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간 도슨트 Feb 03. 2021

'나'를 포기하지 않는 용기 | 뮤지컬 '레드북'




나는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해






모두를 당황시킨 ‘야한 여자’, 안나. 뮤지컬 레드북은 이 발칙한 한 마디와 우리에게 찾아왔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신사와 숙녀의 시대. 뮤지컬 <레드북>은 이 꽉 막힌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 '안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안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 결혼을 하지도 않고, 일을 해서 스스로 돈을 벌고, 성희롱을 하는 사장에게는 창피를 주며 응수한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첫사랑과의 야한 상상을 통해 이겨낸다. 아무리 봐도 모두가 말하는 ‘숙녀’는 아닌 것 같다. 안나 자신도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안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난 뭐지?” 안나는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기를 꿈꾼다.
 



©바이브매니지먼트




  그런 안나 앞에 '브라운'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안나는 브라운과의 만남을 계기로 여성들만의 문학회 ‘로렐라이 언덕’에 들어가 글을 쓰게 된다. ‘로렐라이 언덕’의 여자들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쓴다. 누군가는 자신의 남편을 죽이는 이야기,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의 뒷이야기, 누군가는 짝사랑하는 상대와의 로맨스 이야기. 이곳에서 여자가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안나는 이곳에서 자신의 첫사랑과의 야한 추억과 상상들을 소설로 쓴다. 그렇게 완성된 안나의 글은 문학회의 잡지 <레드북>에 실리고, 크나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매일일보



  길거리의 모두가 안나가 쓴 글을 읽고 있다. 어떤 남자들은 안나를 보고 ‘천박한’ 야한 여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여자들은 ‘용감한’ 야한 여자라고 말한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신사와 숙녀의 시대. 그리고 여자가 자신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대. 여자의 자유로운 욕망은 용인될 수 없었고, 가정 이외의 것에 관심을 두는 여자는 ‘타락한’ 여자로 치부되었다. 안나 역시 사회가 말하는 ‘타락한’ 여자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세상은 안나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그녀를 타락한 여자라고 낙인찍는다. 그러나 안나는 이에 굴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를 ‘야한 여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여자들을 위해 계속해서 글을 쓴다.


 

©뉴스컬처






야한 여자야, 나는 야한 여자. 부끄러움 따윈 모르는 야한 여자야.

야한 여자 中





  하지만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이러한 안나의 글이 받아들여질 리 없다. 결국 로렐라이 문학회의 잡지 <레드북>은 금지되고, 문학회 사람들 모두 재판에 넘겨지게 된다. 안나는 나라에서 추방당할 위기에까지 처한다. 브라운은 그녀가 죄를 감면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안한다. 바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글을 썼다고 주장하라는 것. 하지만 안나는 이를 거부한다. 자신의 글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거짓말은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안나는 처음 글을 쓰면서 자신과 같은 누군가에게 이 글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었다. 안나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안나들을 위해 이 다짐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中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던 안나. 언젠가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을 것이라 말하던 안나. “난 뭐지?” 차가운 감옥 속에서 안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안나 자신은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안나는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렇게 법정으로 나선다.
 


©뉴스컬처



 
  자신의 결심을 굳히고 판결만을 기다리던 안나. 그러나 상황은 극적으로 변한다. 브라운의 부탁을 받은 그의 친구들이 안나의 팬들이 보낸 편지를 들고 온 것. 사람들은 ‘타락한’ 여자들만이 이런 글을 읽고 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나의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누군가의 아내, 애인, 그리고 가족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쓴 편지 속에는 안나의 글을 통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담겨 있었다. 이 편지들을 계기로 재판은 안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결국 안나는 국외 추방을 면하고 작가로서의 삶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여기서 마치 브라운과 그의 친구들, 이 세 남자가 모든 일을 해결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안나를 구해준 것은 안나 자신이었다. 안나가 지켜낸 자신의 신념이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고, 그녀 자신을 구하게 된 것이다. 안나는 ‘나’를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또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안나가 쓴 글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꽉 막힌 신사 브라운은 안나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고, 안나의 팬들은 나름대로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렇게 안나의 글은 사회를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냈다.
 
  19세기 영국이 아닌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안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당연한 것이 당연해질 때까지 시끄럽게 굴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 당신들의 시끄러운 투쟁이 결국 우리의 사회를 조금씩 바꿔놓는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어려움 앞에서 누구나 흔들릴 때가 있다. 더 쉬운 길을 가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길을 택할 수도 있다. 포기한다고 해서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떠들어보자. 한 번만 더 ‘나’를 말해보자. 당신이 지켜낸 그 자신은 어떤 형태로든 당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개인촬영







글 | 김채원

편집 | 김희은





아래 월간 도슨트 인스타 계정을 통해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https://instagram.com/monthly_docent?igshid=1c09qpgfuv    

작가의 이전글 꾸준한 전진의 힘 | 영화 '스탠바이, 웬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