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견디게 해주는 뮤지션들이 있다. 계속되는 순응의 압박 속에서 나를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세상에 직면할 때. 취업을 준비할 때. 내가 세상에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느끼는 때 말이다. 이렇게 자기 확신이 떨어질 때면 신해철 씨의 음악을 듣는다. 어떤 벽두를 앞에 두고 나아가기 두려울 때 신해철 씨의 음악은 힘을 준다. 그는 세상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앨범을 통해 몸소 보여주고 있다.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수록곡]
01. The Return Of N.EX.T (inst.)
02.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03. 이중 인격자
04. The Dreamer
05. 날아라 병아리
06. 나는 남들과 다르다
07. Life Manufacturing : 생명생산 (inst.)
08.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
이 앨범은 한 20대의 고민을 담고 있다. 세상은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구석구석 봉건적인 한국 사회는 이상보다는 타협을 요구한다. 부딪히고 부딪힐수록 자신의 부족함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눈 앞의 저 질서를 용납할 수 없다. 그 질서를 일거에 해체하고 싶다. 그러한 욕심의 열병에 사로잡히는 시기가 있지 않은가. 신해철 씨도 그랬다.
이 명민한 음악 청년은 그 고민을 앨범에 응축했다. 이 앨범은 대중음악사의 충격적인 사건이 되었다. 날카로운 메시지와 음악적인 완성도 그리고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일렉트로니카, 포크 송을 넘나드는 장르의 실험정신. 이 앨범은 3분짜리 사랑타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가요계의 중세를 벗어나 명료한 문제의식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그리하여 9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글은 앨범의 8개의 곡을 전부 분석하는 구성입니다. 90년대 음악청취자들은 앨범을 통째로 듣고는 했습니다. 그 때의 음향기기가 Cd 플레이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mp3 이후의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트랙을 발췌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앨범 전체의 서사를 보는데 약해졌습니다. 특히나 이 앨범은 전체 서사가 명확하게 잡힌 콘셉트 앨범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 한편의 영화를 감상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 음악적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8개의 트랙을 순서대로 따라가고자 합니다.
이 앨범의 서두이자 발단에 해당한다. 먼저 음산한 사운드로 앨범의 분위기를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존재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삶의 방향을 강제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구성하겠다는 선언이다. 이 앨범은 이 질문을 집요하게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음악적 답변을 따라와 달라고 부탁한다.
9분 53초의 러닝타임이 지루할 틈이 없다. 변주를 거듭하는 기타와 드럼의 속주 대결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데뷔곡 <그대에게> 느낌의 응원가처럼 질주하다가 메탈리카가 떠오르는 육중한 기타 사운드가 등장한다. 연주와 사운드 모두 서양 헤비메탈 밴드를 못지않다. 그러나 이 서구적인 완성도가 이 곡을 오히려 문화 식민지의 아류 메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들게 한다. 신해철 씨의 가사는 그 의혹을 말끔히 해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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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날 길들이려 하네
이제는 묻는다 왜 왜 왜
Fight ! Be free !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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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읽으면 유치해 보이지만 들어보면 설득력 있다. 가사가 헤비메탈의 창법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서양에 뿌리를 둔 음악은 당연히 우리말과 분절 구조가 맞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말 속에 헤비메탈과 어울리는 가사가 있다. 그는 그 가사를 발굴해 곡을 구성했다. 그리하여 이 곡은 리스너에게 한국의 헤비메탈을 듣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독기 어린 가사는 메탈의 문법과 어울려 진정성을 얻는다. 자칫 사춘기의 일탈로 들릴 수 있는 가사가 존재에 대한 성토로 변모하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앨범의 서사에서 ‘위기’에 해당한다. 이 속도감 있는 스래시 메탈 트랙은 사회와 타협하는 과정에서 분열하는 자아를 이야기한다. 신해철 씨는 서양 록밴드의 자유분방한 삶에 강한 동경을 품었다. 한국 사회의 보수성 앞에 그 꿈은 빈번히 제동이 걸린다. 그는 로커이고 싶지만 어머니의 좋은 아들이고도 싶었다. 한국 사회에서 이 두 가지 정체성은 모순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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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깊은 곳에는 수많은 내가 있지만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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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정신 문화가 유교 문화와 부딪히는 경험은 한국 사회의 청춘이 내는 통행료가 아닌가 싶다.
이 곡을 기점으로 이 앨범은 절정에 도달한다. 형식적으로는 급격하게 전환하여 록 발라드가 도입된다. 이를 통해 전체 구성은 더 입체적이 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사가 록 발라드의 문법 속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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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에 걸린 어린애처럼 꿈을 꾸며 나의 눈길은 먼 곳만을 향했기에
세상의 바다를 건너 욕망의 산을 넘는 동안
배워진 것은 고독과 증오뿐 멀어지는 완성의 꿈은 아직 나를 부르는데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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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어’ 이 시적인 가사가 헤비메탈의 문법이었다면 감동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었을까? 하이라이트를 향해 감정을 천천히 고조시키는 발라드의 문법만이 이 절박함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절정에서 하나의 의문이 든다. 이 앨범은 ‘껍질을 깨고 꿈을 향해 나아가자.’ 같은 흔한 주제로 마무리되는 것일까? 이것이 9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적 표현의 주제문인가? 아직은 아니다. 4곡이 더 남아있다.
감수성 짙은 포크 송 넘버다. 어린 시절 키우던 병아리와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나’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로 내려간다. 여기서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작은 생명의 죽음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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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 말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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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깨닫는다. ‘나 역시도 세상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겠지?’ 나는 시간의 한계 속에 산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절정에서 이 앨범은 끝나지 않는다. 더 날카로운 메시지를 마지막에 준비하고 있다. 이 곡은 대단원을 장식하는 명곡의 복선이 된다.
펑키한 리듬의 트랙이다. 남과 다르게 살겠다는 외침을 자신의 세대로 넓혀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 봐.’라고 촉구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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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해선 언제나 오늘은 참으라고 간단히 말하지마
현재도 그만큼 중요해 순간과 순간이 모이는 것이 삶인걸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남들과 똑같이 살수는 없잖아
가슴속에 숨겨둔 말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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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과 달라’ 라는 메시지는 이제는 대중음악의 클리셰이다. 그래서 이 90년대 가사는 우리에게는 조금 촌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이 곡은 1990년대 세대의 감수성이 기성질서의 금기 영역을 돌파해가는 감각을 보여준다. 질서의 음악은 박정희 정권의 어용적인 건전 가요였다. 포크 송과 발라드같은 당대의 음악도 그 건전한 가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x세대의 외침이 그 흐름을 뚫고 주류로 편입해 들어온 것이다.
근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전주와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통해 디스토피아 SF 영화의 ost를 듣는 느낌을 준다. 곡은 이 앨범의 주제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일탈한 느낌을 준다.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근대문명을 건드는가? 이 의문은 이 앨범에서는 풀리지 않는다. 이 주제는 신해철 씨의 다음 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 2: The World>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고로 이 곡은 신해철 씨의 문제의식의 다음을 보여주는 예고편인 셈이다.
앨범의 끝을 장식하는 대단원이다. 서정적인 멜로디에 철학적인 가사가 더해 소름 끼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던 앨범은 아트 록으로 귀결한다. 그리고 첫 번째 트랙에서 던져진 질문들이 여기에서 완성된다.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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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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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내내 신해철 씨는 남과 다르게 살겠다고 외친다. 기성세대가 냉소적인 시선을 아무리 던져도 나는 다른 시대의 개척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을 예감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에 가서 날카로운 성찰을 고백한다. 시작에는 끝이 있다. 시작에 동력이었던 청춘의 결핍이 꼭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자체로 아름답게 완성되어 있다고. 어떤 완성을 위해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완전한 채로 시작하고 있다고. 이렇게 이 곡은 첫 번째 트랙과 수미상관을 이루어 세기말의 명반을 완성한다.
신해철의 앨범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그는 많은 청춘이 거쳐간 결핍의 열병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 결핍이 타협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의 강렬한 초월 의지는 우리에게 힘을 준다.
하지만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은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신해철 씨는 이 허덕이는 청춘에게 결핍된 완성이라는 모순을 일러준다.
청춘의 시작은 완성될 수 없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의 음악은 세상과 싸우는 우리의 정신에 대한 응원가이다.
글 | 박지원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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