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좌절을 겪고 주저앉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은 뒤돌아보지 않고 흐른다. 때론 흙을 채 털어내기도 전에 내일이 시작된다. 의지할 곳 없이 책임져야 할 하루에 쫓겨 온 사람들에게 연극 <오펀스>는 격려가 삶에 주는 따뜻함을 전한다.
오펀스의 주인공 형 트릿과 동생 필립은 빈민가의 고아다. 제멋대로에 폭력적인 트릿과 세상 물정 하나 모르고 어리숙한 필립, 이 형제의 삶은 어딘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해 보인다. 하지만 트릿이 해럴드를 집으로 납치해 온 이후 형제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고아로 자라 갱단 활동을 했던 해럴드는 당황하긴커녕 트릿을 ‘앵벌이 키즈*’라고 부르며 반가워한다. 해럴드는 형제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트릿은 어처구니없던 것도 잠시, 일자리를 제공하며 많은 돈을 주겠다는 말에 제안을 받아들인다.
*앵벌이 키즈 : 원작에서는 ‘Dead end kid’로, 극 중에서 ‘부모 없이 남겨져 막다른 길에 다다른 아이’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
해럴드가 아버지처럼 형제를 보살핀 덕에 트릿과 필립은 전보다 윤택한 생활을 누린다. 필립은 해럴드의 따뜻함에 점차 세상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을 이겨 나간다. 하지만 트릿은 해럴드가 건네는 격려의 말을 어색해 하며 받아들이지 않고, 급기야 해럴드와 싸우고 집을 나가 버린다. 해럴드는 필립에게 트릿을 찾자며 산책을 권한다. 필립은 그동안 형이 말해준 대로 자신이 ‘집 밖 알레르기’가 있다고 믿으며 외출을 피해 왔다. 하지만 헤럴드의 격려로 필립은 집 밖으로 나가고, 처음으로 자신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집에 돌아온 트릿은 필립이 집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엄청난 혼란에 휩싸인다. 트릿은 어머니의 냄새가 가득한 옷장으로 뛰어들어 어머니의 털옷을 꼭 껴안는다. 폭력적으로 동생을 통제 아래 두려 했던 트릿의 내면에는 가까운 사람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필립이 산책을 끝내고 혼자 집에 돌아오자 트릿은 멋대로 외출한 필립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필립도 지지 않고 형이 자신에게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것에 화를 낸다. 둘이 다투던 중 헤럴드가 쫓기던 갱단의 총에 맞고 집에 들어온다. 죽어가는 헤럴드는 필립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트릿에게도 너에겐 격려가 필요하다며 안아 주려고 손을 뻗는다. 하지만 트릿은 여느 때처럼 포옹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헤럴드는 웃으며 “너는 앵벌이 키즈야, 그렇지?”라고 말하고 숨을 거둔다. 트릿은 그제서야 그의 손을 붙잡으며 처절하게 흐느끼고, 아직 당신의 격려가 필요하다며 외친다. 필립은 조용히 형을 안아 준다. 형제는 또 한 번 보호자를 잃었지만, 헤럴드의 격려로 전과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둘은 다시는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오펀스>에서 헤럴드의 격려는 조금씩 형제의 삶에 스며든다. 특히 필립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미숙함이 헤럴드로 인해 변화하는 과정은 관객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든다. 필립은 해럴드의 도움으로 지도를 보며 넓은 세상 속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아는 법을 배운다. 이는 형의 과보호 아래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황을 알고 스스로 세상을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했다. 그의 변화는 헤럴드와 산책을 다녀온 후 나눈 대화에서 드러난다.
"넌 다신 길을 잃지 않을 거야."
- 헤럴드
"난 다시는 길을 잃지 않을 거예요.
언젠가는 지도도 필요 없게 되겠죠.”
- 필립
한편 격려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던 트릿도 <오펀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릿은 강도로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떨쳐 내기도 전에 동생과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했다. 그는 동생의 목을 조르던 괴한을 향해 처음으로 총을 들었고, 생계를 위해 소매치기를 시작했다. 약한 생각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옷장 속에 넣고 잊어버린 것 같았다. 쓸데없는 어머니의 옷을 버려야 한다고 다그쳐 필립을 울먹이게 만들던 트릿. 하지만 그는 동생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홀로 남겨지자 당황하며 어머니의 옷장을 연다.
필립이 해럴드의 도움으로 자립하지 못했다면 트릿이 옷장을 열 일도, 가까운 사람을 잃는 두려움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마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트릿은 언제나 아니라며 반발했지만 해럴드의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앵벌이 키즈였음을 인정하고 흐느낀다. 트릿은 헤럴드가 주었던 격려가 늘 삶에서 필요했다. <오펀스>는 형으로서 자신과 동생을 보호하고 먹여 살려야 했던 트릿을 통해 홀로 많은 책임을 짊어져야 했던 ‘앵벌이 키즈’들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더 이상 홀로 살아가며 격려의 손길을 내치지 말라는 이야기를 건네면서 말이다.
헤럴드가 건넨 격려로 트릿과 필립은 자신의 상태를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둘은 상처를 보듬기에는 당장 살아내야 할 하루가 앞섰다. 하지만 무작정 슬픔을 덮어두고 달리다 보면 길을 잃기 쉽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아픔을 마주할 용기를 주는 격려가 필요하다. 인생의 황금기는 멀리 있지 않다. 자신을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는 황금기다. 앵벌이 키즈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제는 조금씩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격려를 받는 삶을 누려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만의 옷장 속 아픔을 쓰다듬어주고, 어디로든 원하는 길로 나아가는 황금기를 맞기를 바란다.
글 | 차주영
편집 | 김희은
아래 월간 도슨트 인스타 계정을 통해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