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간 도슨트 May 01. 2021

죽음을 넘어 세상과 맺는 인연 | 곤잘레스 토레스

 


  우리는 언젠가 필연적인 이별을 마주한다. 낭만적인 미래를 그렸던 관계의 시작도 다툼과 오해, 좁힐 수 없는 의견차 같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곤 한다. 모든 고비를 무사히 넘기더라도, 가장 마음 아프지만 피할 수 없는 결말이 기다린다. 생사의 경계에서 이별을 고할 때다. 다음 그림들은 예술가들이 연인과의 사별을 담은 작품이다.


 

샤갈, <그녀 주위에> | 호들러 | 모네, <카미유의 임종>




  샤갈이 아내를 잃은 후 그린 작품에는 아내의 넋처럼 보이는 유령이 등장한다. 호들러는 생기를 잃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꾸준히 그림으로 기록했다. 모네는 부인 카미유의 임종을 차갑고 어두운 색으로 담았다. 작품들은 연인에 대한 그리움, 죽음으로 인해 연인과 단절되는 상실감이 드러난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현대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은 조금 다르다. 그는 연인을 잃은 상실을 표현한 작품들로 유명하지만 그의 작품은 절망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관객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 나간다.


 

Félix González-Torres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1957년 쿠바에서 태어나 1900년대 중반 미국에서 활동한 현대예술가이다. 토레스에겐 8년을 사랑한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연인 로스 레이콕을 에이즈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5년 뒤, 토레스도 같은 이유로 연인의 뒤를 이어 38세라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비록 토레스는 활동 기간이 짧고 연인의 상실이라는 한정된 주제를 다뤘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2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아시아 최초로 곤잘레스 토레스의 개인전이 열렸으며, 옥외 광고판으로도 6군데에 걸려 전시된 바 있다.


 


<Untitled>




  토레스의 대표작 중 하나는 <무제>(부제 : LA에서 로스의 초상)이다. 그는 로스가 죽기 전 건강했던 때의 무게만큼 전시장에 사탕을 채우고 관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사탕은 점점 줄어들어 연인의 죽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작품은 다음 날 처음과 같은 무게로 채워져 부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독특한 점은 보통 미술관의 작품은 접촉이 제한되는데, 이 작품은 오히려 관객의 참여와 훼손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작품은 모습이 사라질지라도 관객이 사탕을 먹음으로써 작품에서 전하려는 메시지가 완성된다.



 

(The Perfect Lovers)




  토레스는 일상적인 오브제를 사용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작품을 만들었다. 손꼽는 예로 똑같이 생긴 두 개의 시계를 벽에 건 <무제>(부제 : 완벽한 연인들)가 있다. 두 시계는 처음엔 같은 시간을 가리키지만 배터리 차이에 따라 점점 어긋나게 되고 결국 하나가 먼저 멈춰 버린다. 동시대를 살며 사랑을 누리더라도 피할 수 없는 이별이 기다린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를 통해 관객은 작품의 메시지를 작가의 경험에 한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에 빗대어 해석할 여지를 갖는다.


  그는 이외에도 전구, 커튼, 거울 등을 이용한 여러 작품을 전시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는 언제나 작품의 제목을 <무제>로 두고 부제를 붙였다. 동성애를 전면에 밝히기 어려운 당시 상황을 반영해 사람들의 편견 없는 감상을 유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는 관객 스스로가 제목을 채울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관객이 작품을 만지고, 체험하고, 자유롭게 감상하도록 유도했다.


  토레스는 연인을 떠나보냈지만 관객이 작품을 기념비처럼 보면서 자신의 연인을 추모하도록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을 마음껏 가져가고 만지도록 했다. 로스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에 담겨 많은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 나갔다. 로스는 어떤 사람에겐 사탕이 주는 한순간의 달콤함,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겪은 이별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만약 토레스가 상실의 슬픔에 잠긴 내면만을 표현한 작품을 걸었다면 로스의 삶은 닿을 수 없는 벽 너머로 종결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가 로스를 관객과 소통하는 오브제로 담아낸 것은 연인의 시간이 계속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1988년, 나의 연인에게.

  시계를 두려워하지 마.
그건 우리의 시간이고, 언제나 시간은 우리에게 너그러웠어.
우리는 승리의 달콤한 맛을 시간에 아로새겼지.
우리는 특정 공간에서 특정한 '시간'에 만나 운명을 정복했어.
우리는 그 시간의 산물이기에, 때가 되면 마땅히 갚아야 해.

우리는 시간을 함께하도록 맞춰졌어, 지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해.

- 토레스가 에이즈 판정을 받은 그의 연인 로스에게 쓴 편지


 


  토레스는 관계의 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순간의 만남을 영원처럼 간직했다.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도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헤어짐 속에서 단절이 아닌 이어짐을 찾으려 했던 노력 때문일 것이다. 토레스는 이별을 받아들였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관계의 끝에서 다른 방식의 시작을 만들고자 했다.






글 | 차주영

편집 | 김희은





아래 월간 도슨트 인스타 계정을 통해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https://instagram.com/monthly_docent?igshid=1c09qpgfuv 

작가의 이전글 개츠비는 왜 '위대'했을까? | '위대한 개츠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