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화가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어디에선가 보았을 법한 이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제목을 가진 고흐의 대표작으로 우리가 보아왔던 기존의 하늘이나 별과 달리 고흐가 밤하늘을 보고 느낀 감정에 충실해 그려진 것이다. 파란색부터 남색, 흰색, 검은색, 심지어 노란색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색이 뒤섞여 하늘을 가득 메운 흐름은 달과 별, 그리고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와 어우러져 화가가 밤하늘로부터 받았을 인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화가의 감상을 통해 탄생한 밤하늘. 우리가 고개를 들어 바라본, 혹은 사진으로서 보는 하늘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전한다. 그렇다면 고흐는 왜 이러한 밤하늘을 그리게 된 것일까?
기술 혁명과 발전이 연이어 일어나던 19세기, 미술계 역시 큰 위기에 놓이게 된다. 바로 카메라의 등장이다. 기존 서양 미술의 화가들은 어디까지나 실제와 같이 생생하고 현실감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그림은 카메라의 등장으로 더 이상 특별함을 가지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에 대한 답으로 “있는 그대로가 아닌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한다"라는 인상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고흐를 비롯해 모네, 르누아르, 드가에 이르기까지 현재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인상주의 화가들은 풍경을 세상의 관념에 맞춰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그림을 그리던 그 순간의 느낌, 빛과 색깔의 변화에 맞춰 인상을 담아내기 시작했고 미술계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가치의 시작에 일본, 그것도 일본 전통화의 영향이 있었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우키요에, 부세회(浮世繪)는 덧없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이름과 같이 세상 그 자체, 일반 민중을 중심으로 발달한 대중 미술의 종류이다. 목판화 방식인 우키요에는 화가가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나무를 파고 색깔을 입혀 찍어내는 식으로 만들어져 그 수요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 그림을 찍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키요에는 주로 서민들에게 값싼 가격으로 팔렸으며 여인을 중심으로 한 미인도나 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풍속을 그렸다.
이렇듯 서민들을 상대로 단순한 유흥거리로 그려지던 우키요에가 정점을 찍던 시기, 호쿠사이라는 인물이 마치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는 기존 인물화에서 풍경화로 주제의 흐름을 바꾸며 자가당착의 슬럼프에 빠졌던 우키요에를 일본 최고의 인기 미술 장르로서 재탄생시킨다.
호쿠사이는 인간이 아닌 자연 중심의 시점을 통해 창의력의 극치를 표현하며 풍경화를 우키요에의 흐름으로 끌어들였다. 그 창의력의 원천은 끝없는 배움에 있었다. 전통 기법은 물론, 호쿠사이는 서양의 원근법부터 중국의 전통 기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화법을 끊임없이 탐구했고 급기야 자신이 속해 있던 화파와 어긋나는 기법을 사용해 파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배움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으로부터 도약했다. 삼라만상,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그리겠다던 그는 파문으로서 당한 입지적 위기를 보다 새로운 주제와 기법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감각은 카메라의 등장으로 사실주의를 추구하던 미술의 존재 가치를 고민하던 당대 인상화파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게 되었다.
그의 대표작 <부악36경 中 카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속 실제 파도와 다른 패턴화된 파도의 그림은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 밤하늘 묘사처럼 푸르름 자체를 연상시킨다.
이는 미술을 넘어 프랑스의 대표적 음악가 드뷔시의 ‘바다, la mer’ 작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기존 우키요에 속에서의 주제, 기법을 발전시킨 호쿠사이의 우키요에는 일본 국내의 미술 흐름을 선도함은 물론 서양의 인상화파들을 기존 사실주의적 그림으로부터 도약케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미술계를 넘어 일본을 세계에 알린 쟈포니즘의 한 축을 담당하며 문화적 교류에 기여하였다.
호쿠사이가 파문으로의 위기 속에서, 혹은 수없는 배움에서 한계를 느끼고 새로움으로의 추구를 그만두었다면 우키요에가 일본의 대표 미술로 성장할 일도, 이것이 서양 인상주의의 탄생에 영향을 미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호쿠사이 우키요에의 거친 파도와 같이 인생은 언제나 거대한 흐름에 수없이 많은 위기를 맞게 된다. 기존 우키요에의 슬럼프, 카메라의 등장으로 존재 가치를 잃은 서양의 사실주의 예술이 그러했듯 그 흐름에서의 위기는 곧 도약의 불씨가 되며 새로운 흐름을 낳고 또 다른 도약을 잉태한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모든 도약 전에는 위기가 찾아온다.
당신이 보내고 있을 모든 새벽이 그렇게 길지 않기를, 그리고 꼭 찬란하게 도약하는 해오름을 볼 수 있기를 응원한다.
글 | 주소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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