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다가오고 많은 새내기들이 신입생 룩을 찾아볼 시즌이다. 필자도 이맘때 열심히 새내기 룩을 찾아봤다. 새내기 룩 중에서 신기하게 코트가 끌렸다. 단정한 교복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기장. 거기에서 오는 지성미. 코트 안에 후드를 입으면 그게 너무 대학생 같아 보였다. 친구들은 키가 작으면 코트를 입을 수 없다고 말렸다. 하지만 어떻든 코트를 입고 싶었다. ‘키가 작으면 깔창을 신더라도 코트를 입겠다! 그리고 대학 캠퍼스에 입성하겠다.’ 2월 내내 그런 부푼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처음 입어보는 코트는 뭔가 어색했다. 성인이 되기 위해 억지로 입은 느낌. 학생 티를 감추기 위해 급급한 느낌이 있었다. 그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운동해서 어깨를 키우기도 하고, 살을 적당히 빼기도 했다. 패션 유튜버의 영상을 참조하고, 수많은 착장 샷을 관찰하며 알맞은 기장을 계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색한 면은 남아있기 마련이었다.
이 코트 패션의 완성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던 끝에 깨달았다. 코트는 분위기다. 옷은 그 패션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그 분위기를 낸다. 코트는 원래 신사들이 입던 옷이 아니던가? '신사'는 대부분 영국의 댄디에서 왔다.
댄디는 누구인가? 그들은 19세기 영국에 등장해 세련된 복장과 매너를 통해 스스로를 현대의 귀족으로 연출하던 이들이다. 댄디는 화려한 로코코 복장을 하던 귀족과 실용적인 복장을 하던 신흥 부르주아 모두에게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서 세련된 패션으로 그들에게 저항했다. 댄디의 패션은 현대에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신문화는 얼마나 이어지고 있을까? 코트에 어울리는 신사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지금부터 댄디의 세 가지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댄디의 세 가지 특징
옷을 잘 입으려면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 조지 브러멀
첫 번째, 패션 철학이다. 댄디의 패션의 핵심은 자연스러움, 연출하지 않는 연출이다. 과한 치장은 어딘가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법이다. 댄디는 꾸며도 꾸민 흔적이 노출되지 않도록 연출했다. 이 패션 트렌드를 확립한 영국의 댄디 조지 브러멀의 잠언처럼 ‘행인이 고개를 돌려서 당신을 쳐다봤다면,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것이 아니다.’ 댄디 이전의 남자들은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해 과한 치장을 하고는 했다. 댄디들은 그 흐름을 바꾸어 ‘조용한 멋‘을 확립했다. 현대의 ‘꾸안꾸‘의 시조인 셈이다. 옷을 잘 입고 싶다면 브러멀의 미학을 가슴에 새겨보자.
빵 없이 3일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 없이는 결코 버틸 수 없습니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두 번째는 세련된 문화 취향이다. 댄디는 예술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댄디 보들레르는 말한다. 정신적인 영역을 독점하는 자만이 세상을 느끼고 즐길 권리를 가지며, 결국 세상을 지배하리라. “사는 데 교양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이미 여러분의 하루는 공부와 법률과 상업으로 꽉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우리도 인생이 취업과 돈 버는 이야기로 점철되지 않기를 바란다. 예술에 대한 교양이 있으면 더 멋있고 분위기 있지 않을까?
댄디는 근대의 혼잡함 속에 고대의 차분함을 도입했다.
- 쥘 바르베 도르베이(19세기 프랑스 작가)
세 번째는 그 내면이다. 이들의 행동 모토는 ‘닐 미리리(Nil Mirari, 결코 흥분하지 말지니)이다. 산업혁명의 혼란스러운 사회 한가운데에서 댄디는 우아함으로 대항하고자 했다. 댄디는 냉담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을 보여야 했으므로 늘 항상 냉정해야 했다. 댄디는 삶의 촉매제이다. 멋있는 사람을 보면 우리도 자극을 받는다. 촉매는 상대에게 반응을 일으키지만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상대를 열정에 들뜨게 하는 일은 즐기지만, 스스로 무모한 열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은 늘 항상 냉정해야 한다.
댄디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비단 옷을 입는 법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의 정신적 귀족주의, 다시 말해 교양을 바탕으로 하는 품위이다. 대학생활을 하다 보면 대학생이라고 다 교양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에 대학가는 단톡방 성희롱 사건 등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많았다. 주변을 봐도 술을 마시고 눈치 없는 짓을 하는 사람도, 맨정신으로는 믿기 힘든 혐오 발언을 일삼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잘 차려입은 사람도 꼭 그 외면에 어울리는 품위를 갖추는 법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이것이 내가 상상한 대학생의 모습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를 신사로 만들어주는 것은 차림새가 아니라 정신이다. 댄디즘을 통해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양과 품위를 잃지 않는 귀족 정신이다.
글 | 박지원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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