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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Mar 10. 2021

변화가 우리에게 가지고 오는 것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도약, 뛸 도(跳)에 뛸 약(躍)을 쓰는 한자어다. 즉, 말 그대로 뛰어오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뛰어오르는 모습을 한번 떠올려 봐라. 발을 내디뎌 땅을 힘차게 밀어내면서 나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기존에 머물고 있던 지반을 밀어내고 나아간다는 것은 곧 과거를 뒤로하고 변화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겠다. 변화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것이 가지고 올 변화 혹은 피해를 전부 무릅쓰겠다는 암묵적 동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변화는 고통스럽고도 두렵다. 그러나 이는 우리로 하여금 성장하게 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가 변화를 택함으로써, 성장하였듯 말이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장애인 소녀 조제와 평범한 청년 츠네오가 우연을 계기로 마주치게 되면서, 그들이 관계를 어떻게 맺고 끊게 되는가의 단상을 비춘다. 조제라는 인물에 집중해서 바라본다면 그녀는 영화 속에서 두 번의 도약을 한다. 첫 번째는 츠네오와 연인이 되면서, 두 번째는 츠네오를 떠나보내면서. 츠네오와 만나기 이전의 조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조제의 할머니는 조제를 ‘망가진 물건’이라고 부르며, 평범한 사람들과 섞여들 수 없다고 말해왔기에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존재였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의 세상 구경은 아침 일찍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를 타고, 아무도 모르게 잠깐 바깥공기를 쐬고 오는 게 전부. 일상의 대부분을 집구석의 벽장 안에서 보냈다. 조제에게 있어 바깥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욕망의 공간임과 동시에 두려움의 공간이다. 이는 그녀가 보길 희망하는, '호랑이'와 '물고기'라는 대상으로 형상화된다. 호랑이는 그녀가 두려워하는 세상의 단면을, 그리고 물고기는 세상과 맞닿게 된 그녀의 모습을 의미한다. 조제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그녀를 찾아온 츠네오에게 자신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것을 계기로 둘은 연인이 되고, 조제는 이 변화를 계기로 바깥세상을 접하게 된다.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동물원에 가 두려워하던 호랑이를 두 눈 안에 담는다. 첫 번째 도약이다. 방안에만 틀어박혀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과거를 뒤로하고, 세상을 마주한 것이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리고 조제는 츠네오와의 이별을 직감했을 때, 물고기의 형상으로 도배된 숙소에서 그와 사랑을 나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물고기에 비유한다.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그곳에서 헤엄쳐 올라온 거야. 너랑 세상에서 제일 야한 짓을 하려고. 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언젠가 네가 없어지면 난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겠지. 뭐 그래도 괜찮아”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는 츠네오를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떠나보내도, 다시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그녀의 깨달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헤어진 뒤의 조제의 모습은 영화 내내 그려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조제는 츠네오를 마주치기 이전의 그녀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처음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제 모습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조차 못했던 과거와 달리 전동 휠체어를 타고 꿋꿋하게 밖을 돌아다닌다. 츠네오라는 과거를 뒤로하고, 그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두 번째 도약을 해냈기에 그녀는 성장할 수 있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만남과 이별이란 사람이 인생의 흐름 속에 들어왔다 밀려났다 하는 과정이다. 꼭 밀물과 썰물의 운용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는 자연스럽고도 일상적인 현상이지만, 사건이 지니는 사소함에 비해 크고 작은 충격을 주고 만다. 그리고 변화와 성장은 자연스럽게 수반된다. 츠네오를 인생에 받아들였다가, 내보낸 조제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랑과 실연은 변화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를 힘입어 힘차게 도약한 조제는 더욱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당당하게 도약하길. 당신이 향한 그곳에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서있는 땅을 밀어내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힘껏 날아오를 수 있길.





글 | 이의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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