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할 수 없다. 2020년은 최악의 해였다.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사람들과 파티를 하는 일상의 즐거움을 박탈당했다. 갑갑한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언제쯤 맑은 공기를 제대로 들이마실 수 있을까’, 해답 없는 의문만을 몇 번이고 되뇌다 보니 한 해가 지나가고 말았다. 절망적인 현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우울감과 무력함을 모두의 마음 한 켠에 심어주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2021년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나 새해를 기점으로 모든 고통이 끝나고 아름다운 일만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 예상한다면, 이는 환몽일 뿐이다. 위기가 기회가 되듯, 바닥을 쳐야만 진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영화 <시>는 절망적인 2020년을 겪고, 새로운 해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목전에 둔 우리에게 적절한 태도를 제시한다.
할머니 미자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화사하고 알록달록한 옷과 모자로 자신을 가꿀 줄 알고 꽃을 좋아하는, 감수성이 참 풍부한 그런 고운 사람.
그녀는 중풍에 걸린 노인의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여유롭지 않은 환경 속에서 하나뿐인 손자와 어떻게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런 미자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시를 배우기 시작한다. 강사 시인은, “시상은 찾아오지 않고, 내가 찾아가서 빌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미자의 시상 찾기 여정은 시작된다. 사과를 관찰하고, 나무를 올려다보고, 꽃을 보기도 하면서 시상을 찾으려고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그러던 도중, 그녀의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하나뿐인 손자가 같은 학교 여학생에게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고 그 학생이 그만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해 학생 부모들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보상금으로 피해 학생 가족의 입을 막고자 했다. 갑자기 부담스러운 금액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미자. 설상가상으로 알츠하이머 진단까지 받고 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상조차 떠오르지 않고, 미자는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미자는 자신이 돌보던 노인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돈을 마련한다. 그리고 자신의 손자를 제 손으로 경찰에게 신고한다. 미자는 제 손자가 지은 죄를 대속한다는 심정으로, 그 여학생을 위한 시 “아녜스의 노래”를 지을 수 있게 된다.
아름다운 꽃과 풍경은 그녀에게 시상과 영감을 주지 않았다. 미자는 “죄인 손자를 둔 할머니”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더러운 치부를 수용하게 됨에 따라 비로소 진정한 시상을 찾을 수 있었다. 미자가 떨어지는 빗방울, 즉 땅으로 하강하는 대상을 포착하고 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영화의 구성 역시 참 의미심장하다.
미자가 추악한 현실을 직시하고서야 비로소 시작(詩作)을 할 수 있었듯이, 진정한 시작은 마냥 아름답고 편안한 상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바닥을 찍고 두려움을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 걸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시작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코로나-19로 인해 너덜너덜해지고 지친 우리에게 품을 내어준다. 2020년 판데믹으로 고단한 한 해를 보냈고, 우리의 현재는 2021년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것이 고난의 종말과 안온한 미래를 약속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움을 겪었고 견뎌냈기에 새로운 목표와 지향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 가자. 모든 것을 비워내고 소진했으니, 이제 다시 새로운 것을 하나씩 채워 나가자. 0에서 시작해 달려 나가자.
글 | 이의영
편집 | 김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