부에 ‘토우토 신문’ 부장은 ‘요시오카’에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가시밭길”이라고 말한다. 상대는 국가라는 거대 조직. 그들은 과거 그녀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처럼 그녀에게 오보의 누명을 씌울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영화 신문기자



  어쩌면 영화가 ‘요시오카’의 불안한 눈빛을 보여주며 끝이 나는 모습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스기하라’의 증언이 없으면 허구를 지어내는 ‘기레기’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유명 신문사들이 정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후속 보도를 내지 않는다면, 그녀의 기사는 소리 소문 없이 묻힐 것이다. 신문사 부장 ‘진노’가 그녀의 취재보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

  ‘요시오카’에게 정부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는 끝이 아니었다. 겨우 기사 ‘1개’가 발행됐을 뿐이다. 무너져가는 ‘스기하라’를 설득해 후속 기사를 내야 했다. 잊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의 이목을 끌어야 했다. 영화는 분량상 끝이 났지만, 영화 속 그녀는 끝이 아니었다. 잊힘에서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시작이었다.




©영화 신문기자





-타다의 시선-



  내각정보실장. 냉철하며 속을 알 수 없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인물. 민주주의란 권력 유지의 틀로써 존재하면 충분하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내각의 권력 유지에 피해를 주는 대상을 사회에서 척결하는 것이 그의 주 목적이다. 이런 그에게 영화의 끝은 어떠할까? ‘요시오카’의 정부 비리를 고발하는 첫 기사가 나간 후, 그는 그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과거 그녀의 아버지의 기사는 오보가 아니었음을 밝힌다. 이는 언제든 그녀의 기사를 ‘오보’로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자신감이며 동시에 권력 유지를 위한 일종의 ‘시작’행위였다.



©영화 신문기자





-칸자키의 시선-



‘죽지 않는 이상 끝은 없다’

  유일한 종결이다. 영화 속 주요인물 중 유일하게 딱 1개의 ‘결’을 말해준다. 무엇이 이야기를 끝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얼마나 비참하고 안타까운가. 비리를 확실하게 고발하는 유일한 방법은 목숨의 희생이었다. 더욱이 슬픈 사실은 이러한 ‘칸자키’의 희생이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 ‘미치히토’ 감독은 ‘칸자키’라는 인물을 통해 영화 속 유일한 끝은 오직 ‘죽음’임을 표현한다.



©영화 신문기자











  관객의 입장에선 종반에 결국 기사가 발행되었으니 충분히 해피엔딩으로 맺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영화 속 인물들의 목적은 정부 비리를 밝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스기하라’, ‘요시오카’ 등 등장인물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에선 정부 비리를 밝히는 기사는 단순한 끝이 아닌 진정한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렇게 ‘결’이 명확하지 않은 플롯의 구조로 인해 관객들은 불편함 혹은 낯섦을 느낀다. 무언가 시작하다 만 느낌. 하지만 오히려 관객들의 불편함을 감독은 의도한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난공불락의 악당이 물러나고 주인공이 평화를 되찾는 ‘권선징악’의 명쾌한 종결이 익숙하다. 그리고 사회 비리 같이 무겁고 불편한 이슈를 굳이 원하지 않는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비리 기사를 발표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관객들이 불편한 주제와 불편한 플롯 속에서 애써 눈 가리며 희망적인 마무리를 쫓을 때, 감독은 그 뒤를 집요하게 추격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습관적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원하는 우리들을 비판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은 “정치라는 단어에 대해 일본 젊은이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로 굉장히 싫어한다, 그러나 정치를 자신의 생활이나 미래와 결부시켜서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영화 <신문기자>는 단순히 정부 비리를 고발하고 정의를 구현하며 끝을 내는 단발성 작품이 아니다. 정부, 기업, 사회 비리의 행렬은 지금도 끝이 없다. 그러니 대중들 또한 그에 대해 끝없이 비판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시작이다.





‘때론 부르기만 해도 아련해지는, 하지만 잊기엔 더더욱 미안해지고 마는 그러한 이름도 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정인이는 왜 죽었나? -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
2021년 1월 2일 (土) 1244회차 방송 중에서-

  영화 '신문기자'는 비단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해 10월 13일 생후 16개월 된 아이가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을 거뒀다. 앞서 주변인들은 세 차례나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하지만 관련 보호기관과 경찰은 ‘그럴 사람들이 아니다’는 입장으로 이를 묵인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표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지나간 일은 잊고 다가올 일만 생각하자’ 하지만 만약, 그 엎질러진 물이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킨다면 그리 쉽게 잊을 수 있을까. 또한 그 누군가가 반드시 내가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래서 우린 더욱더 이 엎질러진 물에 쓸려가는 사람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는 지금 ‘정인이 사건’에 분노하지만, 여태껏 정인이 같은 아이들이 없었을까? 제2의 ‘정인이 사건’이 없어야 한다고 하지만, 정인이 사건은 이미 제2의, 제3의 사건이지 않았을까? 단순히 정인이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음을, 그래서 가해자는 반드시 천벌을 받는다는 것을 인지시켜야 한다. 이름 없이 죽어간 모든 정인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자,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




©영화 신문기자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2020년 1월 한 달여간 발생했던 이름 없이 고통받은 또 다른 ‘정인이 사건’ 중 일부.

 
기사(1)------------폭력 아빠... "목욕 오래 한다" 폭언 후 아들 나체 촬영
http://naver.me/x1QE1tEy
기사(2)------------조카 성추행 50대 檢 송치... 가족 회유·압박에 피해자 또 운다
http://naver.me/FlW03mZi
기사(3)------------여행가방 갇혀 숨진 5살 아이…“1차 소견 익사 아냐”
http://naver.me/GlVK2txt
기사(4)------------'계속 운다고' 2개월 아들 폭행 의식불명 빠뜨린 아빠 구속 송치
http://naver.me/5svoTFwC
기사(5)------------1살짜리 아이도 때려… 아내·자녀 폭행한 20대 실형
http://naver.me/GOyK8xg6
기사(6)------------“뱉은 음식 다시 먹여”…어린이집 교사 4살 아이 학대 논란
http://naver.me/Gs3pLF3q
기사(7)------------필리핀에 '자폐 아들' 버린 한의사 부부, 징역 2년 6개월
http://naver.me/Ge8tmhtD
기사(8)------------아내 성매매시키고 어린 딸 성추행 '인면수심'…2심도 징역 10년
http://naver.me/xUSnYtqk
기사(9)------------장애 앓는 의붓아들 찬물에 방치해 숨지게 한 계모 체포
http://naver.me/xkSPq2dj
기사(10)------------7년간 딸들 성폭행한 친부 징역 13년…방관한 친모도 유죄
http://naver.me/xqGIuViG
기사(11)------------전남 여수서 어린이집 교사가 7세 아동 폭행…경찰 수사 착수
http://naver.me/Ge8twgBu
기사(12)------------20대 부모, 술 마시러 밤새 집 비우다 홀로 있던 22개월 아기 질식사
http://m.viva100.com/view.php?key=20200121010007154
기사(13)------------[취재파일] '39년간 가정폭력'…"집은 지옥이었고 우린 노예였다" ①
http://naver.me/58OXPrkH
기사(14)------------"너 정신병원 보낼거야"…보육원서도 상처받은 아이들
http://naver.me/5dnbpDIr
기사(15)------------'커피 사달라' 4살배기의 이상행동…어린이집 학대 수사
http://naver.me/GpaSQHIb
기사(16)------------응급실에 온 8개월 영아 몸에 멍 자국…의사, 경찰에 신고
http://naver.me/xY6wUXc1






글 | 이성도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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