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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Mar 17. 2021

내일 봐, 오늘의 끝자락에서 | 영화 '스캐너 다클리'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SF 작가가 말한다.


내일 오늘의 끝자락에서.



영화 '스캐너 다클리'



  2006년에 개봉한 영화 <스캐너 다클리>. SF 작가 필립 K. 원작 소설이 집필된 당시를 기준으로 근미래인 1990년대의 캘리포니아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길거리의 감시 카메라와 얼굴 인식 알고리즘이 첨단 기술로 묘사되지만 2021년의 우리에겐 이미 익숙하다 못해 다소 올드하기까지 하다.


  인간은 미래를 그리며 살아왔고모든 도약은 과거의 꿈과 상상에서 출발하기 때문일까.








작품 속으로



뇌의 기능 이상을 점검 중인 수사관 프레드




  프레드는 사명감이 투철한 잠입 수사관이다마약으로부터 선량한 시민과 아이들을 구해내는 업무를 수행한다그는 물질을 뒤쫓는데사람을 서서히 파멸시켜서 죽음으로 불리는 약물이다특수한 근무복인 스크램블 슈트를 착용해 진짜 신원을 아는 사람은 없다.




거실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 밥과 여자친구 도나




  밥 아크터는 하드보일드 남성 정비공이다아내와 아이들과 안온하게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불현듯 만사를 내팽개치고 싶은 충동이 솟는다그대로 가정을 떠나 물질을 투약하는 괴짜 친구들과의 공동생활을 시작한다검은 눈동자의 여인 도나를 동경하나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약 중독자 교정 시설의 농장에서 근무하게 된 브루스



  전직 경찰 브루스는 D 물질 중독으로 극심한  손상을 입는다정상적인 사고 능력을 빼앗기고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은 바보가 되어 교정 시설인 뉴패스에 맡겨진다공무원들은 그를 버러지만 못한 인간 취급하며 농장으로 파견하지만 착실히 생활하며 회복하기가 꿈이다.


 

프레드브루스.


  이들 셋은 모두  사람 안에 자리하는 인격들이다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채로 부분적인 기억만 공유한다성격도 직업도 전혀 다른 이들 셋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약물에 지배된 몸과 ,


거울을 통하듯 서로를 어둑하게 바라보는 의식,


그리고 삶에 대한 욕망이다.








욕망, 새롭고도 오래된



영화 '스캐너 다클리'




  주인공 밥의 친구 찰스 프렉. 삶에 비관해 극단적인 시도를 한다비장한 죽음을 연출하려 고급 와인과 저항 문학을 품에 안고 누웠으나 준비한 약을 먹자 죽는 대신 환각을 본다괴상한 생명체가 나타나 생전의 죄를 끝없이 읊어주는 장면이다.


  이들  누구도 철저하게 망가져도 되는 삶을 바란  없었다누군가에게 필요하고 유능한 존재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얻는 존재가 되길 바랐다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사회에서 이탈한 사람이고   없이 누구나 존엄과 행복을 원한다그러나 이들이 도착한 곳은 파국이었다.


  작품은 마약 중독이 망친 필립 K.딕의 말년과 친구들을 그린 자화상이다작가는 독자들에게 돌이킬  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한다그러면서 이미 엎질러진 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책망할 의도는 없다고도 말한다우리는 욕망을 따르게 되어 있으며때로는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책임질 만큼 충분히 똑똑하고 강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유일한  행복한 시간을 영원히 즐기기를 원했다는 것이다그리고  때문에 벌을 받았다설령 그게 죄였다 하더라도나는 형벌이 지나치게 가혹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마음껏   있기를그리고 행복할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 작가의  중에서





샌디에고로 떠나는 밥과 친구 배리스, 럭맨.




  작가는 위처럼 건조하면서도 따뜻한 어조로 자신이 경험한 비극과 훗날의 바람을 기록했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저항하기 힘든 운명에 순응하라는 메시지로 느껴진다면 사실과 다르다. 그는 독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해 이 작품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에게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다름 아닌 욕망의 종착지를 고민하고 설계하는 노력을 통해서다.

  작가가 경험한 1960년대와 <스캐너 다클리> 의 배경으로 설정된 1990년대는 무심하게 닮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가장 원초적인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다. 바로 행복을 좇는 마음이다. 영화 속 장면들은 어딘가 낯설지 않다. 익숙한 얼굴끼리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 일상, 양심과 사회적인 역할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황, 원하는 것을 향해 딛는 발걸음… 작중 도처에서 2020년대 모습까지 엿보인다.
 

 책은 미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사실 과거에 관한 것이죠.”
— 작가가 밸런타인 출판사의 편집자 주디-린 델 레이에게 보낸 서신 중에서
 

  미래에서 기다리는 건 깜깜한 날들도, 마냥 환상적인 날들도 아니다. 단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현재가 연장되어 갈 뿐.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도약해, 가장 빛나는 내일의 시작점에서 만나면 어떨까.
그건 분명 오늘의 끝자락 언저리일 것이다.





글 | 이예림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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