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내가 코스모스라고 했지? 곧 가을인데 피기도 전에 져버리나 봐. 내년엔 필까?”
드라마 ‘스타트업’ 속 주인공 달미는 (배수지 배우님) 자신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며 할머니에게 자신은 언제쯤 마침내 꽃을 피울 수 있을지 묻는다. 이 대사는 불안을 겪는 젊은이들의 공감을 사며 많은 시청자들을 울렸다.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세대, 이른바 N포세대라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불안 그리고 위로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550년 전, 마치 오늘날의 우리와 같이 자신의 미래를 걱정한 미술가가 있다. 바로 미켈란젤로이다. 그가 그의 대표작 <피에타>와 <천지창조>로 유명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를 제작했을 때 그는 고작 2-30대의 청년이었다. 이토록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미켈란젤로도 자신의 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것은 어쩌면 의외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라고 하여 흔들리지 않고 피어난 꽃인 것은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의 꿈은 아버지에 의해 끊임없이 좌절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는 그를 상업 계약을 다루는 부유한 귀족으로 키우고 싶어 하였고, 이에 미술가가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당시 예술 명문가였던 메디치가의 끈질긴 설득을 통해 겨우 미술가의 길기 시작한 이후에도 작품 대금을 지급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후원자에게 외면받는 등 삶의 부침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재능, 작품의 방향, 그리고 그리스도인이자 로마 시민으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했다. 마치 지금의 우리들처럼 550년 전의 미켈란젤로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수많은 드로잉, 습작 그리고 미완성 조각들을 통해 우리는 아직 피지 못해 흔들리는 꽃과 같은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불멸의 거장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가졌던 자기 확신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꿈을 외면받을 때에도, 새로운 미술 양식을 개척해 갈 때에도 그는 스스로를 믿었고 자신의 길을 남들에게 설득하고자 했다.
그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보여주고 그것을 입증해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피에타>이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의 조각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모습이었다. 성모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은 북유럽의 전통이었는데 이탈리아 예술가가 이를 차용한 것은 매우 과감한 시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유려한 조각 실력과 당시의 르네상스의 양식을 잘 버무려 독창적이면서도 널리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는 조각 속 성모 마리아에게 띠를 둘러 자신이 만들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 띠에는 이 조각은 완벽하다는 내용을 암시하는 명문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그는 이 작품이 유명해질 것임을 확신했고, 그 공로가 자신에게 있음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듯 그는 자신의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미술가였다.
보통 미술사조의 정의나 한 작가에 대한 평가는 작가 사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미술가들이 살아생전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 죽은 이후에 스타덤에 오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능력으로 매우 젊은 시절부터 천재로 불렸으며, 자신의 전성기를 스스로 꽃피웠다. 그는 좋은 평론가의 평을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의 전성기를 자신의 손으로 써 내려갔고, 당대의 미술을 견인했다. 신중하게 세상을 관조하던 동시기 또 다른 거장 레오나르도와는 달리 확신을 바탕으로 시민사회 그리고 종교의 문제에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미켈란젤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누구나 자신만의 때가 있다는 말이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때를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딱 맞는 때가 왔을 때 내 능력을 보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때로는 내가 새로운 길을 열기도 해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 아닌, 스스로 나서서 자신이 천재임을 입증했다. 그가 만일 때를 기다리기만 했다면 그는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로 남았을 것이다. 겸손과 사양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지만,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의 위대함을 널리 보여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
글 | 이서연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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