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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Feb 20. 2021

깨진 약속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영화 '결혼이야기'



 
  평생을 다르게 살았던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반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그 사랑은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이런 결혼은 사랑의 확신이지만 동시에 남은 일생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다. 인간 문명에 있어서 약속은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를 지키겠다는 다짐의 선언과도 같았고,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이것의 반증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결혼은, 그 어떤 맹세보다도 엄중하고 가장 절박하고도 드라마틱하다. 오죽하면 모든 동화의 공주님과 왕자님은 ‘둘이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을 맞이하고, 우리는 당연하게도 이것을 영원한 행복이라 이해하게 되었을까. 그러나 세상은 동화도, 신화도 아니다. 깨지는 약속은 분명히 있으며, 그 엄숙하고 신성한 결혼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영화 '결혼이야기'



  그리고 여기, 이 엄중한 약속을 깨는 부부가 하나 더 있다. 성공한 예술가에, 세련된 뉴요커, 귀여운 아들 하나까지 사이에 두고 있는 완벽해 보이기만 하는 '찰리'와 '니콜' 부부. 니콜은 남편 찰리의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위해 자신의 고향 LA를 떠나 자신의 행복을 희생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나 보다.



©영화 '결혼이야기'



  결국 그녀는 이혼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이 깨는 약속은 이것 하나뿐이 아니다. 합의 이혼으로 조용히 넘어가려다가, 니콜이 변호사를 선임한 것을 시작으로 그들은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된다. 가장 사랑했어야만 하는 둘은 서로에게 가장 상처가 될 법한 말을 쏟아 냈다. 감정적 유대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둘은 가장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방식으로 서로를 공격했다. 영화는 그들의 약속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단순히 이혼이라는 제도적 절차의 진행에서뿐 아니라, 두 인물의 관계에서도 벌어지고 마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 '결혼이야기'



  그러나 깨진 부부라는 관계는 공동 양육자이자 친구라는 관계로 새롭게 구축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찰리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니콜이 부부 클리닉에서 진행한 “서로의 사랑하는 점 작성하기”에서 작성했던 노트를 발견한다. 노트 속 니콜의 마지막 말은, “더 이상 말이 되지 않을지언정, 나는 평생 그를 사랑할 것이다”였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이 약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지만, 부부는 아들 헨리를 중심으로, 서로에게 좋은 친구라는 점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도움이 되겠다는 약속의 본질을 지킬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양육권 분쟁에 있어서 나눈 규칙을 깨고, 남편의 신발을 묶어준다. 아마 그들이 재결합할 일은 없겠으나, 그들은 언제나 이런 사이로 남을 것이다. 신발 끈이 풀려있으면 묶어주는, 그런 훨씬 더 안정적인 사이 말이다. 어쩌면 평생의 동반자라는, 결혼의 본질을 더 잘 담지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영화 '결혼이야기'



  가장 엄중한 약속인 결혼도 깨진다. 물론 그렇다고 약속이 깨지는 걸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찌 뜻대로 풀리겠는가. 찰리가 장난으로 손목을 긋지만 의도치 않게 피가 솟구쳤듯이, 작은 행동 하나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론을 낳을 수도 있고, 그걸로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결혼이라는 약속은 깨졌지만, 그 약속이 지니는 의미를 계속 이어져 나간다. 이처럼 우리의 약속 역시 깨질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형태가 변할지언정, 어떻게든 이어 나간다면 그걸로 된 거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우치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길. 약속의 이름이 아닌, 약속의 본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할 수 있길.





글 | 이의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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