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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Apr 03. 2021

화무십일홍, '네덜란드 꽃정물화'



  하늘이 차츰 맑아져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4월의 봄. 봄의 아름다운 생명력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단연 꽃이다.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고 움터 마침내 형형색색의 화려함으로 향기롭게 피어나는 꽃은 그 자체로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든다. 
 
  수백 년 전의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게 피어난 꽃은 늘 인간의 행복과 함께 했다. 입학식, 졸업식과 같은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은 꽃을 선물하며 기분전환을 위해 꽃을 집에 장식해두기도 한다.

  꽃의 아름다움을 옆에 두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일까? 17세기의 네덜란드인들은 아예 만개한 꽃을 그림으로 그려 이를 집에 장식으로 두었다. 탐스럽게 피어나 영원히 아름다울 꽃들의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 그 향이 느껴질 만큼 생생한 질감으로 묘사되어 있다. 



레이첼 로이흐, 꽃 정물화, 1700년 경, 미국



요한 보먼, 1660년, 크리스티




  그런데 이러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문스러운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만개한 꽃들 옆으로 시들어가거나, 이미 시들어 말라비틀어진 꽃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그림에는 해골이나 벌레 등 아름다운 꽃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물까지도 묘사되어 있다. 대체 왜 네덜란드의 화가들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꽃 정물화에 해골과 시든 꽃과 같은 이미지를 함께 그린 것일까?











  꽃 정물화가 탄생한 17세기, 네덜란드는 많은 격변을 겪으며 정물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게 되었는데 이는 타지역과 다른 네덜란드만의 미술 시장에 의한 것이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그림은 권력자 혹은 귀족 세력 등 부유층에 의해 의뢰를 받아 종교와 관련해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17세기 네덜란드는 상공업으로 황금기를 맞이하며 소시민과 중산층의 사람들이 인테리어 등의 목적으로 예술 작품을 향유할 수 있을 수준을 갖추었다. 여기에 14~16세기 유럽에서 화려한 종교화가 성서의 내용을 현혹해 이성을 어지럽히고 사치스럽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는데 특히 검소함을 교리로 삼았던 칼뱅교의 영향이 강한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그 영향을 크게 받아 종교화를 그리지 않게 되었다. 

  즉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은 성당과 같은 공공장소에 신앙심을 위해 마련될 작품이 아닌 집안을 꾸밀 개인적 작품을 요구받았고 이에 대한 공급으로 네덜란드에서 정물화가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특히 지금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꽃이자 당시 인기 높던 무역 상품으로서 부귀를 상징했던 튤립을 중심으로 장식성이 뛰어난 꽃 정물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적, 종교적 수요로 탄생한 꽃 정물화는 의미 또한 함께 부여받게 되었다. '
메멘토 모리', 즉 유한한 인생이라는 교훈을 담은 것이다. 네덜란드의 꽃정물화는 죽음을 나타내는 해골과 자연적 섭리로서 죽음의 흐름을 상징하는 시든 꽃 등을 세밀하게 그려내 삶의 유한함, 허무함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JAN VAN KESSEL THE ELDER, 1665-1670, National Gallery of Art


Vanité aux livres et au crâne, Anonyme italien, Nantes, musée des Beaux-Arts




  그리고 이러한 죽음의 인식은 허영을 버리고 현세의 삶을 성찰하며 보다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림의 주 수요층인 상인을 비롯한 네덜란드의 중산층에게 근면 성실은 인생의 가장 큰 재산이자 가슴에 새겨야 할 모토였다. 이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인 검소함과도 일치한다. 화가들은 이러한 네덜란드인의 당장의 영광에 교만하지 말고 매일에 충실하자는 도덕적 가치관을 정물화에 담아낸 것이었다. 












'화무십일홍'. 제아무리 붉은 꽃도 열흘을 가지 못한다는 중국의 고사성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이치와 시대, 그리고 인생들은 그 찬란함과 관계없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깨달음이 존재해 왔던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시간의 흐름 앞에 영원히 붉은 꽃은 없고 모든 생명과 황금기는 언젠가 끝을 맞는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유한함이 있기에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애틋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그 속에서 저마다 인생의 만개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1년이 넘도록 모든 이들의 삶 속에서 일상이 특별해진 지금, 당신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반복되는 무기력함에 중심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은 요즘이지만 이 글을 통해 각자의 삶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과 그를 위한 열정을 기억하기를 희망한다. 

  한 번뿐인 당신의 삶에 펼쳐질 만개의 순간들, 그리고 그를 위한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아깝지 않은 순간의 삶으로서 존재하기를 응원한다. 





글 | 주소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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